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예술칼럼, Peace Art Column] (10) 박경훈

제주도는 평화의 섬입니다. 항쟁과 학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주4.3이 그렇듯이 비극적 전쟁을 겪은 오키나와, 2·28 이래 40년간 독재체제를 겪어온 타이완도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세 나라 세 섬의 예술가들이 연대해 평화예술운동을 벌이고 있어 이에 대한 창작과 비평, 이론과 실천의 공진화(共進化)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세 섬 예술가들의 활동을 ‘평화예술칼럼(Peace Art Column)’을 통해 매주 소개합니다. 필자로 국외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어 일어, 영어 번역 원고도 동시 게재합니다. [편집자 글] 

코로나19 사태가 전 지구를 강타하고 있다. 이미 그 파장은 보건을 넘어 경제 분야까지 영향을 끼치면서 세계 경제 역시 전대미문의 상황에 맞닥뜨리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코로나19 사태는 단순히 질병과의 전쟁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21세기 세계의 질서를 뒤바꾸는 문명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의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유래 없는 조치들을, 그중에는 사회주의자들의 발상이라는 조치까지 포함하여, 과감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어쩌면 바이러스 공황이라 부를 만한 경제 위기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당장의 전염병과의 싸움, 그 이상이다. 지금 전 지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입에서 통상적인 경제담론을 넘어서는 문명적 점프를 맞이하고 있다.

이 와중에 기본소득이라는 논쟁적인 화두도 부분적으로나마 시행에 들어갔다. ‘재난‘이나 ’지원금‘이라는 명목이 붙었지만, 어쨌든 기본소득 개념의 경제적 조치들이 시행되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몰락과 실업 등으로 인한 국민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직격탄을 맞은 직군은 어디일까? 그때그때의 공연과 전시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예술가들이다. 예술의 본령이 사람을 끌어 모으는 일인데,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가득이나 경제적으로는 후순위인 예술가들은 코로나19 대공황의 최대 피해자인 셈이다. 하여 이번 평화예술 담론은 예술과 경제 이야기로 풀어보고자 한다.

직업으로서의 예술은 여전히 불신의 대상이다. 예술가로서 산다는 것은 바로 경제적 불확실성의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예술가의 경제적 상태는 항상적 실업 상태라 표현한 바 있다. 적절한 표현이다. 요즘은 아트페어도 활성화되고 시장도 다변화되어 능력만 있으면 꽤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내 생각으로는 전혀 그러지 않다. 여전히 예술가의 수는 너무 많고, 창작 활동이 지속가능하도록 생계가 보장되는 을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평화예술은 특히 돈이 안 되는, 일명 신세 망치는 예술의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왜 평화예술은 돈 안되는 예술일까?

