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 제주외고 전환 갈등](2) 고교재배치 묘수 VS 교육당국의 꼼수

정부의 고교 서열화 해소 방침에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제주외국어고등학교를 두고 학교 구성원과 교육당국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공립학교라는 특성 상 자연스런 전환이 예상되기도 했지만, 제주의 사정은 녹록지 않다. 제주외고 학부모·동문·학생 등은 급기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실력 행사까지 불사하고 나섰다. [제주의소리]는 제주외고 전환과 관련한 갈등의 요인이 무엇인지, 학교 구성원과 교육당국 간 갈등의 접점은 없는 지 등 현재 불거진 논란과 해법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긴급 진단한다. [편집자 글]

제주외국어고등학교의 일반고 전환은 단순히 학교 1곳이 늘고 줄어드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 교육정책 변화로 정부 주도로 논의가 시작됐지만, 도내에선 일찍이 필요성이 제기돼왔던 '고교 재배치'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이 충돌 지점이다.

교육부가 외고·자사고·국제고 운영근거를 삭제하는 것의 궁극적 목적은 '고교 서열화 해소'다. 일반고로 전환되면 제주외고는 기존의 학생 선발 권한이 없어지고, 학생 선택에 따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무상교육도 전면 시행되는 등 사실상의 고교 평준화가 이뤄지게 된다.

제주외고 학부모·동문 등으로 구성된 '제주외고 폐지 반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역시 이 지점에 있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비대위는 "정부 방침으로 정해진 것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애초에 제주외고 존치 가능성이 먼저 논의돼야 했다는 것이 비대위의 주장이다. 

교육당국이 앞장서서 제주외고의 신제주권 이전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의제는 '제주외고 활성화'가 아닌 '제주외고 이전'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실제 도교육청으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제주교육공론화위원회는 제주외고의 일반고 전환 모형으로 △제주시 동(洞)지역 평준화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안 △현재의 자리에서 읍면지역 비평준화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안 등 두 가지로 설정했다.

즉, 어떤 방식으로 전환시킬지가 아닌 어디로 전환시킬지가 주된 논의 대상이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사전 준비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만약 첫번째 모형대로 제주외고를 동지역으로 이전시키는 방안이 유력시될 경우, 일반고 전환이 강제되는 2025년까지 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하다고 봤다. 일반적으로 학교를 신설하는데 소요되는 시기는 약 3년이다.

교육당국으로서는 제주지역 내 '교육불균형'을 해소할 적기라는 해석도 뒤따른다.

그간 제주시의 도시규모는 급격하게 팽창했지만, 동지역 내 고교 중 2000년대 이후 신설된 학교는 없었다. 가장 최근에 개교한 일반고를 찾기 위해서는 1986년 남녕고, 1984년 사대부고·대기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러는 와중에 2000년대 들어 일명 신제주권으로 불리는 연동·노형동 지구를 비롯해 아라⋅영평동, 삼화지구의 인구수는 크게 증가했다. 

해당 지역에 탐라⋅아라⋅한라⋅오름⋅노형중학교 등이 신설됐고, 최근에는 외도동 일대 학생 수용을 위한 서부중학교 신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고교생 수요 해결은 해묵은 숙제였다. 정치 시즌이 되면 신제주권 고교 유치 공약이 단골 메뉴로 오르내리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 비춰 학교를 신설하는 방안은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교육부 역시 전국적으로 학교 신설을 최대한 배제시키고 있다. 결국 어차피 일반고로 전환돼야 할 제주외고를 동지역으로 편입시키는 방안이 '묘수'로 떠오르게 됐다.

제주외고 이전 재배치를 조기에 논의하는 현 상황에 대해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대위 측은 현재 교육공론화위원회에서 해당 사안을 논의하는 것에 대한 법적·절차적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자사고·국제고·외고 전환을 반대하는 해당 학교들이 헌법소원까지 제기한 상황에서 법원의 판결을 받은 이후에 일반고 전환을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비대위는 교육공론화위원회 운영의 근거가 되는 '제주특별자치도 교육행정 참여를 통한 숙의민주주의 실현 조례'에 따라 공론화위원회가 '수사나 재판 중에 있거나 행정심판 등 다른 법률에 따른 불복구제 절차가 진행중인 상황'에 대해 의제로 설정할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다만, 비대위의 주장처럼 전국의 자사고·외고 등의 헌법소원이 현재 제기된 상황은 아니다. 가칭 전국외고연합변호인단이 꾸려져 지난달 5일 정부에 의견서를 제출한 사례는 있지만, 아직 수사나 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는 이르지 않았다.

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주체들은 사학법의 적용을 받는 사학법인이다. 공립학교로서 초중등교육법의 적용을 받는 제주외고의 사례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다. 굳이 문제를 제기하려면 공립 외국어고의 학부모 내지는 동문들이 직접 소송을 걸어야 가능해지는 구조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일반고 전환 과정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교육당국으로서의 입장도 있지만, 이에 반대하는 제주외고 구성원들의 입장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충분한 설득 과정을 통해 법적인 문제로 끌고가지 않는 것이 앞으로 거쳐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 (3)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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