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결혼 이민자의 본국 자녀들 방치 사례 빈번, 청소년 대상 '레인보우 스쿨' 확대 필요

외국인 A양. 이혼한 엄마와 헤어져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쭉 자랐다. 청소년 시기가 되자 대한민국 제주도로 결혼 이민 간 엄마가 자신을 불렀다. 졸지에 낯선 섬에 온 A양. 아빠는 선원이라 집을 자주 비우고 엄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녁밥을 차리는 건 온전히 자신 몫이라 공부를 하고 싶어도 오후 6시 전까지 반드시 귀가해야 한다. 나를 버리고 간 엄마가 이제야 불러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늘 불만이지만 속으로만 삭힌다. 그래서일까. 성격도 위축되고 점점 사람과도 어울리기 힘들다.

외국인 B군. 어느 날, 대한민국 제주도로 떠났다는 엄마가 자신을 불렀다. 본국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잘 살고 있었는데, 평소 관심을 보이지 않던 엄마의 요청은 달갑지 않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본국보다 스트레스가 크다. 시간이 지나 엄마는 한국인 새 아빠와 이혼했고, 남은 동생들을 챙기는 건 본인의 몫이다. 나도 같은 엄마 자식인데 왜 내가 처음 보는 동생들을 오롯이 챙겨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에 반항심이 갈수록 커져간다. 내가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항의는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것이다.

외국인 C양. 아빠는 일찌감치 한국으로 떠나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느덧 10대 중반이 지나자 아빠의 요청으로 대한민국 제주도에 왔다. 학교도 다니고 여러 경험도 해보고 싶지만, 엄격한 아버지는 학교를 보내줄 생각이 없다. 오히려 바쁜 부모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라고 지시한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남자친구도 만나며 낯선 나라에서 적응하려고 애썼지만, 아빠는 종교적 이유로 연애를 문제삼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당했다. 결국 격리 조치 후 보호 쉼터에 왔다. 나는 대체 누구일까, 아빠는 새로운 가족을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로 내가 필요했나 같은 복잡한 생각에 원망만 커져간다.

국제결혼이 일상화된 요즘, 결혼 이민자 부모를 따라 한국과 제주에 온 ‘중도입국 청소년’에 대한 관심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본인 판단과 무관하게 온 결혼이민자의 본국 자녀는 상당수가 ‘사각지대 안의 사각지대’와 다름없이 취약한 환경이어서 자칫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중도입국 청소년은 결혼이민자가 한국인 배우자와 재혼해 데려온 본국의 자녀, 혹은 외국인 부모의 본국에서 성장하다 청소년기에 재입국한 국제결혼가정의 자녀를 의미한다. 법무부가 파악하는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중도입국 청소년은 9892명이다. 이 가운데 제주는 초·중·고등학교 재학생 150명 이외에 무비자입국 영향으로 더 많은 수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1000여명에 달한다는 추정도 나오지만 정확한 지역 별 수치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도입국 청소년들의 제주 생활은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실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확인되는 경우마저도 상당수가 ‘방치’에 가깝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위에서 언급한 실제 사례에서 보듯 온전한 돌봄 없이 불화를 겪는 결혼 이민자 가정의 경우,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더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기 마련이다.

이런 중도입국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여성가족부는 무지개청소년센터에게 위탁해 전국 26곳에 ‘레인보우 스쿨’을 운영 중이다. 1년 과정인 레인보우 스쿨에서는 한국어를 비롯해 각종 특기 적성 교육으로 낯선 한국 사회 적응을 돕는다. 제주에서는 사단법인 제주외국인평화공동체 부설 ‘제주이주민센터’가 맡아 2011년 한 해, 그리고 지난해부터 2년째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는 7개 나라에서 온 23명이 레인보우 스쿨을 거쳐 갔고, 올해는 6개국 14명이 참여했다.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시간제로 운영한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종일제 수업을 진행했다. 국가는 중국, 베트남, 태국, 예멘,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이다.

제주이주민센터가 올해 진행한 레인보우 스쿨 교실 모습. 제공=제주이주민센터. ⓒ제주의소리
제주이주민센터가 올해 진행한 레인보우 스쿨 교실 모습. 제공=제주이주민센터. ⓒ제주의소리
1박 2일 캠프에 참여한 레인보우 스쿨 참가 학생들이 기념 사진을 남겼다. 제공=제주이주민센터. ⓒ제주의소리
1박 2일 캠프에 참여한 레인보우 스쿨 참가 학생들이 기념 사진을 남겼다. 제공=제주이주민센터. ⓒ제주의소리

수업은 한국어 기초부터 미술, 체육, 음악 체험까지 다양하다. 지난해는 청소년들이 수시로 오가면서 한국어를 비롯한 적응 교육에 집중했지만, 이번에는 2년차를 맞아 새로운 시도를 더했다. 서울 2박 3일 체험으로 견문을 넓히고, 한라도서관과 연계하면서 자국어 동화책으로 여러 나라의 언어·문화를 익혔다. 외국인 행사나 세계인의 날 같은 특별한 자리에서 각국 음악을 직접 만들며 레인보우 스쿨을 홍보했다.

레인보우 스쿨에 참여하는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취업이나 진로에 관심이 많아지는 나이인 만큼, 내년에는 바리스타, 제빵 같은 취업 교육까지 확장한다. 레인보우 스쿨이 진학과 취업의 징검다리 역할을 되겠다는 게 제주이주민센터의 포부다.

정지원 사무국장은 “유·청소년기를 지나는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충분한 애정을 주면 정상적으로 자라겠지만 부모와의 갈등, 가족과의 갈등, 새로운 사회의 적응 같은 다양하고 복잡한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엄마, 아빠 모두 일터에 나가니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있거나 게임에 중독된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정확한 실태를 알지 못하는게 정말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만나본 중도입국 청소년 상당수는 한국에 거주하겠다는 의향을 보이지만, 공교육에 진입하지 못하거나 상처를 치유 받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경우 자칫 사회 문제로도 커질 수 있다. 국제결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에서 중도입국 청소년에 대한 도민사회 전체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제주의소리
교실 벽면에는 레인보우 스쿨 참가 학생들의 캘리그라피 작품들이 걸려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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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편에는 초상화도 걸려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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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중 한 명이 적은 '나 생각하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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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그라피 작품. ⓒ제주의소리

지난해 레인보우 스쿨의 총 수업 시간은 800시간이 넘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의 1년 과정 동안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희망과 꿈을 키워간다. 하지만 레인보우 스쿨은 정부가 인정하는 정식 학교가 아니기에 공교육 진학에 있어 공백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긴다.

정 사무국장은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본국에서의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에 레인보우 스쿨 시간까지 더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본인 나이보다 낮은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존재한다.”며 “정작 긴 시간 들여 레인보우 스쿨에 참여했지만 과정을 마쳐도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레인보우 스쿨이 정부 사업이면 공교육과 보다 적극적으로 연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입학도 각 학교별 재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단기 사업은 현실과 큰 괴리감이 있다”면서 “중도입국 청소년은 다른 외국인 사안보다 복잡한 성격을 띤다. 언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청소년 상담까지 함께 이뤄져야 해 지식과 경험이 동시에 필요하다. 지금부터 대책을 마련해야 사회문제까지 불거지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문의 : 제주이주민센터 064-712-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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