미술에 국한시켜 시장과 평화예술의 관계를 성찰해보자. 왜 평화미술은 지속적인 발전과정을 이어가지 못할까? 평화를 갈구하는 예술은 분명 세계 예술사에서도 도도한 흐름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예술은 자본주의 미술시장 체제 내에서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사회적 권력과 자본의 속성이 좌우하는 예술시장 시스템이 있다. 그 시스템에는 엄청난 경쟁을 통해 성공한 극소수의 예술가들만이 진입할 수 있다. 평화예술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대부분의 예술 행위들은 민중들의 삶, 또는 공공적 가치를 위해 헌정된 것들이기에 시장 진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런 까닭에 평화예술은 자본주의 경제적 원리로 수렴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기본적으로 노동을 통하여 재화를 얻는다. 노동행위든, 노동의 결과물인 상품을 통하여서든 말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평화예술과 시장은 불화한다. 평화예술가들이 생산한 작품들은 그 쓰임새가 자본주의 미술시장에서 요구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의 미술품들과 소위 잘 나가는 예술가들의 작품은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의 제도권 예술을 선도하고 있다. 이들 시장에서는 소위 예술의 다양성에 기반하여 새로운 호기심을 유발하는 기발한 작품들이 주목받는다. 그들을 후원하고 육성하는 예술자본과 결합함으로써 시장권력과 공생하면서 주류 예술가들은 지속적으로 재생산을 보장받는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동시대 평화예술 활동과 그 성과인 작품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피눈물나는 역사의 기억을 들춰내거나 삶의 현장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그 속에서 함께하는 행동주의 예술가들의 작품이 컬렉터의 호감을 끌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 오키나와, 대만 등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거나 현재 진행형의 전쟁 위기를 비판적으로 표현하는 미술가들에게 예술시장의 빈 자리는 없다. 예술시장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큐레이터들이나 평론가들. 저널리스트들 역시 그들만의 리그 안에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은 평화예술가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공공영역에서 이들에 대한 지원이나 육성을 바랄 수 있을까? 그건 또 다른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 국가주의적 위계에서 변방에 위치하는 섬들의 아나키 성향은 국가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 국가와 각 지역의 평화예술가들은 역시 자주 긴장관계가 되거나 대립적인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최근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표현의부자유전 사태나 한국 광주비엔날레의 닭대가리 사건에서 보듯이 평화예술은 국가주의 또는 국가권력과 대립하며 길항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술가 또는 작품이 그나마 대우를 받을 때는 운좋게 미술사적 의의를 인정받고 박물관 미술관의 수장고로 입고될 때쯤이다. 물론 이 즈음 그 예술가들에게 시장은 이미 의미를 상실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9년 12월 19일~2020년 1월31일 제주4·3 71주년을 기념하는 동아시아평화예술프로젝트 ‘섬의 노래’ 기획특별전에 평화의소녀상 등 '표현의 부자유전'이 초청됐다. 제주4·3평화재단과 동아시아평화예술프로젝트조직위원회가 주최한 ‘섬의 노래’ 기획특별전은 제국주의와 국가폭력에 희생된 제주, 오키나와, 타이완 등 섬의 역사를 예술로 표현하고 연대하는 행사로 기획됐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홍성담의 작품 '세월오월'.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예술의 전통은 세계미술사에서 나름대로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평가받아 왔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가치는 무엇일까? 마치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처럼, 평화예술은 평화의 시대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탄광의 카나리아’처럼, 평화의 위기를 감지하고 이를 신호하는 일종의 평화안전망이기도 하다. 전쟁과 폭력으로 인한 반인간적이고 반문명적인 도전에 맞서 응전하는 또 다른 문명의 위기예보시스템이기도 하다. 그것은 예방적으로, 징후적으로 향후 도래할 위기를 진단하고 알리기도 하지만,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고 교훈으로 삼는 작업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평화예술은 공공재이다. 물과 공기가 그러하듯 평화의 시대를 유지하거나 평화의 시대를 갈무리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사회의 공공재이다.

지난 20세기, 인류사에서 유래 없는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지나면서 그에 대한 예술의 응전력도 확장되어 왔지만, 이들의 경제적 소외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공공재로서 평화예술의 가치에 동의한다면, 사회는 평화예술의 지속가능성과 발전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재정적인 측면에서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적대 행위에 저항하는 평화예술이 자본주의 예술시장에는 부적합하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해주는 비평의 역할은 확장되어야 한다. 더 많은 비평가들이 평화예술의 가치평가에 동참해야 한다. 또한 공공예술에서 평화예술이 활동할 기회를 더 많이 보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제적 보장을 포함한 평화예술의 확장을 모색할 수 있다. 평화예술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은 ‘평화탄광의 카나리아’를 살리는 일이다. 코로나19가 세상의 풍경을 바꾼다. 그 바뀌는 풍경 중에 경제 밖의 평화예술에 대한 공공적 논의가 포함되기를 바란다. / 박경훈 작가

박경훈 작가는 제주대학교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사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4.3목판화를 중심으로 미술운동을 했으며, 각 출판사를 설립해 200여종의 인문학 서적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탐라미술인협회 회장, 제주민예총 이사장,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비영리예술공간 포지션민제주 운영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和平藝術作為公共資產

樸京勳

COVID-19的局勢已席捲全球。其影響已超出健康範圍,而且還影響世界經濟,全球經濟正面臨前所未有的情況。由病毒引起的COVID-19事件似乎只是一場疾病戰,但它預示著文明的轉變,這種轉變將扭轉21世紀世界的秩序。特別是,經濟舞台上的資本主義強國正在採取大膽而迅速的措施,包括包括社會主義思想在內的以前從未採取的措施,經濟危機已引發了病毒恐慌。COVID-19的局面不僅是與流行病作抗爭。今天,世界正在進入第四次工業革命時代,並且進入超越尋常經濟論述的文明跳躍。

