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유나양 장기 이식 받은 미국인 킴벌리씨도 제주 찾아 추억

안타까운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전 세계 27명에게 새로운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 제주 출신 故 김유나양이 동백나무가 돼 영원히 기억된다. 특히 유나양의 장기를 이식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미국인 킴벌리(23)씨가 유나양의 고향 제주에서 유나양 부모와 함께 동백나무를 식수하면서 뭉클함을 더했다.

23일 오전 11시 서귀포시 신효동 제주라파의집에서 유나양을 기리는 ‘생명의 나무 식수식’이 진행됐다. 식수식에는 킴벌리씨를 비롯해 유나양의 부모 김제박·이선경 부부가 함께했다.
故 김유나양의 생전 모습.

제주시 노형초등학교와 아라중학교를 졸업한 유나양의 꿈은 스튜어디스였다. 

영어를 공부하고 싶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유나양은 2016년 1월 미국 애리조나에서 사촌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등교하다 교차로에서 다른 차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유나양은 뒷자석에 타고 있었다. 뒷자석에는 에어백이 설치되지 않았고, 유나양은 머리에 큰 충격을 받으면서 뇌출혈을 일으켰다. 
 
사고 발생 3일후 현지 의료진은 유나양에게 뇌사 판정을 내렸다. 당시 나이 19세.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유나양은 평소 ‘하느님의 도우미로 살고 싶다’고 말해왔고, 부모는 딸의 의견을 존중해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유나양의 심장은 당시 33세의 소아과 의사에게, 폐는 68세 남성, 오른쪽 신장은 12살 남자아이, 간은 2세 영아, 각막은 77세 남성, 왼쪽 신장과 췌장은 동갑내기 19세 소녀에게 이식됐다. 또 유나양의 피부는 20명에게 기증됐다.
 
왼쪽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은 소녀의 이름은 킴벌리. 유나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미국에서 이날 제주를 찾은 당사자다.
 
딸에게 쓴 편지를 동백나무에 달고 있는 김씨 부부.

킴벌리씨는 2살때부터 당뇨병을 앓아 오랜 기간 투병했다. 18살이 되던 해 당뇨합병증으로 신장이 망가져 기능을 잃었고, 혈액투석기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다. 

힘든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킴벌리씨에게 동갑내기 유나양의 장기는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인 셈이다.
 
장기를 이식받은 킴벌리씨는 점차 건강을 회복했고, 반려자를 만나 지난해 11월 행복한 가정까지 꾸렸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재단법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킴벌리씨를 우리나라로 초청해 유나양 부모와의 만남을 추진했고, 장기간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성사됐다.
 
유나양의 장기를 이식받아 새로운 삶을 살게된 킴벌리씨(오른쪽)와 킴벌리씨 어머니(왼쪽)가 유나양의 얘기를 듣고 있다.

킴벌리씨와 유나양의 부모 김제박·이선경 부부는 지난 20일 서울에서 처음 얼굴을 마주한 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장기기증운동본부와 유나양의 부모, 킴벌리씨는 제주에 유나양을 기리는 나무를 식수하기로 했고, 이날(23일) 식수식이 진행됐다.
 
유나양을 기리는 나무는 제주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동백나무’로 결정됐다.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간직한 동백나무를 통해 유나양을 영원히 기억하고, 추억하자는 의미다.
 
제주를 방문한 킴벌리씨와 킴벌리씨 어머니, 김제박·이선경 부부는 유나양을 상징하는 동백나무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나무 바로 옆에는 사진속에 유나양이 밝게 웃고 있었다.
 
김씨 부부가 딸 유나의 장기를 기증받은 킴벌리씨와 대화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김씨 부부가 딸 유나의 장기를 기증받은 킴벌리씨와 대화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김씨 부부는 가끔씩 킴벌리씨를 바라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사랑하는 딸 유나양을 바라보는 듯 심경이었을 테다. 

킴벌리씨와 김제박·이선경 부부는 유나양에게 편지를 써 동백나무에 걸었다. 잠시 뒤 김제박·이선경 부부는 먼저 떠나 보낸 딸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 듯 눈물을 훔쳤고, 이내 사랑스러운 딸 유나양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도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김씨는 편지를 통해 “유나에게.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보고싶고, 그립고...세월이 흘러도 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 엄마 아빠 잊지말고, 동생들 잘 돌봐주고...부탁한다”고 했다.
 
딸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훔치는 김씨 부부.

이씨는 “사랑, 희망은 남겨준 유나의 소중한 선물. 이곳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분들 앞으로 건강해지는 날을 기약하며...유나가 지켜주길...사랑해”라고 전했다. 

취재진과 따로 만난 킴벌리씨는 유나양의 고향 제주를 방문한 소감으로 “특별한 경험이다. 유나와 함께 있는 기분이 들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킴벌리씨는 이날 김씨 부부와 함께 유나양의 생전 버킷리스트였던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해변을 방문한 뒤 오는 24일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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