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코로나 사태 해결 위해 정쟁 멈추고 함께 나서야 / 김헌범

그림의 떡

‘찻잔 안의 태풍’으로 그칠 것으로 기대했던 신종 코로나 19가 이제 전 세계로 일파만파 확산일로를 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증가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서구를 비롯한 세계 전체는 강력한 태풍 앞에 운명을 맡긴 채 가련하게 떨고 있는 촛불의 처지에 몰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태 초기 정부의 발 빠른 사전대책으로 며칠 동안 불과 30명 이내로 묶었음에도 감염자가 7000명을 훌쩍 넘는데다 사망자가 50명을 상회한다. 31번 확진자를 기점으로 뚜렷한 원인도 없이 일상적으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는 이른바 ‘지역사회 감염’이 대구, 경북 지역의 신천지 신도들을 중심으로 크게 확산됐다. 눈부신 연구 성과로 수많은 불치의 장벽들을 넘었다던 현대의학이 정작 건강한 사람에게는 평범한 독감에 불과하다는 이 ‘듣보잡’ 바이러스에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더욱이 갑작스런 확진자 증가는 병실부족으로 이어지며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해 사망자까지 나왔던 상황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몇 년 전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금 먹는 하마”라며 공공의료시설의 폐쇄를 강행한 어느 지자체 단체장의 독선적인 행정은 결국 어리석은 단견이었음이 입증됐지만 이제와 후회해 본들 “엎질러진 물 주워 담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몇 년 전 제주도가 중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어설픈 당근책처럼 던졌던 영리병원 또한 마찬가지다. 돈이 없으면 치료받지 못하는, 오직 돈을 벌기위한 영리 병원이 아무리 많은들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와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인간의 생명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의 본질에 충실한 공공의료시설인데 말이다.

포퓰리즘 타령

공공 복지와 의료 지원정책이라면 무조건 ‘선심성’ 인기영합주의라며 베네수엘라와 같은 빈곤국가들의 극단적인 예를 들며 망국(亡國)의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는 게 우리 보수정치의 전형적 규범이 돼버린 느낌이다. 이것은 지난해 빈곤계층에 대한 마스크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한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포퓰리즘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금은 4대강 공사처럼 국민이 원하지 않는 대형 토목공사에만 쏟아 부어야 하는 것이 보수적 정치철학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흐르는 강물을 보로 가두어 놓는 바람에 금수강산의 대명사였던 4대강은 어느 곳 할 것 없이 일거에 ‘녹차라떼’가 돼버린 상황이다. 반면에 비록 당장에는 긴급한 일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미리 대비해 놓는 것은 단지 쓸데없는 선심성 예산낭비로만 보이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도 코로나 발병이 가장 많은 대구, 경북지역에서는 경증 생활치료시설을 별도로 설치했음에도 병상이 턱없이 부족해 확진자 절반 이상이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것을 보고서도 앞으로도 공공의료시설의 확충을 외면하고 영리병원 허용을 계속 주장할 것인가.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는 돈이 없으면 치료받지 못하는 비극이 단지 가난한 서민들에게만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의 문제로 파급된다는 사실을 생생한 현실로서 보여준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유일한 청정 영역이었던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까지 얄팍한 경제논리를 적용하고 의료서비스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미화하며 돈벌이 수단으로 편입시키려고 부단한 노력을 펼치고 있는 보수정치인들과 재벌기업들, 그리고 보수 언론들에게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가 조금이라도 교훈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물들자 노 젓기

하지만 “혹시나가 역시나”다. 국가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는 게 정치인의 본성이던가. 한 언론은 보수야당이 자당의 의원회의에서 “지금 이게(신종 코로나 사태가) 분명한 찬스니까... 잘 관리만 하면 된다”라고 말하며 오히려 현 상황을 즐기는 장면을 보도한 바 있다. 한 마디로 “물들자 노 젓기” 식이다. 그러잖아도 정부의 최고위층을 비롯한 모든 방역 관계자들은 전문 인력과 장비도 턱없이 부족해 고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태해결을 뒷받침하기 위해 입법기관으로서 나름대로 본연의 역할을 하는 대신 상대방을 정적(政敵)이라고 합당한 이유 없이 비난과 공격만 하는 게 지금 우리 정치계의 모습이다. 가까운 일본에서 야당이 정쟁을 자제하고 아베 정부에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 창궐 중인 상황에서 일부 보수언론들까지 합세해 정부의 잘잘못만을 따지는 정치놀이에 골몰하는 것은 급한 불을 끄고 있는 사람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모든 것이 “기승전 대통령 잘못”이다. 하다못해 갑작스런 수요 급증으로 인한 마스크 공급부족도 대통령 잘못이고, 공급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마스크 배급제도 대통령의 ‘공산주의’식 사고를 보여주는 실책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마스크 공급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그들에게 있을까. 가만히 앉아서 비판만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당으로서 할 일이 아님은 누구보다 정치인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불을 끄는 것은 당장 해야 하는 일이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충분하다.

진정한 핵심 숙주

오죽해야 많은 외신들이 우리 정부의 사태 해결에 가장 큰 걸림돌은 보수 야당과 언론들이라고 지적했을까. 정부가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는 것을 여전히 비판하는 것도 그렇다. 사태 초기라면 모를까, 지금 신종 코로나의 가장 핵심적인 숙주는 신흥종교인 신천지 신도들이다. 자신의 종교를 감추고 음지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며 포교를 하는 사이비 종교의 반사회적인 특성상 감염자들을 파악하고 격리시키는 전형적인 방역방식을 실시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어느 보수야당의 대표는 지난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입국에 대해서는 강력히 비난하면서도 신천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석연치 않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신천지를 신천지라 떳떳이 밝히지 못하는 모습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치인들은 신천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진정한 이유는 신천지 이만희 교주가 기자회견 석상에 정체불명의 박근혜 시계를 자랑스럽게 나온 모습에서 어느 정도 짐작케 했다.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야당의 주장대로 중국인 입국 허용이 원인이라면 중국인들이 많이 입국하거나 거주하는 지역들인 인천이나 안산, 혹은 서울 대림동 등에서는 감염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정치공학적 사고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명칭인 ‘신종 코로나 19’ 대신 굳이 중국 지명을 끄집어내며 ‘우한폐렴’이라고 지칭하는 것에서도 고스란히 들어있다. 정쟁(政爭) 때문에 가장 중요한 병원(病原)을 애써 외면하는데 더해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무역도, 외교도 포기할 셈인가. 일본 정치판이 특별한 게 아니라 전쟁과 천재지변과 같은 국가적 긴급 상황에서는 모두가 정쟁을 멈추고 손발 벗고 나서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다. 자칫하다간 소도 잃고 외양간도 모두 잃을 수도 있는 게 지금이다. 이제라도 국난 극복을 위해 여야 할 것 없이 손발 벗고 나서야 한다. 지금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 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모범 사례로 우리를 관심 깊게 지켜보고 있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 ‘소리 시선(視線)’은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쓰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매주 수요일 외에도 시시각각 벌어지는 주요 이슈에 대해선 비정기적으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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