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아도 아지망이여
족아도 아지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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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의 借古述今] 160. 작아도 아주머니다

* 족아도 : 작아도
* 아지망 : 아주머니, 결혼한 여인, ‘아지방(아주버니)’의 반대말

먼저 졸작 수필 ‘참 작은 귤’의 일부를 소개한다.

‘서른 해 이웃인, 길 건너 집 아주머니가 귤을 갖다 먹으라 한다. 아내가 차를 갖고 과수원에 가 두 컨테이너에 담뿍 싣고 왔다. (중략)

아주머니는 올해 예순 다섯 나이에 7천 평(2만3140㎡) 감귤 농장을 해내고 있는 분이다. 대농이다. 여간한 깜냥인가. 옆에 일을 덜어주는 군 손도 없다. 십오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됐지만 그 농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웬만한 강단이 아니다.

현관 앞에다 놓고 보니 한준에 여느 귤하고 다르다. 알알이 참 작다. 고 자잘한 것들이 컨테이너 두 개에 가득 차 있다. 어림이 안되지만 잔디마당에 쏟아내 세어 보면 수 천 개가 되리라.

비상품이라 하지만 놀랐다. 많은 양에 놀랐고. 그것들 하나하낭 다 노릇노릇 익어 있는 데 놀랐다. 작아도 탱글탱글 올차지 않은가.

저게 어떤 것들인가. 작아도 다른 것과 똑같이 손이 간 것들이다. 거름 주고 약치고 가지치기하고. 그뿐이랴. 지난초가을, 두세 번 지나간 태풍에 주인의 애간장을 태울 만큼 태웠을 게 아닌가. 가지에 부딪쳐 생채기가 나면 어쩌나, 당도가 떨어지면 어쩌나. 얼마나 조바심 쳤을 것인가.

방풍이 잘됐던지 껍질에 살짝 긁힌 자국 하나 눈에 띄지 않는 해말쑥한 얼굴이다. 주근깨며 뾰루지 하나 없는 어린 소녀의 깔끔한 민낯 같다.

한 알 까 입에 넣는다. 달다, 참 달다. 놀라운 단맛이다. 먹는 데 크기는 문제될 게 없다. 짐작에, 흔히 귤의 당도 마지노선이라는 13부릭스는 너끈히 될 것 같다.

‘족아도 아지망’이라고, 작아도 귤이다. 외려 당차 보인다. 저것들 주인의 애정 어린 눈빛 속에 가을을 맞았을 것이다. 조금도 덜함이 없었을 게 아닌가. 햇볕 또한 공평했으리라. 아침이면 내리는 무서리를 맞으며 한낮에 내리쬐는 볕에 저렇게 결실로 완성한 엄연한 결과(結果)가 경이롭댜.(후략)

윗글에서 ‘참 작은 귤’을 ‘족아도 아지망’에 빗댔다. 작다고 귤 맛이 큰 것에 전혀 못지않다는 의미다. 몸이 눈에 띄게 왜소해도 제 몫을 거뜬히 해내는 사람들이 좀 많은가. 몸이 작다고 업신여길 일이 아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 했지 않은가.

이 말에 왜 하필 ‘아지망’을 등장시켰을까. ‘족아도 아지방’이란 말이 없으니 무슨 숨은 뜻이 있으리라. 제주도를 삼다도라 할 때, 거기 등장하는 여다(女多)와 같은 맥락일 것 아닌가. 숫자 개념이 아닌, 여인이 활동을 활발히 하므로 눈에 많이 띈다고 여자가 많다고 했으니.

제주도는 옛날 농경사회부터 여인이 많은 일을 해왔다. 밭 갈고 구루마(마차) 몰고 다니는 것 말고는 모두 여인의 활동 영역이었건 아닌지 모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도는 옛날 농경사회부터 여인이 많은 일을 해왔다. 밭 갈고 구루마(마차) 몰고 다니는 것 말고는 모두 여인의 활동 영역이었건 아닌지 모른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족아도 아지망’, 입에 올릴수록 재미있는 표현임을 실감하게 된다. 말 속에 녹아 있는 여인의 캐릭터의 ‘트다’를 훨씬 능가하는 존재감. 보통 당차고 여무진 아지망이 아니다. 남에게 많이 베풀고 나누려 한다. 또 베풀고 나누는 손이 넉넉하다. 베풂과 나눔은 몸의 작고 크고를 떠나 마음자리, 마음의 크기가 하는 것이다.

제주도는 옛날 농경사회부터 여인이 많은 일을 해 왔다.

밭 갈고 구루마(마차) 몰고 다니는 것 말고는 모두 여인의 활동 영역이었건 아닌지 모른다. 비근한 예로 어머니와 누이들이 8월의 땡볕 아래 조밭에 앉아 검질(김)맬 때, 아버지와 아저씨는 동네 폭낭(팽나무) 그늘에 앉아 장군, 멍군 하고 있기 일쑤였으니 하는 말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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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헌 2020-03-02 05:10:15
제비는 작아도 강남을 간다지요. 작아도 알차고 당도 높은 작은 귤.
이를 파치라 홀대 합니다. 작다고 나무라지만 맛의 승부는 당연 작은 귤입니다.
농사 짓는 사람의 심정, 직접 체험해봐야 느낄 것입니다.
180.***.***.246

dummy 2020-03-01 09:10:23
가끔 두령청헌 인용을 보며 실소할 때가 있는데 오늘도..
우리 한림쪽에선 수십년전에도 족아도 아지방으로 듣고 비유했는데 아지망이라니 . .
아지방의 비유는 며느리가 남편의 손아래 남동생의 호칭을 아주버니로 불러야 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뜻으로 알고있는데 제가 잘못 알고있습니까?
글중 "말속에 녹아있는 여인의 캐릭터" 이하의 대목은 어의가 없습니다. 제주의 여자들의 노동이 육지도시여자보다 많기는 하지만 제주의 남자들이 선생님이 글처럼 땡볕에 자신의 처자가 조컴질메는 시간에 장기나 두는 한량들은 아니지요..척박한 조건을 살았던 제주의 남자들을 생각없이 비하하는 느낌이듭니다.
1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