제주 시인 현택훈, 60개 제주어 사연으로 풀어낸 신간 ‘제주어 마음 사전’ 발간

제주, 제주사람들의 감정과 마주하는 신 개념 사전이 등장했다. 제주 시인 현택훈이 본인 경험을 녹여내 완성한 ‘제주어 마음 사전’(걷는사람)이다.

이 책은 제주어를 소개하는 사전(辭典) 형식을 띄고 있지만, 짧은 개념 설명에 머물지 않고 단어에 담긴 감성적인 사연들을 소개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가매기 ▲동카름 ▲숙대낭 ▲몰멩지다 ▲허운데기 등 60여개 단어 속에는 담담하면서 여운을 남기는 시인 특유의 글솜씨로 풀어낸 제주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다. 그림은 박들 작가가 맡았다.

엄마는 거짓말쟁이였다. 하지만 그 거짓말들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한 말하기의 방식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앨범에 있는 흑백 사진을 보다 간호사 옷을 입은 엄마의 모습이 눈에 띄어 엄마에게 물었다. 
“응? 아, 그거. 그럼. 간호사엿주게.” 
엄마는 옷에 단추를 달다 사진첩을 보며 말했다. 
나는 엄마가 간호사였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며칠 뒤 아빠와 어떤 얘기를 하다 내가 엄마가 간호사였다는 걸 얘기하자 아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래서 내가 앨범을 아빠 앞에 펼쳐 그 사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다시 말했다. 하지만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아, 그 사진. 어멍 사료공장 댕길 때 사진이여.” 
- ‘랑마랑’ 부분

딸 넷, 그리고 막내아들. 장모님은 막내아들을 위하고 또 위한다. 그 막내아들인 처남이 최근에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처남이 택시 운전을 한 뒤로 장모님은 처남 택시와 색깔이 같은 택시만 보면 처남이 운전하는 택시를 본 것처럼 반긴다. 
“아이고, 저 택시 승효 택시 아니냐.” 
해녀의 아들인 처남은 오늘 밤에도 서귀포의 밤 속에 들어가 어머니가 물질을 하듯 도시의 밤바다 속을 택시로 헤엄친다. 
- ‘할망바당’ 부분

물의 순환처럼 한세상 살다 가는 구름들. 물의 순환을 보여 주는 구름. 우리는 구름을 보며 삶의 순환을 느끼게 된다. 물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가 되어 땅과 바다로 내린다. 구름은 하늘 높이 있지만 물의 순환을 생각하면 구름은 우리와 함께 있다. 구름을 보는 시간은 무념무상의 시간이다. 
- ‘물보라’ 부분

시인은 “시를 쓰면서 제주어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나를 자라게 한 이 제주어를 어떻게 시어로 드러낼 것인가. 백석은 평안도말로 공동체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평안도말을 몰라도 그 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제주어로 시를 보여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단 나의 제주어 사전 만들기를 시작했다”고 발간 취지를 설명했다.

더불어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시를 쓰는 나는 결국 시에서 제주어를 품어야 하는 운명을 지녔다. 그래서 오늘도 제주어 사전을 들여다보며, 시의 언어를 생각한다”며 “어떤 바람은 자울락자울락 분다. 눈물이 스며 있는 바람, 그 바람의 언어를 맞기 위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겠다”고 제주어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드러냈다.

현택훈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시를 쓰고 있다. 돌하르방 공장이 있는 동네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때 공장 한편에 버려진 팔 하나 없는 돌하르방을 품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제주어를 시의 언어로 쓰기 위해 고심하며 지내고 있다. 지금까지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를 냈다.

박들 작가는 아직 ‘육지것’의 눈으로 보는 제주 풍경을 간세둥이로 그린다. 그린 책으로는 ‘숲으로 가자’, ‘당근 뽑으러 가요’, ‘물방울아 같이 가’ 등이 있다.

걷는사람, 195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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