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인간의 생태발자국(ecological footprint) / 고봉진 교수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덩그러니 잘려 나간 삼나무 둥지는 우리에게 말한다. 이미 베어냈으니 조금 더 베어내자는 어리석은 말은 말라고.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 장 사진이 주는 충격은 컸다. 비자림로 일부 구간(대천동 교차로∼금백조로 입구 2.94㎞) 삼나무 숲이 훼손된 현장 사진은 전국에 있는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2018년 8월 비자림로 공사는 중단됐지만 이미 수많은 삼나무가 쓰러진 후였다.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이 자연스레 형성됐다. 비자림로 공사 반대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게 필요하지 않았다. 사진 한 장으로 충분했다. 한 장 사진은 때론 여러 논거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시민단체의 우려와 반대에도 7개월 후인 2019년 3월 공사는 재개됐다. 이번에는 삼나무 숲에 사는 동식물들이 막았다. 중단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환경부 영산강유역환경청은 공사 중단과 환경저감대책 수립을 요청했다. 이전 환경영향평가는 부실로 나타났고, 다시 조사가 이루어졌다. 애기뿔쇠똥구리, 으름난초 등 10여종이 넘는 법정보호종과 천연기념물이 서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멸종위기종인 팔색조의 소리가 들렸다.  

더 우려스러운 건 비자림로 공사를 막지 못하면, 금백조로로 확장공사가 확대된다는 점이다. 비자림로 2.94km에 이어 금백조로 14.7km를 제2공항과 제주시를 연결하는 연계도로로 삼자는 계획은 삼나무가 처음 벌채되기 3개월 전인 2018년 5월 2일 ‘제주특별자치도 제1차 구(舊) 국도 도로건설·관리계획’ 고시(제주특별자치도 고시 제2018-110호)에 나와 있다. 제2공항 건설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정해진 듯이 도로를 넓히는 것이다. 비자림로 현장에서 본 ‘교통혼잡 예상되는 비자림로를 조속히 공사하라’는 플래카드는 슬프게도 솔직했다.

도로가 확장되면서 여러 난개발이 우려된다. 오름 군락에 호텔과 리조트가 속속 들어서고 외지인을 위한 집들이 들어설 것이다. 개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 다르지만, 올바른 발전 방향인지는 꼭 짚고 가야 한다. 우리는 제주 서부 난개발 현장을 알고 있다. 비자림로 공사는 제2공항 건설이 어떻게 진행될 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공사는 그냥 진행되지 않는다.

2002년 비자림로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것은 사려니숲길이 있는 비자림로 구간의 역할이 컸지만 비자림로 전체에 부여된 명예였다. ‘억새꽃과 삼나무 숲이 아름다운 도로’였다. 이번에 잘려나간 삼나무 풍광의 비자림로 구간도 아름다웠다. 외래종이다, 병풍림으로 조성된 것이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여러 지적에도, 삼나무들은 멋진 길을 만들었다. 자연이 예술가라는 생각이 든다. 가우디가 자연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그의 위대한 건축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이 놀랍지 않다.

나무들에게 눈이 생겼다. 운동가들은 나무들에 눈을 그려놓았다. 실제로는 나무들에겐 숲의 훼손을 막을 눈이 없지만, 대신 그들에겐 하늘을 향한 꿈이 있다.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인 ‘우듬지(treetop)’는 하늘을 향해 뻗어간다.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나무라고 해서 그들의 꿈을 아무렇게나 빼앗아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다 알고 있다. 우리의 자전적 기억 중심에 자연이 있다는 것을. 제주 자연 없이는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을. 제주 자연은 제주 사람들이 공통으로 향유하는 경험이다. 이 경험을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제주 자연이 좋아 제주를 찾는다. 숲길을 걷고 여유를 즐긴다. 제주가 도시라면 제주를 찾을 특별한 이유가 없다. 제주 자연이 제주 관광의 핵심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관광의 경제적 측면만 따져도 자연을 훼손해선 안 된다.

자연은 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천천히 함께 하려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준다. 숲길을 내는 게 필요하지 큰 길을 요하지 않는다. 자연에 접근하기 위해 길을 가는 것이지, 자연을 파괴하고 빨리 가기 위함이 아니다. 잠시 누릴 뿐 지배할 수 없다. 녹색 공간은 숲과 동식물의 것이다.  

‘비자림로 확장공사’를 보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생각한다. 지속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개발을 하는지 묻게 된다. 땅값, 집값이 오르고 마을 앞 도로가 확장되는 걸 땅과 집을 가진 사람이 안 반길 리 없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한숨을 내쉰다. 개발로 소중한 자연이 훼손되고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 개발과 보존을 동시에 이루는 방안이 없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겠다.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은 로마클럽의 위임을 받아 1972년 MIT 슬로안 경영대학 산하 시스템 역학 그룹이 작성한 ‘성장의 한계’(The Limits of Growth) 보고서에서 시작해, 1987년 세계환경발전위원회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 보고서에서 제시되었다. 브룬트란드 보고서(Brundtland Report)라고도 불리는 ‘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에는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미래 세대의 역량을 훼손하지 않고 현재의 욕구에 잘 대응하는 사회’가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명문장이 나온다. 

고봉진 제주대 로스쿨 교수 ⓒ제주의소리
고봉진 제주대 로스쿨 교수 ⓒ제주의소리

개발은 생명을 부양하는 자연의 내재적 능력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해져야 한다. 다큐멘터리 ‘Face of Jeju’, ‘물과 숲 그리고 흙의 이야기’, ‘제주도가 사라진다’ 등을 꼭 한 번 챙겨보시라. 훼손된 비자림 숲 사진처럼, 이들 영상은 우리에게 제주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한다. 시간이 되면 직접 한 번 찾아가보자. ‘百聞이 不如一見’이다. 

덩그러니 잘려 나간 삼나무 둥지는 우리에게 말한다. 이미 베어냈으니 조금 더 베어내자는 어리석은 말은 말라고. “나무를 베어낸 곳에는 사람과 차가 쉬었다 가는 쉼터를 만들어 그 졸속과 경망스러움을 성찰하고, 그 쉼터를 꾸미는 재목으로는 잘려진 삼나무를 활용하자”는 제주농부 정희성 시인의 말에 사뭇 귀 기울여진다. / 고봉진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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