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구럼비유랑단 연극 ‘사랑 혹은 사랑법’

지난 6일 서귀포시 동홍아트홀에서 열린 구럼비 유랑단의 연극 '사랑 혹은 사랑법'. ⓒ제주의소리
지난 6일 서귀포시 동홍아트홀에서 열린 구럼비유랑단의 연극 '사랑 혹은 사랑법'의 한 장면. ⓒ제주의소리

제주 예술단체 ‘구럼비유랑단’이 지난 6일 무대에 올린 연극 ‘사랑 혹은 사랑법’은 2017년 초연 이후 두 번째다.

2년 만에 돌아온 ‘사랑 혹은 사랑법’은 故 양용찬(1966~1991) 열사의 짧은 삶을 조명하는 일대기를 뛰어넘어,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으로 시작해 제주해군기지, 제2공항, 난개발 등 제주 개발 수난사의 민낯을 조명하는 수작으로 탈바꿈했다.

올해 공연은 초연과 같으면서도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연출은 동일하게 연극인 방은미가 맡았으며, 양용찬 열사도 배우 양승한이 연기했다. 다만 상징성을 지닌 고권일(강정주민), 김현지(성산주민)가 배우로 새로 출연하고, 예술적인 표현을 강화하는 하애정 연희프로젝트소용 대표의 춤사위를 추가했으며 여러 영상도 보강했다.

무엇보다 양승한 홀로 무대를 만들어낸 초연 작품과 달리 이번 ‘사랑 혹은 사랑법’은 세 명의 호흡이 돋보이는데, 역사의 현장에서 몸소 풍파를 겪은 당사자들이 본인 역할과 이야기를 전한다. 봉이 김선달이 되고 싶다던 초등학생 양용찬부터 “불의와 싸우고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본인 신념을 한 몸 던져 실천한 마지막 순간까지. 연극은 일대기를 조명하는 기본 틀을 유지한다. 여기에 고권일, 김현지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이야기 하고 동시에 양용찬 열사의 삶을 연극으로 만나보는 극 안의 극 '액자 방식'이다. 

새 출연진의 등장으로 이전과 다르게 양용찬 분량은 줄어들었고 전문 배우와 일반인 간의 차이도 존재하기에 투박한 맛은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어색하지 않고 담백하고 진솔하게 관객에게 다가설 뿐만 아니라, 양용찬이란 가치가 28년이 지난 오늘 날 제주에 어떻게 남아있는지 시대성을 이어주는 의미로 감동을 더했다. 안타깝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양용찬, 고권일, 김현지 세 명의 이야기는 과거와 과거가 이어져 현재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고권일은 본인이 법정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친 뼈아픈 순간을 재현한다. 그가 겪은 고초를 조금은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어떤 배우도 쉽게 구현해내지 못할 거친 단단함이 느껴져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김현지는 현재 진행형인 제2공항에 대한 문제를 청년의 시각에서 들려줬는데, 제주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공통점에서 청년 양용찬과 많은 점이 겹쳐 보였다. 탁월한 각색이자 섭외다. 열사로 분한 양승한의 연기는 분량이 줄었지만 오히려 2017년보다 깔끔하고 집중 있게 이뤄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양승한을 통해 이야기하려던 연극은 사실상 다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달라졌지만 분명히 보다 발전했다.

새로 추가한 영상은 무대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 뿐만 아니라 제주도개발특별법 속 환경영향평가, 주민 토지수용 같은 독소조항이 강정과 제2공항에서 어떻게 피어나는지 효율적으로 보여줬다.

‘우리는 결코 세계적인 제주를 원하지 않습니다. 제주인에 의한 제주인을 위한 제주다운 제주를 원할 뿐’
- 양용찬 열사 일기 가운데

28년 전 세상을 떠난 고인을 들먹이면서 제주해군기지와 제2공항을 짚어내는 연극 의도가 불편해하는 존재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사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주민-도민 의사를 외면하면서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나아가 제주섬 전체에 큰 위협이 되는 국책사업을 반대하는데 앞장서서 나섰으리라 감히 짐작해본다.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으로 제주의 땅을 사들이고 파헤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들. 그들의 천박한 욕망은 무수한 개발도 모자라 이제 새로운 공항으로 치닫고 있다. 그 이면에 자리 잡은 공군기지도 이제는 숨길 수 없는 비밀이다. 그래서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 왔냐’는 출연진들의 질문에 양용찬의 별빛은 아직 빛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 될 것이라 믿냐’에 기꺼이 환한 불빛을 보여주는 건 양용찬이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간절한 당부이자 내미는 손짓이다.

‘여러분, 제주도를 사랑하나요?’

‘사랑 혹은 사랑법’은 제주를 파괴하는 모든 이기심에 맞서는 숭고한 존재를 기억하는데 그치지 않고, 첨예한 제주 사회의 갈등에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로서 열사를 불러일으킨다. 현 시점에서 제주의 가장 큰 아픔과 분쟁을 외면하지 않고 끈기 있게 지켜보며 질적인 향상까지 이뤘다는 점에서 ‘사랑 혹은 사랑법’과 예술단체 구럼비유랑단은 마땅히 기억해야 한다. 기존 제주 극단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던 시선이기도 하다. 12월 6일 단 하루, 관객들과 만나기에 너무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비로소 제주 현실을 보여주려 애쓴 연극의 등장에 박수를 보낸다.

ps. 뒤늦은 기사에 구럼비유랑단, 배우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송구스런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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