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5일 이전 출생 청소년 참정권 부여...선관위, 교육현장 선거운동 운용기준 마련

고영하(18.가명)군은 오는 4월 15일 생애 첫 선거를 치른다. "학교에서만 배웠던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갖게 됐다"고 덤덤하면서도 다부진 심경을 밝힌 고 군. 그는 "어리다고 판단력이 떨어질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 역시 정치에 대해 민감하고 꾸준하게 관심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정치가 학습권을 침해할 수도 있지 않겠나라는 질문에는 "촛불 정국에서도 거리에 나선 것은 교복 입은 학생들이었다. 정말 학생들을 지켜주고 싶다면 추운 겨울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할 것이 아니라 투표를 통해 정당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정예지(18.가명)양은 "만 18세면 얼마든지 사회현상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라며 "선거는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지 않나. 이번 계기를 통해 정치권이 좀 더 학생들의 눈치를 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다만, 정 양은 "우리 반에 정치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 있다. SNS 팔로워도 많고, 정치인들 이름까지 꿰고 있다"며 "우리 반에 선거권을 가진 아이들이 5명 정도 밖에 안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평소에 정치를 접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특정 친구들의 분위기에 쏠릴까 걱정이 있기는 하다"고 말했다.

4.15총선 80여일을 앞두고 '교복 입은 유권자'에 대한 참정권이 부여된 제주지역 일선 학교 현장은 설렘과 긴장이 감돌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선거권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새로 투표권을 얻게 되는 유권자는 전국적으로 53만2000여명이다. 

제주지역에서는 총 1996명이 참정권을 부여받게 됐다. 선거일인 4월 15일 이전에 생일을 맞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 1747명과 방송중·고, 특수학교 학생들이 포함된 수다.

 교내 명함 배부-선거운동 가능?

교육현장은 벌써부터 바싹 긴장하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은 만 18세 이상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과정과 연계한 보편적 선거교육을 실시한다고 밝혔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충분치 않고, 전례나 가이드라인이 명확치 않아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권 하향과 관련한 법 조항은 한 문장이지만, 파장은 적지 않다. 방향성을 설정했을 뿐 세부사항은 제시하지 않은 탓이다.

교내에서 예비후보자의 명함을 배부하거나 연설을 할 수 있는지, 후보 당사자가 아닌 학생이 선거운동원으로서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지, 고등학교는 가능하고 초중학교는 불가능한 것인지 등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명쾌한 법적 근거는 없다.

다만, 선관위는 학교 현장의 혼란을 우려해 교육 현장의 선거운동 허용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운용기준'을 마련했다. 도교육청 실무진은 지난 28일 오후 제주도선관위를 찾아 의견을 교환했다.

먼저 선거일 기준으로는 만 18세가 넘어 선거권을 갖게되지만, 생일을 지나지 않은 18세 미만의 학생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가령 4월 1일생인 학생은 4월 15일 당일에는 선거권을 갖게되더라도 3월까지는 선거운동이 불가능하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18세 이상의 학생은 SNS나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선거운동이 가능하고, 선거사무소의 구성원이 될 수도 있다. 정당법에 따라 당원이 돼 당비를 납부하고 후원금을 기부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다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연설을 하거나 모임·집회를 가질 수는 없다. 또 학교 내에서 특정 정당·후보자의 명칭이 게재된 현수막이나 인쇄물을 게시할 수 없다. 교내 동아리 명의 등으로 지지선언을 할 수 없고, 허용 가능한 선거운동이라도 허위사실을 공표하거나 후보자를 비방하는 행위 역시 금지된다.

교원은 학교 내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불리한 발언을 해선 안된다. 학교 밖에서 수업 과정과 무관하더라도 교육관계에 있는 학생에게 특정 후보자에 대한 선거운동을 해선 안된다. 공무원으로서의 선거 중립을 요하는 국공립 교원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교원의 경우도 행위에 따라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

후보 당사자가 학교 운동장에서 명함을 배부하거나 연설하는 것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학교 관리자의 의사에 반해 선거운동을 하는 것까지 선거법에 보장되지는 않는다. 즉, 학교장에 의해 교내 선거운동을 제지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여전히 엇갈린 의견 "청소년 성숙"vs"정치중립 훼손" 

정치권의 찬반 양론과는 별개로 제주도내 교육계 안팎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김홍선 전교조 제주지부 사무처장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전세계적으로 이미 만 16세까지 참정권을 부여하는 나라도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청소년들이 정치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학교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 "정치라는 것은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학교에서도 교과를 통해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라며 "고3이면 자신들의 선택에 대해 충분히 성숙한 판단을 하고, 주관이 뚜렷한 나이다. 더 적극적으로 참정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선 제주교총 회장은 "교육은 언제나 정치적인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학교가 선거판이 돼 진보-보수로 나뉘어지고 학생들이 선거운동을 할 경우 학교 현장이 동요될까 걱정이 크다"며 "고3은 상당히 예민한 시기다. 한 두명이 교실에서 선거운동을 하다보면 선거에 들떠서 면학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회장은 "선진국에서 선거법 연령을 18세 이하로 하는 곳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정치 수준 등을 봤을때 안정되지 못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이미 선거법이 개정된 상황에서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일선 학교의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명순 참사랑학부모회 회장은 "요즘에는 고등학생들도 정치와 선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런 학생들은 좋아할 것이고, 또 일부 학생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보니 누구를 찍을지 몰라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겠나 싶다"며 "이미 선거 연령이 18세로 내려갔으니 보다 관심을 갖고 대비해야 할 것 같다"는 조언을 전했다.

이와 관련 고경수 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장은 "교육부, 선관위 등과 지속적인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 1차적으로 학교의 의견을 들어서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리 늦어도 3월 전에는 정리가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고 과장은 "이번에 선거권을 갖게되는 고3 학생수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다. 한 학교에 70명 정도고, 한 반에는 5~6명 수준"이라며 "해당 학생을 대상으로만 교육을 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선거인이 많지도 않은데 교육을 크게 확대하면 다른 학생들에게도 중요한 시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거법교육과 선거교육이 동시에 진행되는데, 상황에 따라 선거 교육할 수 있는 강사를 학교 현장에 보내는 식이 될 것 같다. 각 학교 교원은 왜 선거교육이 중요한 것인지, 참정권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정도로만 역할을 제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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