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여운...오이스러움은 반갑고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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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예술공간 오이 연극 ‘스탠드 업 그리고 자의적의자’
9일 연극 '자의적 의자 그리고 스탠드 업'을 마친 출연진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동진, 이미연, 남석민, 문혜림, 이상철.  ⓒ제주의소리
9일 연극 '스탠드 업 그리고 자의적의자'를 마친 출연진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동진, 이미연, 남석민, 문혜림, 이상철. ⓒ제주의소리

제주 극단 예술공간 오이가 올해 첫 작품 ‘스탠드 업 그리고 자의적의자’를 들고 왔다.

이번 공연은 <스탠드 업>과 <자의적의자>라는 다른 작품을 연이어 선보인다. 두 작품은 엄연히 보면 구분되지만 ‘의자’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묘하게 이어진다. 

<스탠드 업>의 배경은 칵테일, 음악, 스탠드업 코미디가 어우러진 술집 ‘EXIT’다. 이곳 직원들이 이용하는 대기실 의자가 어느 날 모두 치워진다. 이유는 평소 가깝게 지낸 극단(예술공간 오이)이 작품에 쓰기 위해서다. <자의적의자>는 그렇게 가져온 의자로 극단 단원들이 토닥거리며 각자 ‘의자에 대한 연극’을 만드는 내용이다.

EXIT에서 일하는 스태프 상철, 바텐더 혜림, 가수 미연, 코미디언 동진. 우연인지 필연인지 네 사람 모두 동시에 일을 그만 둔다고 밝히면서 대기실은 발칵 뒤집어진다.

남몰래 빈 무대에 서서 가슴 속에 묻어둔 음악이란 꿈을 몰래 꺼내보는 상철, 소중한 가족이 세상을 떠난 아픔을 본인의 마지막 스탠딩 코미디 무대와 멋지게 연결한 동진은 비교적 또렷한 의미를 가지고 관객에게 다가온다. 혜림은 칵테일 속 의미를 나열한 언어유희로, 미연은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제주 인디밴드 러피의 곡 <우주별 13호>를 부르며 감성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다.  

<스탠드 업>은 직장을 떠나는 각자의 사정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듯 하다. 오히려 직장이란 약속된 영역 안에서 일면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면 서로에게 때로는 무심한 듯 거리감을 지닌 현대인들의 관계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서 현실에 부딪힌 주인공들은 고뇌를 삼키며 긴 여운을 남기고, 그렇게 모두가 떠난 EXIT에는 간판 불빛만이 반짝인다. 

<자의적의자>는 지난 2016년 10월 제주프린지페스티벌 당시 초연한 작업을 보강했다. 기본 틀은 동일하다. 누군가를 위해 존재할까 혹은 스스로 존재할 가치가 있나…, 의자의 존재론에 푹 빠진 연출자를 보다 못한 다른 극단 단원들은 한 명 씩 돌아가며 의자에 대한 작품을 만든다. 처음엔 서로의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공감을 쌓아가고, 말미가 돼서야 연출자가 왜 의자에 꽂혔는지 알게 된다.

<자의적의자>는 <스탠드 업>보다 더 많은 유머를 장착하고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짧은 패스를 연상케 하듯 배우들이 주고받는 호흡은 관객의 입꼬리를 수시로 잡아 올린다. 2020년 <자의적의자>는 초연보다 배역 한 명을 추가했다. 새로 등장한 4차원 ‘지선’ 덕분에 작품은 한 층 더 보는 재미가 늘어났다.

롤러코스터 타듯 질주하는 이야기는 어느새 바닥으로 가라앉는 차분함에 이르러 첫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의자야?’ 스스로 선택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가까스로 돌아와 처음으로 마주한 존재가 다름 아닌 의자였기 때문. 그때부터 의자는 단순한 도구가 아닌 본인의 깊은 내면을 보여주는 존재로서 인식되지 않을까.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강렬한 인상으로 작품은 매듭짓는다. 

<스탠드 업>이 관계의 종착점을 향해 이야기가 물 흐르듯 위에서 아래로 흘러간다면, <자의적의자>는 이해할 수 없는 한 개인의 행동이 어떤 이유에서 생겨났는지 마지막에 가서야 짧고 굵게 각인시키면서 극의 흐름을 순식간에 거꾸로 올려 보낸다. 이런 상반된 진행 구조에 더해 여운과 웃음이라는 각각의 색을 품고서, 두 작품은 '진지코미디극'이란 한 쌍의 짝을 이룬다. 작품을 쓰고 연출한 전혁준은 소개의 글에서 “이 작품은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다른 존재가 증명해 주지 않는 오롯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밝힌다.

이번 공연은 음악을 선택하면서 최대한 적재적소를 고민한 흔적이 느껴져 반가웠다. 달고 쓴 인생을 위로하는 Monty Python의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는 내포한 메시지와 조화를 이루고 장면과도 적절하게 어울리는 탁월한 선택이다. 한 소절만 나와도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Stevie Wonder의 <Superstition>과 음악·술·코미디가 어우러진 EXIT에 알맞은 느낌의 재즈곡 역시 마찬가지. 공연 대기 시간 동안 흐르는 장재남의 <빈 의자>는 작지만 섬세한 정성이다. 인터넷 문화를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브금’, ‘짤’을 사용하면서 웃음을 유발한 재치는 보다 넓은 관객 눈높이를 맞추려는 수고이기도 하다. 

2016년 초연 출연진 가운데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남석민, 오이 멤버로 첫 출연하면서 묘한 어색함으로 웃음을 선사한 이상철은 서로 다른 의미로 반갑다. 카랑카랑한 매력과 감미로운 목소리를 넘나드는 이미연,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은 아랑곳 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엉뚱한 캐릭터 문혜림, 그리고 시원시원한 매력을 뽐낸 서동진까지. 다른 작품에서 다른 매력을 선보이는 배우들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라는 개념이 그리 친숙하진 않기에 다소 낯설게 다가오지만, 이질적인 정도는 아니었다.

예술공간 오이는 ‘스탠드 업 그리고 자의적의자’로 2020년 문을 열었다. 진지함 속에 웃음을, 웃음 속에서 여운을 놓치지 않는 ‘오이스러움’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 즐거웠다. 남은 공연 일정은 15일, 16일이다. 

한편, 예술공간 오이는 3월 7일부터는 스웨덴 작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의 1888년 발표작 ‘미스 줄리’를 재해석해서 들고 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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