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72주년 기획] 4.3피해 회복탄력성 (4) 회복탄력성과 제주4.3

제주4.3은 현재 진행형인가? 아니면 70여년이 지난 이미 끝난 일인가? 최근 법원의 군법회의 공소기각 판결을 보더라도 4.3이란 족쇄를 풀지 못한 억울한 시민들이 여전히 고통 받고 있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4.3을 겪은 피해자들의 마음은 어느 정도 나아졌을까. 전 국무총리소속 4.3위원회 전문위원 김종민은 최근 제주학연구센터의 지원을 받아 ‘4.3피해자 회복탄력성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4.3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피해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의 내적 회복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제주의소리]는 4.3 72주년을 맞아 김종민 전 전문위원의 연구를 1월6일부터 매주 월요일, 목요일 총 8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2. 회복탄력성과 제주4.3

2-1. 회복탄력성의 정의 

resilience는 회복력, 탄성, 탄력으로 번역되는 단어로, 원래는 외부의 힘에 의해 변형된 물체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성질을 뜻하는 과학분야의 용어이다. 이러한 성질을 심리학, 사회학, 정신의학, 생물학 등의 많은 분야에서 적용하면서 심리학적으로는 인생의 심각한 시련과 곤란, 어려움을 극복하고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인간의 능력으로 사용되고 있다. 

회복탄력성과 관련된 연구는 주로 아동발달 분야에서부터였다. 영.유아기, 또는 아동기에 겪은 불행한 사건들이 반드시 병리적인 현상을 초래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과거에는 아동들을 부정적인 환경에서, 즉 위험 요인에서 보호하는 요인들을 찾는 노력을 해왔다면, 오늘날에는 그러한 부정적 환경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하는 보호 요인을 찾는 노력에 좀 더 집중을 하게 되었다(홍은숙, 2006).

Werner와 Smith(1982)의 카우아이(Kauai)섬의 아동들에 관한 연구를 보면, 동일하게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자란 아동들의 3분의 2는 심각한 문제행동을 보이는가 하면, 3분의 1은 정상적인 발달을 보이고 심지어 모범적인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연구를 통해 시련이 꼭 개인의 성장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탄력성에 따라서 시련의 무게감과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일부 아동들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사회에 잘 적응하고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아동의 회복탄력성을 긍정적으로 높이는 변수는 조력자(보호자)의 존재였다. 

회복탄력성 연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Werner와 Smith(1982)는 resilience를 위험 상황에 처하거나 심각한 역경과 충격적인 경험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건강하게 발달하는 성장의 힘이며 불행이나 충격으로부터 급속히 회복하여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수준이라고 회복탄력성을 정의하였다.

회복탄력성을 정의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첫 번째는 회복탄력성을 개인의 고유한 특성(trait)으로 보는 입장으로, 이것은 회복탄력성을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성격으로 보는 것이다. 개인의 성격적인 성향의 적응결과로 보는 결과 중심의 연구에서는 개인적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위험이나 역경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보이며,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외상적인 사건이나 부정적인 정서로부터 빠른 회복을 보인다는 것이다.

두 번째 관점은 회복탄력성은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개인과 가족, 사회공동체, 사회시스템과 같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겨나는 적응과정이라는 것이다. 즉 개인의 회복탄력성을 형성하는 데에 환경적 요소와 전후 맥락적인 요소들이 중요하다고 본다. Dyer와 MeGuinness(1966)는 이러한 관점을 지지하면서 회복탄력성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며, 개인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존한다고 하였다(Lee Ji Hee et al, 2012). Anthony(1987)은 회복탄력성에 대해 곤란에 직면 했을 때 이를 극복하고 환경에 적응하여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능력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매우 역동적이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며, 환경요인과 문화, 교육, 개인의 노력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하였다(Dyer, 1996).

최근 회복탄력성의 연구 동향은 개인과 환경과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변화 가능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홍은숙, 2006 재인용).

한편 회복탄력성의 주요 요소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구성요인은 정서조절능력, 자기효능감, 낙관성, 문제해결력, 공감능력 등이다. 

Reivich & Shatte(2002)은 회복탄력성의 하위 요인으로 정서 조절력, 충동 통제력, 낙관성, 원인 분석력, 공감능력, 자기 효능감, 적극적 도전성을 들고 있다. 홍은숙(2006)은 원인 분석 능력, 감정통제력, 충동 통제력, 생활에 대한 만족, 낙관성 등의 개인 내부자원과 부모와 자녀 관계 등의 가정 내 환경을 포함하는 외적 자원, 그리고 대인관계, 커뮤니케이션 능력, 타인에 대한 공감 등의 사회성을 제시하고 있다. 김주환(2011)은 회복탄력성의 요소를 자기조절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으로 나누고 자기조절 능력에는 감정 조절력, 충동 억제력, 원인 분석력으로, 대인관계 능력은 소통능력, 공감능력, 자아확장력으로 제시하고 있다.