在此過程中,有爭議的“基本收入”問題得到部分討論。儘管有“災難”和“紓困”的名稱,但基本收入概念的經濟措施仍在實施。由於個體經營和失業率下降,這是一項支持人民生活的政策。在這個COVID-19中,哪個工作組受到的衝擊最大?是藝術家團體,他們通過不時表演和展示自己的作品謀生。憑藉集會藝術的精髓,但又遠離社交聚會,經濟上處於從屬地位的藝術家是COVID-19大蕭條的最大受害者。因此,關於和平藝術的論述將通過藝術和經濟的論述來解決。

藝術作為一種職業仍然令人難以置信,因為作為一個藝術家生活確實意味著要過一個經濟不確定的生活,甚至有人將藝術家的經濟狀況描述為持續失業的狀況,這是一個恰當的描述。如今,藝術博覽會的活躍讓市場已臻多元化。實際情況是這樣嗎?我認為一點也不。藝術家人數仍然龐大,多數難以通過窄門以確保創作活動可持續。其中,和平藝術還是所謂的“自我犧牲”的藝術,這並不是特別有利可圖的。為什麼和平藝術是無法獲利的?

讓我們專注於藝術,反思市場與和平藝術之間的關係。和平藝術為什麼不能繼續發展?渴望和平的藝術在世界藝術史上無疑具有舉足輕重的地位。然而,和平藝術未能在資本主義藝術市場體系內建立可持續的藝術生態系。這種現象的背後是藝術品市場體系,其中社會力量和資本的屬性占主導地位。只有少數通過巨大的競賽乘數獲得成功的藝術家才能進入該系統。可以歸入和平藝術範疇的大多數藝術行為往往無法進入市場,因為它們致力於人民的生活或公共價值。這就是為什麼和平藝術不能收斂於資本主義經濟原理的原因。

世界上每個人基本上都是通過勞動來賺錢的。無論是通過勞動行為還是通過勞動產生的商品。然而,在這一點上,和平藝術與市場並不協調。和這是因為和平藝術家創作的作品不是資本主義藝術品市場所要求的那種作品。世界上一些最偉大的藝術作品和所謂的最暢銷的藝術家的作品在整個系統中引領藝術,包括每兩年一次的展覽和博覽會。在這些市場中,以所謂的藝術多樣性為基礎的古怪藝術品引起了人們的新興趣。結合贊助和培育他們的藝術資本,主流藝術家可以在與市場力量共生的同時獲得作品持續的再現。。

但是,這個市場不包括當代和平藝術活動及其作品。這是因為激進藝術家的作品挖掘了眼淚的歷史記憶,或在生活中奮鬥的故事,這些都不大可能受到收藏家的青睞。特別是,藝術市場上沒有空缺的空間供處理濟州,沖繩和台灣等過去歷史事件或批評性地表達持續戰爭危機的藝術家。與藝術品市場直接或間接聯繫的策展人和評論家,記者也屬於自己的聯盟,因此他們的目光相距甚遠,甚至無法觸及和平藝術家。

這是否意味著我們可以希望在公共領域支持或幫助它們?那應該考慮另一種情況。島嶼的無政府主義傾向位於民族主義等級制度的外圍,與民族主義不一致。因此,這些國家和每個地區的和平藝術家經常陷入緊張,有時衝與市場對抗。這是因為藝術品市場=>和平藝術經常反對民族主義或國家權力,並形成敵對關係,最近在日本愛知三年展上舉行的「表現不自由」或韓國光州雙年展發生的「雞頭事件」就證明了這一點。因為它們經常形成對立關係。此類藝術家和作品只有在有幸因其藝術歷史意義而受到認可並被納入博物館收藏時,才會獲得特惠待遇。當然,到這個時候,市場已經失去了對藝術家的意義。

