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희생자 발굴유해 14인 추가 신원확인...유가족 "죄인처럼 산 70년 한 이제야 풀려"

22일 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4.3희생자 유족. ⓒ제주의소리
22일 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4.3희생자 유족. ⓒ제주의소리

"혈육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죄인의 심정으로 70년을 살아왔습니다. 억울한 영령들과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70여년 전 제주에 불어닥친 광풍에 휘말려 주검의 이름조차 찾지 못했던 14명의 4.3희생자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22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를 개최했다.

이날 보고회는 지난해 4.3 발굴 유해에 대한 유전자 감식을 통해 12명의 신원이 추가로 확인되고, 2명의 가족관계가 확인됨에 따라 마련됐다.

지난해 추가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925년생 현행주(서귀 서홍) ▲1891년생 정옥주(남원 신례) ▲1917년생 고완행(대정 무릉) ▲1921년생 양지홍(남원 의귀) ▲1920년생 오관형(성산 수산) ▲1930년생 김재철(남원 의귀) ▲1929년생 고주만(서귀 서홍) ▲1932년생 김영하(서귀 토평) ▲1920년생 임공화(안덕 동광) ▲1918년생 양덕칠(남원 신례) ▲1920년생 현봉규(서귀 상효) ▲1924년생 현춘공(서귀 상효)씨 등 12명이다.

12명 중 5명은 1949년 군법회의 사형수며, 나머지 7명은 1950년 예비검속 희생자로 확인됐다. 이들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 서북쪽과 동북쪽에서 발굴된 유해로, 10년이 지난 후에야 신원이 확인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2018년 신원이 확인됐지만, 관계를 특정하지 못했던 2구의 유해도 유가족 추가 채혈을 통해 형제 관계가 확인됐다. 군법회의로 목숨을 잃은 ▲1921년생 허남익(조천 선흘) ▲1923년생 허남섭(조천 선흘) 형제다.

22일 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4.3희생자 유족. ⓒ제주의소리
22일 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4.3희생자 유족. ⓒ제주의소리

유전자 감식을 주도한 서울대학교 법의학교실 이승덕 교수는 "혈액으로 이뤄지는 검사와 달리 유해를 통한 감식은 손상 정도에 따라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고, 비용도 많이 든다"며 "이번에 확인된 유해들은 부계-모계 감정을 비롯해 SNP, STR, NGS 등 다양한 유전자 검사 기법을 도입하면서 추가적인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번 감식에 가장 큰 힘이 됐던 것은 새로운 유가족이 참여를 했기 때문에 정보를 더 많이 모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유가족 291명의 추가 채혈이 이뤄졌고, 방법을 바꿔서 차세대 기법을 도입할 수 있었다"며 "새로운 실험방법을 통해 이후 사업으로 또 다른 신원이 확인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짧은 보고에 이어 희생자 유골함 앞에 선 유가족들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보고회 행사장 안은 추모의 향과 유족들의 오열로 가득 메워졌다.

유족 대표 김영호씨는 "오늘 봉안하는 14구의 영령들이 행방불명된지 만70년이 흘렀다. 너무 오랜 세월 길을 잃었던 형님과 14인의 영령들이 비록 유해로 돌아왔지만, 너무 기쁘고도 또 어린 나이에 죽음을 당한 형님 생각에 애통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는 "혈육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죄인처럼,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왔던 70년이 너무나 한스럽지만,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느라 많은 분들이 애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여러분의 노고에 애통한 한이 겹겹이 쌓여있던 유족들이 힘을 얻고 희망을 품게됐다"고 진한 감사를 표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많은 유족들은 언제 부모형제에게 돌아올 것인지 몰라 애를 태우고 있다. 좀 더 많은 희생자의 유해가 발굴되고 신원확인이 하루 바삐 이뤄져 유족들이 맺힌 한을 달래주시기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22일 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4.3희생자 유족. ⓒ제주의소리
22일 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4.3희생자 유족. ⓒ제주의소리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추도사를 대독한 김성언 정무부지사는 "희생자 영전에 머리 숙여 깊은 애도를 표한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유족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4.3유족과 도민 여러분. 영혼들께서 어둠 속에 계시는 동안 유족께서는 끊임없이 참고 울었다. 발견된 희생자 한 분 한 분이 이름을 찾고 명예를 회복할 때 비로소 4.3이 바로설 수 있다"며 4.3의 해결에 힘을 보탤 것을 약속했다.

김태석 제주도의회 의장은 "여러분은 70년 동안 희생자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고 오로지 심중에 남아있기만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 역사의 현장에서 과거 70년 역사의 현장에서 오늘 현재 그 이름을 소환했다"며 "그 이름이 제대로 불려지고 그 이름이 제대로 칭송되어질 때 우리는 4.3의 역사가 완전히 복원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은 "아무런 죄도 모르고, 죽은 날짜도, 어디에 묻힌지도 모르는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은 한 많은 70년을 살아왔다. 다행히도 14명의 희생자들이 유가족 품 안에 안기게 된 날"이라며 "아직도 70년의 억울함과 원통과 노여움을 가슴에 묻고 살아오신 유가족 여러분들이 오늘 이 시점으로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아직도 가족을 찾지 못한 희생자들의 부모 형제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기원했다.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한 명의 희생자라도 신원을 확인하려고 새로운 감식기법을 도입하는 등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지금까지 405구의 발굴 유해 중 134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 확인률은 33%에 이르고 있다"며 "전쟁 유해 신원 확인 비율이 2%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4.3희생자의 신원확인은 기록할만한 성과다. 앞으로도 유족들의 한을 달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22일 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린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4.3희생자 유족. ⓒ제주의소리
22일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보고회' 직후 봉안관으로 안치되고 있는 4.3희생자 유골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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