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근면 타고 난 ‘쥐’...제주 설화·풍습에 등장하는 쥐는?
다산·근면 타고 난 ‘쥐’...제주 설화·풍습에 등장하는 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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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특집] 2020년 하얀 쥐의 해, 제주 설화·속담에 자주 등장..."쥐띠는 굶어 죽지 않아"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조선시대 그려진 십이지신 민화 속 쥐. 출처=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2020년은 백색을 뜻하는 경(庚), 쥐를 의미하는 자(子)를 합쳐 ‘하얀 쥐의 해’ 경자년(庚子年)이다. 제주어로는 쥐를 '중이'라 부른다. 

쥐는 오늘 날 전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동물 가운데 하나다. 짧은 임신 기간에 한꺼번에 많은 수의 새끼를 낳고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는 능력으로 인해 예로부터 다산·풍요·근면의 상징으로 불렸다. 12지신의 순서를 결정하는 순간, 소 등에 올라탔다가 마지막 순간에 튀어 나가면서 맨 앞을 차지했다는 그럴싸한 이야깃거리도 솔깃하게 다가온다.

‘삼국사기’에는 쥐 8000마리가 평양을 향해서 갔다는 기록도 나온다. 또한 눈이 내리지 않았다는 점을 적시해 다음해 흉년을 미리 내다본 쥐의 예지력을 칭송하기도 했다. 

쥐는 사람과 인연이 깊은 동물로 손꼽힌다. 흑사병을 비롯해 각종 질병을 전파하면서 한때 인류 문명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지만, 현대 들어 의료 실험 도구로 쓰이면서 반대로 질병 퇴치에 앞장서고 있다. 

먹이를 찾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쥐의 근면하고 성실한 습성은 부와 번영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주 등장한다. 부지런하고 준비성이 철저하기 때문에 ‘쥐띠는 굶어 죽지는 않는다’는 말도 있다.

제주 선조들이 남긴 설화, 속담, 지명에는 쥐(중이)와 관련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안덕면 사계리 앞 바다에 있는 형제섬은 ‘쥐섬’으로 불린다. 1985년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도전설지’에 따르면 “형제섬에 쥐가 많이 살았기 때문에 쥐섬이라고 불린다. 4.3 당시 형제섬에 살았던 사람이 경험했는데, 쥐가 들볶아서 큰 고양이 한 마리를 부엌에 풀어놨다. 밤이 되자 확인해보니 쥐들이 달려들어 고양이를 뜯어 먹고 있었다. 이 일로 당시 제주도에 고양이가 멸종할 뻔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형제섬의 바위 모양이 쥐 모양이라 생겨난 지명전설로 보인다. 

제주시 도두2동 진빌레 서쪽 앞바다에는 ‘엎드린 쥐’를 떠올리게 하는 바위 ‘쥐돌여’가 있다. 3물에서 8물 사이인 간조때가 되면 나타난다고 알려진다.

제주시 우도 주흥동에는 쥐와 관련한 마을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특히, 쥐의 제주어 ‘중이’와 깊은 연관이 있다. 

먼 옛날, 과부 아들 ‘송중이’가 바다에서 나뭇잎 배를 만들어 놀다가 물에 빠졌다. 지켜본 동네 아이들이 ‘중이가 물에 빠졌져! 중이가 물에 빠졌져!’라고 외쳤다. 하지만 ‘쥐(중이)가 물에 빠져서 애들이 좋아라고 외쳐 댄다’고 생각해 아무도 내다보지도 않으면서 송중이는 끝내 물에 빠져 죽었다. 송중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던 송씨 무당은 화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죽고, 친모인 과부는 아들의 원을 풀어주기 위해 무당이 됐다.

이같은 ‘송중이’의 슬픈 사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중개’라고 불렀고 이를 한자식 표기로 개칭하면서 ‘주흥동’이 됐다는 설화다. 이 밖에 백년 묵은 쥐가 사람으로 변한 ‘백년 묵은 쥐’ 설화도 알려져 있다.

2020년은 백색을 뜻하는 경(庚), 쥐를 의미하는 자(子)를 합쳐 ‘하얀 쥐의 해’ 경자년((庚子年)이다. 출처=오마이뉴스.
2020년은 백색을 뜻하는 경(庚), 쥐를 의미하는 자(子)를 합쳐 ‘하얀 쥐의 해’ 경자년((庚子年)이다. 출처=오마이뉴스.

