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53. 소도 울을 넘는다

소는 천성이 느리다. 빨리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먹이를 먹을 때도, 달구지를 끌 때도, 밭을 갈 때도 시종 느리다. 느리니까 답답해 회초리를 맞곤 하지만 큰 몸집이라 움찔하지도 않는다. 빠른 놈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느리다. 불더미가 덫쳐 온다면 몰라도 웬만한 것에 빠르게 반응하지 않아 어디까지나 태산같이 묵직하다.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천하에 느리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소가 뜻밖에 담장을 뛰어넘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야트막한 울타리도 아닌 높직한 걸 단숨에 펄쩍 뛰어넘었다면 세상이 놀랄 수밖에 없다. 고정관념을 깨뜨려 버리는 순간이다.

이처럼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 뜻밖에 일어나는 수가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은 세상이다.

‘쇠도 울 넘나’, 의외성을 비유함으로써 경계하는 금언이다.

느림보인 소는 몸집이 클 뿐 아니라 성질이 우직하 가축이다. 그런 소가 울담을 넘는 장면을 연상해 보라. 참 뜻밖의 모습 아닌가.

뜻밖임을 나타내는 말이 있다. ‘의외(意外)’. 전혀 생각이나 예상을 하지 못했던 일을 뜻한다. 의외지사(意外之事)다.

세상을 둘러보면 뜻밖에도 뜻밖의 일, 의외성의 일이 허다하다.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 가능했던 일이지만, 지난번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김해외고 송영준 군의 경우는 정말 뜻밖에 일어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능 만점 자체가 의외성에사 나타난 것이라 할 것인데. 더욱이 고교 입학 당시 순위고사에서 127명중 126등, 꼴찌를 한 그였지 않은가. 개천에서 용이 나 날아올랐다. 딴은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 자체가 의외의 뜻을 담고 있는 말이다. 송 군의 경우는 뜻밖의 일이면서 놀라움 자체다.

월드컵축구에서도 숱하게 일어나는 게 의외성이다. 브라질 팀의 삼바축구는 옛말이다. 국가 간 실력 차가 좁혀지면서 축구 강국이 깜도 아닌 팀에게 패하는 수가 비일비재하다. 게다가 공은 둥글다.

의외성은 매력이 있다.

생활이나 사람이나 그 안에 의외성이 있을 때 매력지수가 치솟는다고 한다. 뻔한 생각, 뻔한 흐름, 뻔한 것을,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받아들이고 지레 짐작으로 겁먹기보다는 의외성을 발견할 때 삶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뜻밖이므로 그런다.

존 스튜어트 밀은 “세상의 모든 훌륭한 것들은 모두 독창성의 열매다.”라 했다.

의외의 일들은 늘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거부 내지 뒤집기에서 시작된다. 사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암 말기환자가 하는 일에 몰두하거나, 가족을 위해 반드시 투병에 성공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워 씻은 듯 낫는 수가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의외로 굳은 심지(心志)가 치명적인 질환에서 이겨낼 수 있는 치유의 에너지를 공급해 준 결과가 아닌가. 의외성도 이쯤 되면 놀라움을 넘어 기적이다.

중요한 것은 긍정의 힘이다. 해 낼 수 있다는 강한 의지다. 독하게 먹는 마음이다. 의지, 마음만큼 큰 힘도 없다.

‘쇠도 울을 넘나’는 어떤 관념에 붙들려선 안됨을 힘주어 말한다. 의외로 되는 일이 많다. 주저앉지 말로 원 없이 뛸 일이다. 올해는 경자년 흰 쥐 띠 해다. 쥐가 얼마나 바지런한가. 쥐가 들락거리는 쥐판에 한 축 끼어야지.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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