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19) 평화로운 설날 풍경과 그 이면

명절 차례상 ⓒ Pixabay

유독 기억에 남는 설날이 있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모처럼 맑은 날씨에, 차례를 마친 집 앞 마당에서는 윷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먼 발치에서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었는데, 당시에는 그 모습이 마냥 부러웠던 것 같다. 밖에서는 연신 호쾌한 웃음소리가 이어졌고, 부엌에서는 설거지를 마친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이야기 소리가 가득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설 명절의 풍경이었다. 

밖에서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갈 즈음, 한 분께서 출출하셨는지 부엌에 국수를 끓여줄 것을 부탁하셨다. 차례 음식이 아닌 국수를 끓여줄 것을 부탁하신 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보통은 윷놀이를 하면서 남은 차례음식을 안주로 술을 드시곤 하셨기 때문이다. 부엌의 시선은 큰며느리인 어머니에게 향했다. 하지만 주변의 기대와는 다르게 어머니께서는 국수를 끓이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셨다. 게다가, 앞치마를 입은 채로 직접 밖으로 나오신 어머니는 허리에 손을 짚은 채로 먹고 싶으면 직접 해서 드시면 되지 않느냐고 되묻기까지 하셨다. 

어머니의 저항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잠깐의 어색한 분위기가 웃음으로 무마되었고, 한 할아버지께서 자신이 국수를 직접 끓여오겠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결국 국수 이야기는 없던 이야기가 되었고, 명절 분위기는 금세 평온을 되찾았다. 부엌에서는 어머니를 향한 불편한 시선과 응원의 시선이 공존했다. 한 할머니께서는 집안의 개혁을 시작해줘서 고맙다는 이유로 어머니께 몰래 용돈을 건네기도 했다. 

당시 어린 나의 눈에는 어머니의 저항이 낯설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사회가 규정한 며느리의 역할(어머니는 이를 ‘도리’라고 부르시곤 했다)에 충실했던 분이셨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래서인지 당시의 나는 이를 일시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어머니를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저항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이었다. 집안의 큰며느리를 향한 주변의 무리한 요구는 항상 일시적인 저항이 있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가끔 “너희 때는 달라지겠지”라는 말을 덧붙이시면서 그러한 일을 담담하게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이따금 어머니의 저항과 그것을 보고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 기억은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선명하게 남는다. 그 기억은 평화로워 보였던 설 명절의 풍경을 다시 보이게 만든다. 평화로운 설 명절의 풍경 뒤에는 몇 십년 째 좁은 부엌에 앉아 음식을 준비해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과 먼 발치에서 이를 방관했던 나의 모습이 있었다. 그래서 그 기억은 더 선명하고 아프게 다가오곤 한다. 

어머니께서는 늘 당신의 상식과 경험에 빗대어 현실의 부당함과 그에 대한 본인의 감각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곤 했다. 그것은 내가 머리로 받아들인 페미니즘과 성평등에 관한 지식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인식이 아닌, 나는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었다. 

이제는 지식보다는 그 감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차별적인 제사와 명절 문화에 대한 목소리는 매번 나오고 있지만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 문화는 우리의 삶에 흔들림없이 단단하게 뿌리내려 있다. 변화는 결코 머릿속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는 내가 딛고 있는 땅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시작은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설 명절 풍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윷판 위에, 누군가는 부엌 구석에, 누군가는 먼 발치에 서 있다. 자신에 대한 인식이 없는 공허한 평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날 어머니의 저항은 차라리 비명에 가까웠다. 나는 이 기억과 이 일을 떠올릴 때 느껴지는 내 몸의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나에겐 성평등이자, 뿌리 깊은 남성 중심 문화가 내재되어 있는 나와 주변이 변하는 출발점일 것이다. 

여러분의 명절은 어떠한가. 여러분은 어디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현우식(29)

바라는 것은 깃털같이 가벼운 삶

탈제주를 꿈꾸며 서울로 향했으나
돌연 제주로 돌아와 사회학을 공부중

가까운 것엔 삐딱하나 먼 것에는 관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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