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집단 파수꾼 연극 ‘소풍’

지난 15일 예술집단 파수꾼의 정기공연 '소풍'의 무대 인사 장면. ⓒ제주의소리
지난 15일 예술집단 파수꾼의 정기공연 '소풍'의 무대 인사 장면. ⓒ제주의소리

제주 극단 ‘예술집단 파수꾼’이 올 한해 활동을 정리하는 마지막 정기 공연을 지난 14~15일 선보였다. 작품은 지난 2005년 국립극장에서 초연한 김나영 극작가의 ‘소풍’이다. 파수꾼은 노부부 이야기인 원작에 비교적 젊은 중년 부부도 새로 더해 무대 위에 올렸다.

작품은 자유분방한 여자(배우 김은정)와 한때 부부였고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는 남자(조성진)의 소풍, 그리고 네 자녀를 키우느라 어느새 늙어버린 아내 김옥자(진정아)와 남편 이만수(이기문)의 생애 첫 소풍을 차례로 보여준다.

아직 한창(?)인 분위기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안타까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첫 번째 나들이, 35년 동안 간직해온 비밀을 고백하면서 다시금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는 두 번째 나들이. ‘소풍’은 각기 다른 사연 속에 담긴 남녀 간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 사랑은 탄산음료처럼 톡 쏘고 빠르게 불붙는 휘발성과는 사뭇 다르다. 이도저도 아닌 것 같고 오랜 시간 고여 있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믿음과 애정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진한 사랑이다.

‘소풍’은 이런 메시지를 울고 웃는 감정에 실어보낸다. 폐암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남자는 연명 치료 대신 전처와 아이를 위해 부동산을 마련하고, 아내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두 사람은 지나온 미안함까지 풀어내며 눈물을 가득 쏟아낸다. 45년 만에 처음 나온 소풍 자리에서 아내 김옥자는 35년 전 자신이 젊은 남성과 두근거리는 짧은 로맨스가 있었다고 남편 이만수에게 고백한다. 겉으로는 가부장적이지만 속으로는 아내를 아끼며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남편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길길이 날뛴다. 퉁명스러운 남편의 연기는 관객, 특히 중년 이상 여성들의 웃음보를 터트렸다. 현장에서도 여실히 느꼈지만 ‘소풍’은 40대 이상이면 더욱 큰 공감대를 이루는 내용이다. 슬픔과 웃음 그리고 감동을 오가는 감정 속에 관객들은 부모님 혹은 동년배 세대에서 겪을 법한 공감대를 가진다.

배우들은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충실하게 따른다. 이기문은 한 평생 자린고비로 살아온 꼬장꼬장한 노년 남성의 성격을 십분 펼쳐 보이며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기문과 호흡을 맞춘 진정아는 무대 위에서 보여준 사과 깎는 솜씨처럼 매끄럽고 차분한 연기로 남편 역할과의 균형을 잡아준다. 두 사람 모두 배역에 충실히 녹아든다는 인상을 받았다.

조성진과 김은정은 평소 활동해온 이미지와 상반된 배역을 맡아 흥미로웠다. 지난 10월 더불어놀다 연극제에서 선보인 ‘51대 49’뿐만 아니라 지난해 ‘Back To Zero’, 제주연극협회의 창작극 ‘섬에서 사랑을 찾다’ 등 주로 강한 개성이 돋보이는 배역을 맡아온 조성진은 이번 작품에서 고지식한 순정파 증권맨을 연기했다. 직전 ‘별빛이 내리는 편의점’에서 온순한 성격의 편의점 주인을 연기한 김은정은 반대로 딸아이는 물론 자기 자신도 책임지지 못하는 자유분방한 인물을 맡았다. 두 사람이 지닌 외형적 이미지와도 사뭇 다른 '소풍'의 배역은 작품을 보는 또 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인지 두 번째 에피소드와 다르게 배역보다는 배우가 앞서는 모습이었다. 

이번 작품은 파수꾼과 도내 타 극단과의 연계 작업이라는 부분도 주목할 만 하다. 연출을 맡은 성민철과 기획을 담당한 장정인은 가족극 전문 극단 ‘두근두근시어터’ 소속이다. 배우 김은정은 제주 여성들로 이뤄진 극단 ‘그녀들의 AM’ 소속이다. 조성진은 지난 10월 그녀들의 AM 창작극 ‘별빛이 내리는 편의점’의 연출을 맡은 바 있다. 동시에 두근두근시어터가 12월 24일부터 1월까지 선보일 창작극 ‘꼬마농부 라비’에 출연할 예정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제주 연극인들이 끈끈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힘을 모아 만든 작품이다. 

파수꾼의 ‘소풍’은 배우들의 연기와 풍부한 감정 교감 덕분에 잘 만든 중년 로맨스 연극으로 기억되기에 손색이 없다. 나이 듦의 사랑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파수꾼은 오롯이 남자 배우 두 명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51대 49’를 직전에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소풍’ 역시 그와 유사한 무대 인원 구성으로 연기에 집중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3월 14일 창단한 신생 극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파수꾼이 내년에는 더 활발하게 좋은 작품으로 도민과 만나기를 기대한다. 파수꾼 만의 목소리를 담은 창작극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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