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향년 94세로 별세...9일 부민장례식장 제7분향실에 빈소 마련

핏빛 제주 4.3 광풍에 억울하게 옥살이 했던 생존수형인 故 송석진(1926~2020) 할아버지가 지난 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제주부민장례식장 제7분향실에 마련됐다. 향년 94세.

핏빛 제주 4.3 광풍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송석진 할아버지(1926년생)가 재심 개시를 앞두고 지난 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지난해 2월 현창용 할아버지, 9월 김경인 할머니, 12월 김순화 할머니에 이어 생존수형인 1·2차 재심청구인 중 네 번째 별세다.
 
빈소는 제주부민장례식장 제7분향실에 마련됐다. 9일 오전부터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등 조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생존수형인 1차 재심 사건을 이끌고 2차 재심도 맡은 임재성 변호사도 현장을 찾았다.
 
다른 생존수형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조문을 삼갔다. 고령으로 면역력이 취약하다보니 송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다.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난 송 할아버지는 소학교 4학년까지 마친 뒤 강제 징집돼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제주에 돌아와서는 친척이 운영하던 버스회사에 취직해 제주시에서 버스 운전을 했다. 당시 송 할아버지는 슬하에 2남1녀를 두는 등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4.3도민연대가 송석진 할아버지 빈소를 찾아 송 할아버지의 장남송창기(맨 왼쪽)씨 등 유족들과 인사하고 있다.

행복도 잠시, 송 할아버지도 4.3의 광풍을 피할 수 없었다. 출근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체포됐다.

그렇게 군사재판을 받았고, 목포형무소에서 옥살이했다.
 
수형인명부에 기록된 송 할아버지의 혐의는 내란죄. 1948년 12월부터 목포형무소에서 1년간 옥살이를 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다.
 
억울한 옥살이에 두려움이 가득했던 송 할아버지는 제주 땅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며 부산에서 뱃일을 시작했고, 이후 일본으로 넘어가 새로운 가정도 꾸렸다.
 
송 할아버지는 2020년 2월7일 이국 땅인 일본에서 노환으로 영면에 들었고, 눈을 감은 뒤 고향 땅인 제주에 돌아왔다. 자신이 왜 잡혀 갔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송석진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고인의 장남인 송창기(73)씨는 “아버지가 명예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둬서 너무 안타깝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4.3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송 할아버지가 이국땅 일본에서 숨을 거뒀다. 생존수형인 모두가 고령인 점을 감안해 조속히 재심이 개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차 생존수형인 18인은 지난해 1월17일 역사적인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결정을 이끌어 냈다. 생존수형인들은 이를 근거로 형사보상을 청구해 지난해 8월21일 법원에서 53억4000여만원 배상 결정을 받았다.
 
지난 11월에는 국가를 상대로 총 103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이와 별도로 송 할아버지는 송순희(95), 김묘생(92), 변연옥(91), 김영숙(90), 김정추(89) 할머니, 김두황(92), 장병식(90) 할아버지 등과 함께 2차 재심을 청구해 재심 개시 결정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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