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 제주외고 전환 갈등](1) 5년전 무산된 일반고 전환 시도, 앙금 남은 연장선

정부의 고교 서열화 해소 방침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제주외국어고등학교를 두고 학교 구성원과 교육당국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공립학교라는 특성 상 자연스런 전환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제주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제주외고 학부모·동문·학생 등은 급기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실력 행사까지 불사하고 나섰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외고 전환과 관련한 갈등의 요인이 무엇인지, 학교 구성원과 교육당국 간 갈등의 접점은 없는 지 등 현재 불거진 논란과 해법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글]
지난 2015년 9월 당시 제주도교육청이 고교체제 개편과 관련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방침을 밝히자 제주외고 학생, 학부모, 동문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반발에 나서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5년 9월 당시 제주도교육청이 고교체제 개편과 관련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방침을 밝히자 제주외고 학생, 학부모, 동문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반발에 나서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정부가 지난해 11월 고교 서열화 해소를 목적으로 오는 2025년까지 전국의 외국어고, 국제고, 자율형사립고 등 3개 고등학교 유형을 모두 일반고등학교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전국적으로 후폭풍이 몰아쳤다. 

하루 아침에 일괄 폐지 위기에 놓인 전국의 각 특수목적고교는 행정소송, 헌법소원 등 법정소송까지 불사하고 나섰다. 여기가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었다.

그러나 제주의 경우엔 사정이 달라야 했다. 정부 시행령으로 인해 직접 영향을 끼치는 곳은 제주외고 한 곳 뿐이다. 그마저도 사학법인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고 있는 타 지역과 다르게 제주외고는 엄연히 '공립학교'다.

그럼에도 제주에서는 벌써부터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제주외고 학부모 등 내부 구성원들은 '제주외고 폐지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리는 등 공식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에 총 14개교의 공립 외국어고가 운영되고 있지만, 현재 갈등이 불거진 곳은 제주외고가 유일한 상황이다.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 갈등은 정부의 고교서열화 해소 방침보다 훨씬 이르다. 이미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지난 2015년에 이미 제주외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 했다. 그러나, 재학생과 학부모, 동문 등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도교육청은 고교체제 개편의 필요성을 주창했고, 특목고를 평준화지역 일반고로 전환하는 구체적 안까지 검토했다.

제주 고교체제 개편은 호기롭게 출범한 이석문 호의 핵심 의제였다. 교육당국은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군불만 지피다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불통 교육감'이라는 오명만 씌워졌다.

5년 만에 재현된 이번 제주외고 일반고 전환 시동은 이전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의 변화에 따른 충분한 '당위성'을 지니고 시작하게 됐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제주외고 구성원들은 여전히 교육감의 '의도'를 의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제주외고 비대위 관계자는 "제주외고는 공립학교다. 항간에 떠도는 사립 외고들의 문제와는 그 운영이나 재학생들의 면면이 아주 다른 학교다. 기숙학교로 운영돼 통학이 어려운 학생들이 찾는 곳으로, 일반고에 비해 사교육비도 투입되지 않는다. 재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모범적 학교"라고 주장했다.

이어 "도교육청은 객관적인 분석과 교육계의 의견 수렴절차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특히 신제주권 표를 의식해 신설 고교를 설립해야했지만, 교육부의 허가를 받지 못하자 제주외고를 이전하려는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도교육청은 정부 방침이 발표된 직후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 모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실제 이 교육감은 지난해 11월 21일 교육행정질문에 나서 "(제주외고 전환의)가장 큰 핵심은 지금 상태로 놔둬서 일반고로 그대로 갈거냐, 아니면 이 부분을 동(洞)지역 이전 등으로 갈거냐 하는 부분이 주된 과제로 본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이후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는 주요 의제로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 모형'을 설정했다. 

공론화 의제로 상정하기 위한 도민청원은 지난해 12월 24일 첫 글이 게시돼 3일만에 120명을 돌파했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마지노선인 500명을 채웠다.

최소 조건인 500명을 넘어서자 청원자 수도 그대로 멈췄다. 이는 곧 비대위가 '교육감의 의도가 반영된 의제'라고 의심케하는 배경이 됐다.

비대위 측은 "전국의 특목고가 헌법소원까지 제기했고, 앞으로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알 수 없는데 이 교육감은 헌법소원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을 제멋대로 앞당겨 시행하려 하고 있다"며 "오로지 자신의 선거를 위한 정치적 의도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 방침이기 때문에 2025년에 제주외고가 일반고로 전환된다면 별 수 없이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제주외고의 이전까지 시도하는 것은 결코 납득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비대위는 다가오는 제주외고 새 학기 입학식과 맞물려 집회 등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마련하는 등 반발의 강도를 높여가는 분위기다. / ②편에 계속됩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