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51. 사냥꾼은 잘 안된다

* 산쟁이 : 사냥꾼
  
산에 가 꿩이나 노루 등을 잡는 사람을 사냥꾼이라 불러 온다. 잘 훈련된 사냥개를 데리고 산야를 누비고 다닌다.
  
하지만 그런 산짐승을 잡아 집안 가계에 큰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닐뿐더러, 말로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돼 왔다. 살아있는 생명을 마구 쏘아 죽이는 행위가 곧 살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행한 업(業)에 따라 의당 과보(果報)가 주어진다는 것, 좋은 일을 한 사람은 좋게 되거니와, 죄를 지은 사람은 업보에 따른 벌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 

이른바 인과응보다. 달리 말해,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 자의 앞날이 무사하겠느냐는 얘기다. 생명을 해치거나 죽인 자가 어찌 복을 받은 것이며, 앞길에 행운이 함께하겠느냐는 필연성에서 단호하게 소리를 높인 말로 들린다.

사냥을 금기로 여겨 타부(taboo)시한 것이다.

이 말 속에 꿈틀거리는 사상을 읽을 일이다. 생명존중사상.
불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 곧 오계(五戒)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은 게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말라’는 ‘불살생(不殺生)’이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살고자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사람뿐 아니라 한낱 미물도 살고자 버둥대는 것은 마찬가지다. 누구든 자기 자신의 목숨이 가장 소중하다. 그러기에 자신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생명 또한 해쳐서는 안되는 게 이치다.

살생을 유발하는 요인으로서의 음식, 곧 고기 맛에 집착할 때 고기는 살생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고기를 먹지 말라는 계율로 됐지만, 정신적‧환경적인 면을 고려해 채식하는 것이 좋다 함이다.

사람들이 자비를 행할 줄 모르고 도리어 산목숨을 함부로 죽인다고 경계한 것이다.

불살생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은,
사회에 만연되고 있는 만성적인 인종과 인권 차별의 부당함을 극복하려는 데 있었다고 본다. 불살생 곧 비폭력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가르침과 더불어 육식을 금하는 계율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부처의 불살생은 단순히 폭력이나 살생을 금하는 조항을 넘어 생명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실천하는 실천운동이며,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제도‧권력‧태생 같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차별돼선 안되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음을 역설한 가르침이다.

인종‧인권 차별의 근원인 카스트제도를 거부한 근원이다. 인종 차별을 당연시하는 인도 사회에 만연돼 사회적 계급의식과 정신적인 게으름, 해이를 거부한 것이다.

〈마태복음〉에도 나와 있다.
“목숨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불살생을 넘어 ‘방생(放生)’을 행한다.
다른 사람이 잡은 물고기‧새‧짐승 따위 산 것들을 사서 산이나 못, 호수 혹은 바다에 풀어놓아 살려 주는 것이 방생이다.
예로부터 사찰에서 불교도들이 해마다 일정한 때에 방생을 위해 방생계(放生契)를 조직해 방생회(放生會)를 열어 온다.

살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살생을 금하는 것은 소극적인 선생(善行)이고, 방생하는 것은 보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일로 권장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생명에게는 그가 생을 누릴 마땅한 권리가 주어져 있다. 생명은 존엄하다. 살아있는 목숨을 함부로 죽이면 그 죄업에 따른 벌을 받게 되리라 한 것이다. 그러니 옛 사람들이 ‘산쟁이 잘 안된다’고 한 것 아닌가. 제주에서는, 꿩 사냥하는 사람을 얕잡아 ‘꿩바치’라 불렀다.

김길웅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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