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12월12일, 고(故) 홍제화씨 무죄 선고-가해자는 ‘호화 오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홍씨가 영문도 모르고 경찰에 끌려간 것은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년 11월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전두환이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지 딱 40년이 되는 12월12일 무죄 판결이 났다. 이날 전두환은 '호화 오찬'을 즐겼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흡사 망백(望百)의 촌로를 보는 것 같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고약한 ‘막걸리 보안법’에 걸려 고문 후유증으로 지난해 사망한 고(故) 홍제화씨의 마지막 모습은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고작(?) 66세였는데, 족히 이삼십은 더 들어보였다. 최근 그의 부인은 1년 전 사진 속 남편을 가리키며 “이 얼굴이 그 나이로 보이느냐”고 탄식했다.

생전 남편을 ‘딴 사람’으로 만든 것은, 인류 역사상 인간이 인간을 상대로 저지른 가장 끔찍한 만행 중 하나, 바로 고문 때문이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무시무시한 죄목이 붙었지만, 사실 별게 아니었다. 그게 죄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1981년 7월, 동네(조천리) 식당에서 지인들과 막걸리잔을 나누면서 무심코 내뱉은 한마디가 그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김일성과 박정희, 전두환에 대한 발언이 죽기 전에는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가 됐다. 물론 조작이 이뤄졌다. 

졸지에 간첩으로 몰린 홍씨에겐 모진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듬해 만기출소 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정신분열 증세를 보였다. 결혼 3년차, 만으로 삼십도 안될 때였다. 마을에서 ‘수재’ 소리를 들었던 촉망받던 청년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화목했던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고, 공무원인 남동생은 요시찰 대상에 올랐다. 아들은 간병 때문에 직장을 포기해야 했다.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병세 탓인지 50대 후반에 겉모습은 이미 백발의 노인이었다.

“…흰 백발에 가슴어린 청춘이여…”

백발과 청춘? 2010년 남동생이 형을 떠올리며 지은 시 <슬픈 광인(狂人)의 노래>는 가슴을 저미게 한다.  

홍씨가 눈을 감은 건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기 불과 7개월여 전이었다. 이어 지난 12일, 마침내 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불법구금, 강제연행이 모두 인정됐다. 경찰 조서의 증거능력은 배제됐다. 

재판부는 당시 막걸리를 마시면서 지인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는 추상적인 발언일 뿐, 국가보안법상 국가 존립을 위협하거나, 북한을 찬양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38년간 옥죄온 법의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더 이상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를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어디 홍씨 뿐이랴. 해방 이후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는 제주에서 차고도 넘친다.  

4.3수형인들이 그랬고, 예비검속 피해자들이 그랬다. 이후 독재정권 시절에도 수많은 고문 피해자가 양산됐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홍씨가 영문도 모르고 경찰에 끌려간 것은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년 11월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전두환이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지 딱 40년이 되는 12월12일 무죄 판결이 났다. 

이날 전두환은 40년 전 군사 반란에 가담했던 인물들과 서울 강남의 고급 음식점에서 ‘호화 오찬’을 즐겼다. 고급요리 샥스핀과 와인이 곁들여졌다. 자숙해도 모자랄 판에 분위기가 매우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다는게 정의당 임한솔 부대표의 전언이다. 

지난달 ‘골프 영상’이 공개돼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전두환은 호화 오찬 나흘 뒤인 16일 광주에서 열린 ‘사자(死者) 명예훼손 재판’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37년간 거리를 방황하고, 조롱거리가 된 남편의 삶은 누가 되돌려 줄 수 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이같은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서주길 간절히 호소합니다”

홍씨 부인의 염원은 후안무치한 인권침해 주범들을 제대로 단죄할 때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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