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59. 말도 갈아타야 생기가 넘친다

* 골아타사 : 갈아타야, 교체해야
* 와랑자랑 : 축 처졌다가 되살아나 활력이 넘치는 모습

‘와랑자랑’이란 말에 시선이 꽂히지 않는가. 축 처져서 시들시들 하던 것이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기운이 되살아난다는 것이다.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나 짓을 나타내는 의태어(짓시늉말)이다.

제주 방언에는 사물의 어떤 상태나 일이 이뤄지는 모양 등을 시늉하는 말들이 발달돼 있다. 사물의 소리를 시늉하는 말(의성어)도 그에 못지 않다.

예를 들면,
① 밧 한 집이나 곡석을 와랑시랑 거둬들이는 거 보라게(밭 많은 집이니까 곡식을 엄청나게 거둬들이는 거 보아라)
② 기영 늘짝늘짝 걸엉 어느 세월에 먼 밧듸 갈 거고?(그렇게 느릿느릿 걸어 어느 세월에 먼 밭에 갈 거냐?)
③ 똠 하영 나난 못물에 들어산 발탕발탕 물 치대겸시녜(땀 많이 나니까 못물에 들어서서 팔딱팔딱 소리 나게 물 끼얹고 있다)
④ 아픈디도 일어나네 밧디 강 아잔 쌍쌍허멍 검질 매염저게(아픈데도 일어나 밭에 가 앉아 쌍쌍하면서 김매고 있네)

①과 ②는 짓시늉말이고, ③과 ④는 소리시늉말이다. 언어감각에서 표준어와는 거리가 멀다. 그만큼 독특한 어감과 분위기를 풍기 있다. ‘와랑시랑, 늘짝늘짝, 발탕발탕, 쌍쌍’ 말하듯 소리 내어 읽어 보면 말이 나타내려는 음성적 효과가 듬직하고 푸짐하기 짝이 없다. 그만큼 제주의 선인들은 태생적으로 언어감각을 타고 났다는 생각이 든다. DNA가 없었다면 이런 말들을 도저히 빚어낼 수 없었으리라.

‘몰도 골아타사 와랑자랑 혼다’의 ‘와랑자랑’이 바로 그런 제주적인 언어감각을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몰은 실개 엇나(말은 쓸개가 없다)’란 말이 있듯, 순하다가고 뒤틀려 성이 나서 내달리기 시작하면 멈출 줄을 모른다 함이다. 쉬지 않고 달리는 장거리 선수다. 옛날 전장에 나가던 말들은 그렇게 훈련됐을 법하다. 쫓고 쫓기는 싸움에서 견뎌내려면 첫째가 ‘달리는 힘’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특히 장수가 타던 말은 그야말로 천리마로 천금준마(千金駿馬)였다.

한데, 제아무리 쓸개가 없다 해도, 실제 멀고 먼 길을 비 오듯 땀 흘리며 지친 말은 더 힘을 내기가 어렵게 된다. 다른 말로 갈아타야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데, 제아무리 쓸개가 없다 해도, 실제 멀고 먼 길을 비 오듯 땀 흘리며 지친 말은 더 힘을 내기가 어렵게 된다. 다른 말로 갈아타야 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데, 제아무리 쓸개가 없다 해도, 실제 멀고 먼 길을 비 오듯 땀 흘리며 지친 말은 더 힘을 내기가 어렵게 된다. 다른 말로 갈아타야 한다. 한순간에 말 타고 가는 흐름에 활력이 넘칠 것이다. 비로소 말 타고 달리는 기분이 날 것이다.
 
같은 이치로 사람도 늘 그 사람이면 함께 하면서도 침체돼 일할 맛이 나지 않는다 함이다. 일을 위해 사람도 갈아야 능률이 오른다는 얘기다.

축구 경기에서 영 전략이 먹히지 않을 때는, 선수를 교체해야 한다. 멤버체인지하는 것이다. 경기의 흐름을 바꿈으로써 소중한 골로 이어지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말을 갈아태운’ 것이 아닌가.

기계가 노후하면 돌아가지 않는다. 낡은 기계는 부품을 갈아 줘야 정상가동이 가능해진다. 고장 난 기계는 멈칫거리고 꺼져가는 소리를 낸다. 새 부품으로 갈아 놓으면 삽시에 되살아난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부터 다르다. 지친 말은 갈아타야 한다. 그래야 ‘와랑자랑’하는 법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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