2-2. 다변적 상호작용 관점의 회복탄력성

본 연구에서는 회복탄력성에 대한 최근의 연구동향을 반영하면서 제주4.3 희생자들이 정치-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오면서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회복탄력성.개념에 ‘과정’과 ‘정도’를 포함하였다. 즉 회복 탄력성은 개인과 가족, 사회공동체, 사회시스템과 같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겨나는 적응과정이라는 관점을 취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회복탄력성’은 사회 환경, 중간매개 그리고 개인 간의 다변적 상호작용관계에 주목한 개념이다. 개인의 회복탄력성은 환경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중간매개에 의해서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더 나아가 개인도 중간매개와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해 능동적으로 자신의 회복탄력의 정도를 높일 수 있음과 동시에 사회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회복 탄력에 영향을 받게 된다. 

제주4.3 희생자들이 정치 사회적 변화에 따라 다변적 상호작용을 겪으며 회복탄력성에 방해요인과 보호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과정은 <그림 1>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림 1. 다변적 상호작용 관점. 제공=제주연구원. ⓒ제주의소리
그림 1. 다변적 상호작용 관점. ⓒ제주의소리

사회 환경이 제주4.3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시기마다 제주4.3 피해자의 회복탄력의 정도는 달리 나타난다. 제주4.3의 발생 당시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여 회복탄력의 정도가 결정된다. ‘살아야 한다’, ‘배워야 한다’며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려는 능동적 의지로 회복탄력에 힘을 불어넣지만, 피해자를 ‘빨갱이’로 규정하는 사회 환경에 좌절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 개인(4.3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중간 매개체와의 대화도 회피하려 할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과도 되도록 멀리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회복탄력의 정도는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민주화운동 이전의 사회 환경은 군사정권에 의해 강력한 통제가 진행되는 시기이다. 제주4.3의 발생 당시와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따라서 개인의 회복탄력성의 정도 역시 낮은 시기이다. 이 시기에 개인은 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회복탄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였다. 특히 중간 매개의 장에서 ‘빨갱이 자식’ 혹은 ‘아버지 없는 자식’ 등의 표현은 개인의 직접적 대화 개입을 가로막는 기제로 작용하였다.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4.3피해자의 회복탄력성의 정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연성이 진화하여 개연성의 의미로 변화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 이후 사회 환경은 큰 변화를 맞이하였다. 사회 환경의 변화는 다양한 사회제도를 발생시켰고, 공동체 의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개인이 주어진 사회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하려는 부분도 있지만, 개인이 사회제도, 공동체 의식 더 나아가 사회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의식적 부분도 일어나고 또 다른 예기치 않은 속성들이 발생하게 된다. 민주화운동 이후 4.3피해자의 행위의 주관적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제주4.3에 대한 적극적 언론 보도, 제주4.3연구소의 활동, 문화.예술 활동의 확대, 그리고 제주4.3특별법 제정과 대통령의 사과가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공동체의식의 변화는 4.3피해자의 회복탄력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연좌제 폐지, 4.3유족회 발족, 제주4.3추모제 개초, 4.3평화공원 조성 등은 4.3피해자들이 능동적 회복탄력의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다. 중간매개의 장에서도 ‘빨갱이 자식’ 또는 ‘애비 없는 자식’ 등의 부정적 대화가 사라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특히 수형인 재심 청구와 더 나아가 배상 문제에 이르기까지 4.3피해자들의 능동적인 행위가 이어진다. 

제주4.3특별법개정쟁취전국행동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지난해 11월 17일 제주시청 앞에서 4.3특별법 개정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4.3특별법개정쟁취전국행동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지난해 11월 17일 제주시청 앞에서 4.3특별법 개정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결국 본 연구는 사회 환경의 변화와 함께 생성된 사회제도, 의식체계(공동체) 등이 개인의 회복탄력성에 작용함을 주목하였다. 사회 환경의 변화는 명확하게 개인의 회복탄력성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또한 사회 환경의 변화 속도도 개인의 회복탄력성에 주요한 영향 요소로 작동한다. 개인은 주어진 사회 환경에 적응하고 극복하려고 하지만 개인의 노력과 의지만으로는 할 수 없는 분명한 제약이 존재한다. 또한 주어진 사회 환경이 변화했음에도 개인의 회복 의지가 쇠약하였다면 회복탄력성은 낮다. 사회 환경의 변화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사회제도와 시민의식의 변화를 발생시키거나 소멸시키기도 한다. 개연성이 존재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으며, 우연성이 진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생애주기별 조사를 통해 개연성과 우연성이 어떠한 변화를 보여주며, 이를 통해 개인의 회복탄력성의 정도는 어떠한지를 연구할 수 있다. 결국 회복탄력성은 사회 환경, 사회제도와 공동체 그리고 개인의 다변적 상호작용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 김종민은?

김종민(59)은 4.3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일간지 기자 4.3취재반 13년, 국무총리 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 13년, 그리고 지금까지 30여년간 오로지 4.3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다. 제민일보 ‘4.3은 말한다’ 취재보도,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4.3평화기념관 전시 설명문 작성, 희생자·유족 인정, 일부 희생자를 제외시키라는 극우보수단체와의 숱한 송사를 맡아 승리로 이끌었다. 지금은 낮엔 농사를 짓고 밤엔 글을 쓰고 있다. 기자시절 무려 7000여명의 4.3유족들로부터 증언을 채록한 역사학도(고려대 사학과 졸업)로서의 집요함을 보였다. 이 방대한 증언은 4.3의 진실을 밝히는데 단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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