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코로나19 확진자 동선 공개된 업주들 '끙끙'…강제휴업, 자가격리, 자비 방역 등 ‘3중고’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우리도 살게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가게 이름은 다 나가서 '코로나 편의점'이라고 낙인찍혔는데, 아무런 지원도 없이 휴업하라 하고, 방역하라 하고, 자가격리 내리고. 이건 그냥 죽으라는거예요?"

지난 9일 찾은 서귀포시 중문동 소재 모 편의점 업주 김모(56)씨는 애끓는 심경을 좀처럼 감추지 못했다. 이 곳은 제주지역 두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A(22)씨가 한 차례 다녀가면서 지역사회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곳이다. 

A씨는 지난 7일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A씨와 직접 접촉했던 68명에 대해서도 전원 자가격리가 해제됐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정작 상호명이 드러나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은 여전히 수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코로나19 제주지역 두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직후 휴업한 서귀포시 중문동 소재 모 편의점. ⓒ제주의소리
지난달 22일 코로나19 제주지역 두번째 확진자가 다녀간 직후 휴업한 서귀포시 중문동 소재 모 편의점. ⓒ제주의소리

김씨는 제주도 보건당국으로부터 확진자의 동선을 통보받은 직후, 문을 걸어잠그고 방역조치를 취했다. 당시 카운터를 보고있던 아르바이트생이자 김씨의 아들은 곧바로 자가격리 조치됐고, 가족들까지 덩달아 칩거 생활을 하게 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코로나19는 숙주를 기반으로 하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상온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방역조치까지 완료됐다면 사실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그러나, 방역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연 편의점의 매출은 이전에 비해 80% 가까이 떨어졌다. 3주가 넘어선 현재에 이르러서도 반토막 난 매출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지역사회에서 '코로나 편의점'으로 낙인이 찍힌 후였다.

김씨는 "우리가 (확진자를)오라고 해서 온 것도 아니고, 확진자도 자기가 코로나19 걸렸는줄 알고 온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확진자가 그 공간에서 특별히 오래 머물렀다든가, 음식을 먹었다든가 하면 이해를 하겠는데 우리 가게에 와서 1분쯤 있었고, 알바생과 대면한 시간도 3초 정도였다. 말도 않고 결제만 하고 갔는데, 동선이라고 해서 가게 이름을 내놓으니 피해가 막심하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22일 제주지역 두번째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당시 지역사회에 전파된 서귀포시 공문서. ⓒ제주의소리
지난달 22일 제주지역 두번째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당시 지역사회에 전파된 서귀포시 공문서. ⓒ제주의소리

실제 제주지역 두번째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 정보는 좁은 지역사회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해 단톡방을 통해서도 확진자의 동선이 세세하게 적힌 자료는 쉽게 확인이 가능했다. 최초 동선 자료를 유포한 간부공무원은 직위해제를 당하는 씁쓸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씨는 "방역도 국가에서 하라고 했는데, 비용은 자부담이다. 30만원 정도 들어갔다. 장사 안되지, 영업손실 있지, 방역비까지 내라고 하지, 자가격리 조치까지 취하면 어쩌라는 것이냐. 지금 문을 열었지만 코로나 여파로 계속 적자"라며 "상호명을 공개했으면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무조건 개인이 그 손실을 떠안아야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언론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생각할 때는 언론이 제일 문제인 것 같다. 간판만 찍으면 될 것을 방송에서는 건물 다 보이게끔 촬영했다. 업주는 생각도 않고 앞다퉈 먼저 올리려고 사진을 찍어갔다. 국민 알권리만 있고 개인의 인권은 없나"라고 일침을 가했다.

코로나19 제주지역 두번째 확진자가 다녀갔던 서귀포시 소재 모 주점. 휴업안내문이 붙어있던 2주 전과는 달리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점에 양해를 구하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제주의소리
코로나19 제주지역 두번째 확진자가 다녀갔던 서귀포시 소재 모 주점. 휴업안내문이 붙어있던 2주 전과는 달리 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점에 양해를 구하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제주의소리
코로나19 제주지역 두번째 확진자가 다녀갔던 서귀포시 소재 모 병원. ⓒ제주의소리
코로나19 제주지역 두번째 확진자가 다녀갔던 서귀포시 소재 모 병원. ⓒ제주의소리

거리에서 만난 한 시민의 "지금은 (해당 업소가)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겠지만, 그래도 찝찝하지 않나. 굳이 피할 이유는 없지만, 굳이 찾아가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는 발언은 현 상황을 대변하는 듯 했다.

쑥대밭이 된 것은 김씨만의 사정은 아니었다. 확진자가 다녀간 음식점, 병원 등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A씨가 지인과 다녀갔던 중문동 소재 모 주점에는 '휴업 안내문' 대신 '전 직원 마스크 착용을 양해바란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업주 남모씨는 "원래 휴업은 하루만 하면 됐는데 당시 홀에서 일하던 직원 2명이 자가격리 조치됐다. 혼자 장사할 수 없어서 휴업을 10일 정도 했다"며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아서 근무하고 있지만, 장사를 못한 피해에 더해 지금은 매출이 50% 이상 떨어졌다"고 말했다.

남씨는 "소문이 금방 퍼졌고 (코로나19)확진자가 다녀갔다고 하면 민감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며 "전국적으로 우리 가게만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피해 입은 업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행정에서 대출 등의 문턱을 낮춰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A씨가 근무했던 모 호텔도 여전히 매서운 한파가 감돌고 있었다. A씨는 완치 후 퇴원됐지만 아직 근무지로 복귀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다만, 해당 호텔은 이번 소동을 계기로 방역조치에 더욱 철저를 기하고 있었다. 수 차례에 걸쳐 방역작업이 이뤄졌고, 이후 입구에서부터 일회용 장갑을 낀 직원이 수시로 발열체크를 하고 있었다. 공용공간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도록 조식 역시 룸서비스로 대체했다.

코로나19 제주지역 두번째 확진자가 근무하는 서귀포시 모 호텔. 입구에는 출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발열체크 기계와 일회용장갑 폐기물이 놓여있다. ⓒ제주의소리
코로나19 제주지역 두번째 확진자가 근무하는 서귀포시 모 호텔. 입구에는 출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발열체크 기계와 일회용장갑 폐기물이 놓여있다. ⓒ제주의소리

호텔 관계자는 "다중이용시설이다보니 호텔 찾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많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대외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2차 피해로 확산된 타 지역과는 달리 A씨는 마스크도 착용했고, 호텔 차원에서도 조치가 이뤄져 피해 확산을 막았다는 점은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지난달 4박5일간 제주여행을 다녀간 후 본국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던 중국인 B씨의 동선 주변 상권도 한 달 가까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B씨가 다녀갔던 제주시 연동 소재 모 호텔 관계자 강모씨는 "당시 도에서 처음에는 이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해놓고는 편의상 상호명을 발표해버리더라. 사전에 저희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줬으면 그에 대한 조치를 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 절차도 없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매출이 90% 이상 급감해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 하루에 60만원씩 투입해 3~4일간 방역을 실시했고 1주일간 문을 닫았지만 아직도 살아날 기미가 없다"며 "휴업하고 방역하는 동안 행정에서 지원이나 도움을 줬던 것은 없다. 방역 압축기 정도의 지원만 이뤄졌을 뿐"이라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의도치 않게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업주들 역시 코로나19의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한편, 제주지역에서는 지금까지 4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중 1명은 퇴원했고, 3명은 아직까지 제주대학교 음압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들과 접촉한 이력이 있는 자가격리자는 지난 8일 기준 총 5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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