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57. 못 먹는다 못 먹는다 하면서 껍질까지 다 먹는다

* 허멍 : 하면서
* 거죽꺼지 : 껍질까지, 껍데기까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다. 아예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리거나, 말을 하면서도 속을 열지 않는 것은 사람 속을 모른다는 쪽에선 전혀 다르지 않다. 똑 같다. 진실을 털어놓지 않고 속에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보다 말을 하면서도 속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쪽이 더 비인간적일 수가 있을 것이다. 말과 행동이 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당하면서 언뜻 느끼게 되는 것이 그 사람의 인간성이다. 사람은 천인천색이다. 사람이 모두 제 마음 같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전에 콩을 깍지째 꺾어다 솥에 넣어 삶아서 먹었는데, 그걸 건져놓아 먹으라고 하면 먹지 못한다고 체면치레하다, 나중에는 염치불고하고 껍질째 다 먹으니 못 먹는다 한 말은 짐짓 해 본 소리, 거짓부리에 불과한 것이 된다 함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예전에 콩을 깍지째 꺾어다 솥에 넣어 삶아서 먹었는데, 그걸 건져놓아 먹으라고 하면 먹지 못한다고 체면치레하다, 나중에는 염치불고하고 껍질째 다 먹으니 못 먹는다 한 말은 짐짓 해 본 소리, 거짓부리에 불과한 것이 된다 함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말을 하지 말던가, 말을 할 것이면 자신의 속내를 더러는 내비쳐야 하거늘, 그렇지 못한 사람이 좀 많은가. 세상에는 그런 진실하지 모산 사람들이 널려 있다.

음식을 앞에 놓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흔히 보게 된다.

입으로는 진즉부터 먹지 못한다, 먹지 못한다고 거듭 말하던 자가 먹거리를 입에 갖다 대기 시작하자 한순간에 먹어 제치질 않는가.

우리 고대소설 ‘춘향전’에서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춘향이 옥중에 갇혀 있는 남원부에 내려와 장모 퇴기 월매를 만나, 자신의 행색을 숨기고자 일부러 거지 시늉을 하는 장면이 있다. 월매가 “거지 중에도 상거지가 되었구나.” 하고 장탄식하니, 그에 맞추느라 앞으로 밀어주는 밥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라 했다. 삽시간에 밥을 먹어 치웠다는 비유다. 여간 실감 나는 대목이 아니다.

마치 그런 꼴이다. 이건 못 먹는다고 얘기하던 사람이 아니잖은가.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또 앞에 누가 있든 없든 거리낄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먹어댄다. 아주 굽을 보고 있다. 먹지 못한다고 말하던 그 사람이 아니다. 참 게걸스럽지 않은가.

예전에 콩을 깍지째 꺾어다 솥에 넣어 삶아서 먹었는데, 그걸 건져놓아 먹으라고 하면 먹지 못한다고 체면치레하다, 나중에는 염치불고하고 껍질째 다 먹으니 못 먹는다 한 말은 짐짓 해 본 소리, 거짓부리에 불과한 것이 된다 함이다. 결국 겉 다르고 속 다른 격이다. 표리부동(表裏不同), 결국 겉 다르고 속 다른 격이다. 속마음과 다르게 말했으니까.

배곯아 정신이 하나 없는 사람 앞에 먹을거리가 나왔는데 무슨 알뜰한 체면이고 사양일까. 하지만 ‘못 먹는다, 못 먹는다’ 속에 없는 말을 할 것을 못 된다. 거짓 사양을 빗댈 때 하는 말이다. 상당히 풍자적(諷刺的)이다.

어디서 어떤 사람 앞에서 말하느냐, 말하는 환경에 따라 할 말을 다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못 먹는다’고 꾸역꾸역 되풀이해 가며 말하지는 말아야 한다. 금세 들통 날 걸 알면서. 최소한 품위는 지켜야지.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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