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김승석 변호사

지난 6일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님이 해군기지계획과 관련하여 ‘평화의 섬 제주를 염원하며’라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비록 종교는 달리하지만, 교회의 내면적 성찰에서 나온 숭고한 이 뜻을 존경하고 존중한다. 왜냐하면 평화는 종교의 도그마를 초월하는 동시에 모든 종교의 도그마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류를 이롭게 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확신을 갖고 보편적인 대답을 할 수 있는 자는 거룩한 성직자 이외에는 거의 없다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나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성현들께서는 이미 2,000 여 년 전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마음의 지혜를 얻는 것’이라고 설파하셨고 오늘날에도 이 말씀은 우리 중생들의 마음속에 불변의 진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현대적 상황은 길들어진 우리의 근심과 억압을 부추기고, 또 우리들에게 쉴새없이 탐욕스럽게 만드는 자양분을 공급하고 무한경쟁 체제하에서 고도로 조직된 선전을 펼치면서 다방면에서 공격하고 피하려면 할수록 방어의 덫에 갇히도록 조작하고 꾸며대고 있다.
 
우리는 59년 전 4.3의 고통을 겪으면서 좌우대립과 갈등, 반목, 그리고 3만명의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통한의 잘못된 역사의 길을 걸었었다. 그런 역사적 통찰 위에 화해와 상생의 다른 길을 걷기 위하여 이 땅에 ‘평화의 섬’이라는 기치를 걸게 된 것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 그러함에도, 우리는 이런 변화의 물결에 거슬러 냉전 의 시대의 산물인 군사력 증강에 집착하고 있다.
 
그 순기능과 역기능을 상상해보자. 조약돌 하나를 연못에 던졌을 때 잔물결이 서로 결합해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며 저 끝까지 파문이 번질 것이다. 이와 같이 제주의 군사기지화는 주변국가의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그 결과 이웃끼리 대량살상의 무기를 들고 자기 보존의 형세를 취하는 어정쩡한 꼴이 될 것이다. 마치 도끼를 든 나무꾼이 밀림 속에 들어가자 나무들이 벌벌 떨면서 울고 있는 형국으로 비유할 수 있다.
 
군사기지건설로 8,000 여 억 원 상당의 떡고물이 떨어질 것을 바라보는 자들은 마치 칼끝에 묻은 벌꿀을 핥는 것과 같이 미래 세대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생태환경의 파괴라는 업보를 물려주게 된다.

현 세대들은 미래 세대가 향유할 수 있는 쾌적한 자연환경 또는 다양한 생명 파괴라는 것을 담보로 현실적 이익을 누리는 반면에 미래 세대들에게 천문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환경보전비용의 차용증서를 떨떠름한 유산으로 남겨줄 것이다.
 

   
 
 
현존하는 티베트의 위대한 스승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처럼 밀접하게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개인과 국가는 더 이상 그들의 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따라서 보편적인 책임의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만물의 상즉상입성(相卽相入性)을 제대로 알고, 우리가 사랑과 자비심으로 무장한 영혼의 무사가 될 때 군사기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본다.[김승석·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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