‘1만 8000’ 신의 고장에 걸맞게 쥐 역시 신의 반열에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제주 유배인 충암 김정(金淨)이 1636년에 남긴 ‘도근천수정사중수권문’(都近川水精寺重修勸文)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번역은 현행복 제주도 문화예술진흥원장이 맡았다.

“탐라국은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기에 그 뱃길은 아득히 멀다. 바람과 파도, 혹은 왜구의 약탈에 대한 근심이 많기에 토박이들은 북쪽의 뭍으로 나가 학문에 전념하기를 꺼린다. 도리를 들어 아는 자가 적기에 이곳의 풍속은 자연스레 절박하고, 미루하며 어리석기 까지 해서 믿음을 좋아한다. 대개 구하는 바가 있으면 기도하고 제사를 지내는데, 병이나 액운 때문에 상을 당하면 그 복과 화를 하나같이 신에게 들으러 한다. 급기야는 삵괭이나 , 뱀, 귀신 마적도 신으로 여겨 모신다. 수목이 우거진 곳에 있는 사당들이란 여기저기 서로 마주 보일 정도이고, 징소리와 북소리가 연이어서 들려나올 정도이다.”

고위 관직을 역임한 유배인의 시선에서 하찮은 쥐까지 신으로 모신 탐라사람들이 신기해보인 모양이다. 알고 보면 척박한 현실을 버티기 위한 간절한 믿음에 가까워 보인다.

쥐가 등장하는 제주 속담은 바다일과 연관돼 있다. 제주도청이 1999년 발간한 ‘제주도속담사전'에 보면 ▲매어놓은 배에서 쥐가 내리민 해일 온뎅 헌다(정박 중인 배에서 쥐가 내려오면 해일이 온다) ▲쥉이 노리는 배랑 타지 말라(쥐가 내리는 배는 타지 말라) ▲테풍 치젱 허민 베엣쥥이 다 노린다(태풍 치려면 배의 쥐 다 내린다) 등의 속담이 수록돼 있다. 쥐는 평소 배 안에 숨어 지내다가 큰 태풍이 다가오면 뭍으로 피한다는 속설에 근거한 속담들이다.

‘늙은 중이 소곰 먹듯, 늙은 영감 장개가듯’(늙은 쥐가 소금 먹듯, 늙은 영감 장가가듯)이란 속담도 있다. 늙은 쥐가 소금을 먹거나 노인이 장가를 가는 평범하지 않은 상황을 빗댄 말이다.

섬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영향으로 ‘제주등줄쥐’(Apodemus agrarius chejuensis) 같은 고유한 개체도 생겨났지만, 옛 제주 사람들에게 쥐는 살림살이를 갉아먹고 질병까지 옮기는 골치 아픈 존재다.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옛 제주인들이 씨앗을 저장하던 씨앗 주머니 ‘씨부게기’에서도 쥐에 대한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씨부게기는 불을 지피는 건조한 부엌 벽에 대롱대롱 매달아 뒀다. 1994년 발간한 ‘제주의 민속’에는 “쥐가 다닐 수 없는 곳에 달아 놨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시간이 흘러 1970년대, 제주 전역에서는 대대적인 쥐잡기 운동이 벌어졌다. 마을 어귀마다 ‘일시에 쥐약 놓아 다 같이 쥐를 잡자’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1975년 제주 안에서 하루 동안 잡힌 쥐의 수가 무려 60여만 마리라는 제주도 기록도 남아있다. 쥐에 대한 도민들의 고민을 짐작케 한다. 

쥐의 활약(?)은 지금도 여전하다. 천연기념물 제333호 제주 사수도에 쥐 때의 습격으로 희귀종 슴새가 고통받는다는 소식, 제주 도심 곳곳에서 쥐가 출몰하는 이유가 천적인 고양이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언론 보도까지 나온다.

급기야 물 건너온 외래종 쥐 뉴트리아가 제주에 출몰했다는 소식까지 접하면, 쥐는 예나지금이나 도민들에게 고민거리를 안겨주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쥐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서식지’가 넓어질수록 자신들에게 알맞은 환경이 생기는 셈이니 할 말이 없어진다.

쥐는 사람에게 환대보다는 홀대받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근면·성실은 쥐의 타고난 습성이다. 2020년 경자년 새해는 끈질기게 살아남는 쥐의 생명력과 근면 성실함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내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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