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36) 사랑도 타이밍 / 김 선

올 여름 수목원 어느 소나무 아래 혼자 피어 있던 상사화. ⓒ김연미
올 여름 수목원 어느 소나무 아래 혼자 피어 있던 상사화. ⓒ김연미

그가
나를 보았을 때
나는
꽃을 향해 있고

내가 
그를 보았을 때
그는
꽃을 향해 있었지

사랑도
타이밍이란다

상사화가 
피었다

김선 [사랑도 타이밍] -전문

인연에 대해 생각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면 나와 만났던 그 무수한 사람들과는 전생에 어느 만큼의 관계를 가졌던 것일까. 아무런 감정도, 미련도, 기억조차 남기지 않고 헤어지는 사람들을 보면 도대체 전생에 나는 무엇이었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옷깃만을 스치면서 지나가는 것일까. 바람이었을까. 혹, 물이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나의 감정에 파문을 일으켰던 사람들을 손으로 꼽아본다. 내가 걸어가는 길에 살짝 끼어들었다가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 내가 가고자 했던 길에서 억지로 나를 돌려 세워놓고, 오히려 먼저 포기해버렸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내게로 왔던 사람들을 붙잡지도 않고 그냥 보내버렸던 것은 정말 나의 의지였을까. 그 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의 나와는 다른 선택을 했던 그 ‘나’가 살아가는 또 다른 우주에서, 나는 행복할까.

또 다시 새로운 길이 주어지고, 그 길을 다시 걷는다 하여도 별반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 건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만나고 헤어짐에 다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서도, 지금 그 때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간절히 원한다면 언제가 다시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끝까지 미련을 붙들어 보다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를 헤치고 지금 내 옆에 와 있는 것일까. 무성하게 돋아 올라 기를 쓰며 버티고서도 결국 어여쁜 꽃잎 한 장 보지 못하고 스러져야 했던 초록잎들, 아무리 아름다운 얼굴을 가꾸었어도 바라봐줄 이파리 하나 없이 쓸쓸히 고개를 숙여야 했던 상사화의 운명을 생각한다면, 여기 지금 내 곁에 와 있는 사람들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소중한 것이던가. 쿨한 이별에 앞서 마음껏 사랑해야 될 이유이리라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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