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54. 딸 가진 사람은 아랫길로 걷는다

지금은 외려 딸 가진 사람이 가슴을 좍 펴고 다닌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사진은 단편 영화 '해녀콩'의 한 장면.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금은 외려 딸 가진 사람이 가슴을 좍 펴고 다닌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사진은 단편 영화 '해녀콩'의 한 장면.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알 질 : 아랫길, 작고 좁은 길. 대로(大路)의 상대어

슬하에 딸만 두었을 경우, 그 부모 모름지기 움츠리게 된다는 말이다. 딸만 가진 게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것 마냥 그런다는 얘긴데, 천만의 말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더니 세상 많이 변했다. 지금은 외려 딸 가진 사람이 가슴을 좍 펴고 다닌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예전에는 집안에 시집와 후사(後嗣)가 없으면 대를 끊었다 해서 쫓겨났었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도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였으니까. 케케묵은 조선시대의 애기다. 지금 어디다 대고 ‘아들 못 낳아’ 운운 했다 본전도 못 건진다.
  
왜 항간에서 흔히들 메달 빛깔로 말하지 않는가. 

딸 둘(딸딸이 엄마)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에 아들 하나면 동메달. ‘딸’이 엄마 행세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속담이 바뀔 판이다. “딸 가진 사람이 당당히 윗길로 걷는다”로.
  
세상이 달라졌기로 그렇지. 주목하게 하는 게 ‘아들 없이 딸 둘’에 은메달을 안겨 주고 있는 점이다. 내외간에 그만그만한 사정이야 있겠지만 딸만 둘이고 아들이 없으면 어찌할거나. 대를 이을 후사가 없지 않은가. 아들이 끊어졌으면 여사한 가사범절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장차 조상의 제사는 누가 지낼꼬. 
  
“어린 때 굽은 낭기 질맷가지 된다.”(굽은나무가 쇠 길맛가지 된다.) 

굽어 아주 쓸모 없을 줄로 알았던 나무가 나중에 소 안장 감으로 쓰인다는 말로, 세상에는 불필요한 무용지물이 없다는 걸 에둘러 빗댐이다.
  
어쨌든 잘 났건 못 났건 간에 아들놈 하나는 집안의 기둥이 아니냐. 그래서 예전에 후(後)가 없으면 형제의 아이 중에서, 그게 안되면 근친 가운데 한 아이를, 어릴 적에 양자(養子)로 데려다 호적에부터 올렸다. 하지만 옛날 얘기다. 지금은 산간 오지에 들어가도 찾아보지 못하는 옛 풍속이 돼 버렸다. 호주제도 폐지됐다.
  
‘춘향전’에 보면 거지행색하고 남원 땅에 내려온 이몽룡에게 월매(퇴기, 춘향 모)가 “…외손봉사(外孫奉祀) 하렸더니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입심 좋게 신세타령하는 대목이 나온다. 묘한 뉘앙스를 느끼게 된다. 
  
제사로 끝날 일이 아니라 중한 일이 또 있다. 연년이 추석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연중행사, 선산 벌초는 어차피 아들 몫. 대(代)를 거듭할수록 어깨가 무거워 간다. 족보에 올릴 집안 혈통 체계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아들 지상주의를 꺼내 들려는 게 아니라 까딱하다 존재의 근원이 뿌리째 흔들릴 수가 있다.

제사와 명절 풍습도 전에 비해 상당히 달라지는 모습이다. 제식의 강제에서 벗어나 간략하게 지내려 한다. 배우 합제로. 자시 파제하던 것이 이른 저녁에 지내는 게 거의 일반화하는 추세다. 뒷날 일과를 염두에 둔 합리적 사고가 제사 의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제사 풍속이 오래 가지 않을 거란 예측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미래학자들도 부모 제사에 그칠 거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지 않은가. 제사가 흔들리는 낌새다.
  
신문 부고를 보다, 눈 휘둥그레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슬하에 딸 예닐곱(칠공주)에 아들 하나를 두고 돌아간 망자가 적잖게 눈에 띈다. 그나저나 득남을 위해 얼마나 애간장 태웠을 것인가. 끝내 며느리의 도리를 다해 편안히 눈감고 이승의 삶을 마감했으리라.
  
요즘 젊은이들 생각은 다르다. 내심 아들딸에 관심이 없을까만 아들에만 집착하지는 않는 흐름인 것 같다. 심한 경우,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게 아들이라는 인식이 만연돼 있는 건 아닌지…. 딸은 출가외인이니 가문의 일을 맡아 한다 해도 한 대를 넘지 못할 것이 아닌가.   

세대 간에 조화롭게 풀어 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똘 가지 사름 알 질로 걷나’, 옛말이다. 아들 없이 딸만 가진 부모가 중죄인처럼 처신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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