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23) 코로나19, ‘개인의 품행’ 전에 ‘시스템의 취약점’을 보자

'제주 청진기'는 제주에 사는 청년 논객들의 글이다. 제주 청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청년이 함께 하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 청년들의 삶,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서브컬쳐(Subculture)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는' 주제를 다룬다. 전제는 '청년 의제'를 '청년의 소리'로 내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듯 청년들의 이야기를 격주마다 속 시원히 들어 볼 것이다. [편집자]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빗물은 높은 곳에서 흘러내려 반지하를 채운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빗물은 높은 곳에서 흘러내려 반지하를 채운다.

'기생충'은 계단 영화라고 불릴 정도로 계단이 많이 등장한다. 계단은 영화에서 계급적 은유로 활용되곤 한다. 영화 속 계단은 주로 계급격차와 갈등, 계급상승의 욕망과 좌절을 나타낸다. '기생충'의 계단은 대저택으로부터 시작되어 반지하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진다. 영화는 계단을 통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영화에서 계단이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은 후반부에 있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주인공 가족이 저택에서 몰래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빗물은 계단을 타고 내려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가득 채운다. 결국에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점에서 가난한 가족의 상황과 빗물은 닮은 구석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재난에 직면했다. 영화 속 장면처럼, 예측하지 못한 재난은 계급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바이러스는 마치 빗물처럼 무차별적으로 내리는 듯 하지만, 결국에는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다. 집단감염의 발생지로 보도되는 요양병원, 종교시설, 콜센터는 열악한 실태가 평소에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곳이었다. 가난이 빗물처럼 고여 있던 이곳은 이제 감염병의 근원지라는 이름으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한 켐페인으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활동을 자제하라는 의미이다.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다. 정확히는 거리를 두고 싶을 때와 두고 싶지 않을 때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특권이다. 사회의 낮은 곳에는 이런 권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희망이 필요한 때이다. 하지만 그런 권리가 충분히 있는 자들, 재난에도 적당히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외치는 희망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현재의 재난으로부터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공적 논의에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공공의료시스템은 좋은 예다. 그동안 의료민영화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있었지만, 결국 재난과 같은 이례적 상황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공공의료다. 특히 제주는 의료민영화 논쟁에 한 가운데 있었던 곳이다. 

다행히도 현재는 확산세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만약 제주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을 경우에 제주의 의료시스템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힘없는 자들의 집단감염이나, 국가의 의료시스템이 아닌 언제나 ‘조심하지 않는 개인’들이다. 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며, 자가격리를 하지 않는, 남에게 피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민폐는 가장 큰 죄악으로 여겨지며 의료시스템의 공백 역시 자발적이고 위대한 개인들이 메꾸게 된다. 이렇게 사회의 구조적 위험은 개인에게 전가되고, 개인은 특정한 품행을 강요받게 된다.

사회의 위험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 정치가 사라지고 개인의 선택만이 남는 것. 나는 이것이 계급사회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러스는 권력과 함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다. 

'기생충'의 등장인물 ‘기우’는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 속에서도 다시금 계획을 세운다. 우리에게도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계획이 필요하다. 계단을 뒤집을 계획 말이다.

현우식(29)

바라는 것은 깃털같이 가벼운 삶

탈제주를 꿈꾸며 서울로 향했으나
돌연 제주로 돌아와 사회학을 공부중

가까운 것엔 삐딱하나 먼 것에는 관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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