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43. 컨테이젼(Contagion), 스티븐 소더버그, 2011.

영화 ‘컨테이젼’ 포스터. 출처=네이버 영화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악수를 하려다 손을 거두었다. 그도 겸연쩍게 웃었다. 마스크를 낀 모습이 일상이다. 학교도 휴교를 했고, 도서관도 휴관 중이다. 방역복을 입고 지나가는 사람을 심심찮게 본다. 영화 ‘컨테이젼’이 현실이 됐다. 우리는 영화적 인간으로 살아간다.

불안도 전염력을 지니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는 한 이 불안이라는 전염병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치료제가 개발된 뒤에는 또 다른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할 날이 올 것이다. 어떻게 인간만 진화하겠는가.

K는 지난 1월에 찻집을 시작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손님이 거의 없다. 한적한 곳을 찾는 여행객이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혼자 몇 시간 동안 찻집에 있으면 무섭다고 한다. R은 늦깎이 대학생인데, 개강이 뒤로 미루어지자 아예 휴학을 했다. 다른 일과의 조정이 어려워져 학업을 뒤로 미룬 것. S는 글쓰기 강사인데 도서관이나 학교 수업들이 모두 취소되어 석 달째 손가락을 빨고 있다.

사회적 거리. 이 말이 있다면 시에서는 시적 거리, 라는 말이 있다. 이 시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객관적 상관물이다. 객관적 상관물을 두고서 시적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했을 때 공감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만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독자의 마음에 들 수 없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전염병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시간과 연대 의식이다. 시간이 마련될 때까지 연대해야만 위기를 넘을 수 있다. 이 객관적 상관물은 주관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서로 인정하는 사물에 내 마음을 이입할 때 기능을 발휘한다. 김소월 시 ‘가는 길’에서는 ‘해’와 ‘강물’이 객관적 상관물이다. 이별하기 주저하는 ‘나’를 재촉하는 것들이다.

그런 시적 거리와 연대 의식은 닮았다. 나는 상관없어, 라는 이기적 생각이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며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연대의 마음에서 사회적 거리가 형성된다. 그런 사회적 거리를 보면 시적 거리만큼 아름답다. / 현택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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