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실종사건 대응 역량 강화 방안 마련...112신고 시점부터 1차 위험도 판단키로

경찰이 지난 2018년 제주에서 일어난 게스트하우스 여성관광객 살인 용의자 한정민(사진 왼쪽)과 전남편 및 의붓아들 살해 혐의 등을 받고 있는 고유정 사건 등을 계기로 '실종사건'에 대한 초동대응을 강화한 내부 방안이 최근 마련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가 2019년 8월7일 보도한 [한정민에 속고 고유정에 당한 경찰 ‘실종 수사의 패착’] 기사와 관련해 경찰이 실종사건의 대응체계를 대폭 손질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경찰청은 실종 사건 접수와 동시에 강력 범죄 연관 가능성을 판단해 초기 대응 속도를 높이는 내용의 '실종사건 대응 역량 강화 방안'을 최근 확정하고 관련 내용을 각 경찰서에 하달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실종사건에 대한 1차 위험도 판단 시기가 112신고 시점으로 당겨졌다. 이어 현장 수사 회의와 추가 정보 수집을 거쳐 초동대응팀이 2차 위험도를 판단한다.

마지막 3차 위험도 판단은 최종적으로 각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와 형사과가 합동심의를 통해 판단한다. 경찰청은 3차 위험도 판단을 최초 신고 후 12시간 이내 마무리 하도록 했다.

위험도 분류기준과 경찰력 동원 수준도 바뀐다. 기존 실종사건의 경우 단순 성인남성의 실종사건은 지역경찰(지구대·파출소)이 대응해 왔다.

고유정 사건에서 경찰이 강력범죄 여부를 빠르게 판단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경찰이 숨진 전 남편의 휴대전화 발신지를 수색하는 동안 고유정을 시신을 훼손하고 제주를 빠져나갔다.

이에 경찰은 실종신고는 물론 단순 가출 상황에서도 지역경찰과 관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가 합동 대응하도록 했다. 아동과 성인여성도 범죄피해보다 안전 확인에 최우선을 두도록 했다.

최초 수사를 맡은 제주동부경찰서가 2019년 6월1일 오전 10시32분 충북 청주시내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고유정을 체포하는 모습.
최초 수사를 맡은 제주동부경찰서가 2019년 6월1일 오전 10시32분 충북 청주시내 모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고유정을 체포하는 모습.

기존에는 실종자가 아동이나 여성인 경우에만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지역 경찰 여성청소년과와 형사과가 대응해 왔다. 앞으로는 강력범죄 위험이 높은 경우 곧바로 형사과가 투입된다.

이는 대응 기준을 실종자의 성별과 나이가 아닌 실종 상황으로 삼겠다는 의미다. 경찰청은 이를 위해 최근 3년간 강력범죄 신고와 실종 신고 30만건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데이터화 했다.

경찰청은 실종사건 대응 역량 강화 방안에 대한 후속 조치로 기존 실종 수사 매뉴얼을 대폭 개선하기로 했다. 여성청소년 수사 인력도 증원해 실종 전담팀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중이다.

제주에서는 2018년 한정민의 게스트하우스 살인 사건, 2019년 고유정의 전 남편 살인 사건이 실종 신고의 초기 대응으로 부실수사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고유정(38.여)의 경우 2019년 5월25일 오후 8시10분 도내 한 펜션에서 전 남편(당시 37세)을 살해했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범행 발생 이틀 후인 5월27일 오후 6시10분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당시 사건은 동부경찰서 여청수사팀이 맡았다. 고유정은 경찰수사에 대비해 숨진 남편의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조작하고 5월28일 경찰과 통화에서는 자신이 성폭행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고유정의 말을 믿은 경찰은 지역경찰을 동원해 이미 숨진 강씨의 휴대전화 마지막 발신지를 중심으로 수색 작업에 나섰다. 그사이 고유정은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제주를 빠져나갔다.

2018년 2월8일 제주시 구좌읍에서 발생한 게스트하우스 살인 사건도 피해자 가족들의 실종 신고가 수사의 시작이었다.

제주 게스트하우스 여성관광객 살인 용의자 한정민이 2018년 2월10일 오후 9시53분 김포공항에서 면세점 쇼핑가방을 든채 누군가와 통화하며 빠져나오는 모습.
제주 게스트하우스 여성관광객 살인 용의자 한정민이 2018년 2월10일 오후 9시53분 김포공항에서 면세점 쇼핑가방을 든채 누군가와 통화하며 빠져나오는 모습.

피해여성(당시 27세)은 2018년 2월7일 울산에서 관광차 제주를 찾아 해당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이후 연락이 끊기자, 가족들이 사흘 후인 그해 2월10일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당일 동부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은 해당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오후 2시쯤 경찰관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한정민과 만났다. 한정민은 경찰의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면담이 끝난 후 한정민은 자신의 차량을 몰아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갔다. 경찰은 한씨의 답변과 다른 직원의 진술이 일부 불일치하자, 오후에 다시 전화를 걸어 행선지를 파악했다.

경찰은 곧 돌아온다는 한정민의 말만 믿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대기했지만 용의자는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공항으로 이동한 후 이날 오후 8시35분 항공편으로 유유히 제주를 빠져나갔다.

제주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전국을 활보한 한정민은 범행 발생 엿새만인 그해 2월14일 충남 천안의 한 펜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사건 모두 실종 신고가 있었지만 범죄 여부를 판단하고 형사들이 개입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초동 수사에 허점을 보이면서 유력한 용의자를 눈 앞에서 놓치는 일이 반복됐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도내 실종신고 접수 건수는 2016년 1500건, 2017년 1471건, 2018년 1764건 등 하루 5건 꼴로 발생하고 있다.

상당수가 미귀가 신고가 자진 귀가로 마무리되지만, 범행으로 이어진 사건은 초동 수사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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