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표선 백사장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표선 백사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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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詩 한 편] (44) 곧건 들어봅서/ 강덕환
토산 사람들이 집단 학살된 표선백사장. ⓒ 김연미
토산 사람들이 집단 학살된 표선백사장. ⓒ 김연미

물 싸민 해영헌 모살
물 들민 널른 바당

열 여덟에서 마흔까지 토산리 젊은 사름덜
향사로 모이랜 허난 줄레줄레 간 겁주
그 사름덜 모살판에 끗어당 무사 죽여불미꽈
잊혀지질 안 헙니께, 동짓돌 열 아흐렛날
곱닥헌 처녀덜 따로 심어단 어떵 해분 얘긴
입 종강 말쿠다

토벌 갈 거매 지서로 모이랜 허난
세화리 사름덜 어이쿠! 이거 이제 살아질로고나
나흘치 쏠이영 촐래 고심 짊어졍 가신디
모살판에서 오꼿 죽여분댄 헌 말이 무슨 숭시꽈
어떵 잊어붑니까 동짓ᄃᆞᆯ 열 일뤳날
경만 헌 게 아니라 다리에 총 맞아 살아난 사름
기멍 ᄃᆞᆯ으멍 집이 와신디
또시 심어강 죽여불 일은 무슨 말이우꽈
그 사름 혼자만이민 무사 이말을 고릅니까
아이덜이영 각시까지 심어단 죽여부난
물이라도 거려놩 식게 멩질 초릴 대가 끊어져 분 거라마씀

숨 보딴 곧질 못 허커매 물 혼적 거려와 봅서
이 말은 도시령 좋아, 말앙 좋아
성읍리 가민 조칩이 조순덜
씨가 이시민 줄 뻔낸 허멍 문짝 모지라나십주
가시리 사름덜은 뒷 해 나는 정월 초 나흘날 하영덜 죽곡
수망리에선 혼 궨당 열 명이 죽었댄 헙디다
다 곧잰호민 모살만헌 날이 이서사 헐거난
고만 고르쿠다만은 하다 잊어불지 말앙
옳은 거, 그른 거 그믓 긋엉 밝히곡
억울헌 원정 풀어주멍 이런 일 다시 없게끔
바당 곹이 널른 모솜덜 가졍 살아가게 마씀

-강덕환 [곧건 들어봅써] 전문-

‘열여덟에서 마흔까지 토산리 젊은 사름덜’ 중에 한 명, ‘향사로 모이랜 허난 줄레줄레 간’ 사람들 중에 한 명, ‘모살판에 끗어당’ ‘죽여분’ 사람들 중에 한 명. 스물 일곱 살 된 나의 할아버지 얘기다. 아들 사형제를 둔 경주김씨 입도 21대 종손. 

동짓달 열이렛날과 열여드렛날. 이틀 동안 마을은 집집마다 제사음식을 준비하느라 일손을 놓았다. 저녁이 되면 괸당들끼리 집집마다 순서를 정해가며 제사를 지냈다. 제사와 죽음이 곧바로 연결되지 않았던 유년. 하얀 쌀밥에 떡이 차려지는 날, 차라리 명절 같았던 마을 분위기에 들떠 있던 날이었다. 

풍선에 바람 빠지듯 알게 되는 우울한 역사를 받아들이면서도, 내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수많은 조상님들 중 한 분에 불과하셨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죽음. 얘기를 하지 않음으로 해서 기억조차 없는 거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셨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번도 입 밖에 당신 아버지의 죽음을 꺼내신 적 없으신 내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주변에 할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 해 줄 만한 사람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말씀 한 번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후회는 늘 어찌해 볼 수 없는 시점에 찾아오는 것. 사람은 남아 있지 않고 그 많은 시간들만 후회의 겹을 접은 채 쌓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어리석게 살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전해주고 있었던 것. 이렇게 시집 한 페이지에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중학교시절 여름이면 학교에서 단체로 해양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해수욕을 즐기던 표선해수욕장, 교복치마를 허벅지까지 말아 올리고 물속에 들어가 맨 발바닥을 비비다 보면 발가락에 걸리던 조개. 썰물에 드러난 맨얼굴을 알고 있기에 밀물이 되어도 그 무서움을 무시하고 놀다보면, 불현 듯 돌아갈 길을 잃게 하던 표선백사장. 

사람의 신체 어느 부위일지도 모를, 물과 모래에 다 삭아가는 뼈가 발가락에 걸려 나왔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들이 꿈처럼 잊은 지 이미 오래. 한 편의 시를 들고 다시 찾은 표선백사장. 맨얼굴의 바다가 오래도록 나를 붙들고 있었다.

* 현재 편집기가 제주어 중 '아래 아'를 구현하기 힘든 관계로 관련 일부 표기를 조정했음을 양해바랍니다.

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 산문집 <비오는 날의 오후>를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오랫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글만 쓰면서 먹고 살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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