儘管如此,和平藝術的傳統已因其自身的意義和價值而在世界藝術史上得到了評價,並且一直持續下去。那麼他們的價值觀是什麼?正如工會是資本主義社會中不可或缺的要素一樣,和平藝術對於使和平時代可持續具有必不可少的作用。這也是一種感知並發出和平危機信號的和平安全網,就像“煤礦中的金絲雀”一樣。它是一種感知並發出和平危機信號的和平安全網。這是文明的另一種危機預測系統,可以應對戰爭和暴力造成的反人類和反文明挑戰。它可以預防和主動的偵測即將到來的危機,但是它還涉及不斷地教育和講授關於歷史的教訓,這些歷史是不應該重複的。因此,和平藝術是一種公共物品。與水和空氣一樣,這是社會的公共利益,必須維護並在和平時代中前進。

在過去的20世紀,戰爭和暴力的過去是人類歷史上前所未有的,藝術對自身的反應能力得到了擴展,但其經濟邊緣化並沒有得到改善。如果我們同意和平藝術作為一種公共資產的價值,那麼社會必須考慮和平藝術的可持續性和發展。這不僅僅涉及財務方面。即使抵制社會,政治和軍事敵對行動的和平藝術不適合資本主義藝術市場,但批評在評估這種藝術價值中的作用也應擴大。在評估“和平藝術”的價值時,必須涉及更多的批評家。我們還需要確保更多的機會讓和平藝術在公共領域中運作。這將使我們能夠探索和平藝術的擴展,包括經濟上的保證。建立一個和平藝術生態系統是為了拯救“和平礦坑中金絲雀”的生命。COVID-19改變了世界格局。我希望不斷變化的格局將包括公眾對經濟系統之外的和平藝術持續討論。


公共財としての平和芸術

朴京勳

COVID-19の事態が全地球を襲っている。すでにその波紋は、保健を越えて経済分野に影響を及ぼし、世界経済も前代未聞の状況に直面している。ウイルスに起因するCOVID-19事態は、単に疾病との戦争に見えるが、それは21世紀の世界秩序を変える文明の転換を予告している。特に、経済分野での資本主義大国は、かってない措置を、その中には社会主義者の発想という措置も含めて、果敢かつ迅速に行われている。ウイルス恐慌と呼ぶにふさわしい経済危機が到来したからだ。COVID-19事態は当面の伝染病との戦い、それ以上のものである。今、地球は第4次産業革命時代の入口で、通常の経済論議を超える文明的飛躍を迎えている。

その渦中で、「ベーシック・インカム」という論点も部分的に物議を醸している。「災害」や「支援金」という名目が付くものの、とにかくベーシック・インカムの概念による経済的措置が実施されている。自営業者の没落と失業などによる国民の生計を支援する政策だ。今回のCOVID-19で最も直撃を受けた職群はどこだろう?その時々の公演や展示などで生計を立てていた芸術家たちだ。芸術の本領が人を集めることにあるのに、集ま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社会的距離を置く状況ばかりで、経済的には劣後の芸術家たちは、COVID-19大恐慌の最大の被害者であるわけだ。今回の平和芸術コラムは、芸術と経済の話で紐解いてみよう。

職業としての芸術は依然として不信の対象だ。芸術家として生きることは、まさに経済的に不確実性のある生活を生きることを意味するからである。ある人は「芸術家の経済的状態は恒常的な失業状態」と表現している。適切な表現だ。最近はアート・フェアも活性化し、市場も多角化されて、能力さえあればかなりいけるという話をしたりする。果たしてそうか。私の考えでは全然そうではない。依然として芸術家の数はとても多く、創作活動が持続できるように生計が保障されるのは、狭き門を通過することだ。中でも平和芸術は特に金にならない、いわゆる「身を持ち崩す芸術」の代表格でもある。なぜ平和芸術は金にならない芸術なのか。

美術に限定して市場と平和芸術の関係を省察してみよう。なぜ平和美術は持続的な発展過程を続けることができないのか? 平和を渇望する芸術は、確かに世界の美術史でも堂々たる流れを持つ。にもかかわらず、平和芸術は、資本主義の美術市場システム内で持続可能な芸術の生態系を作り出せずにいる。このような現象の背景には、社会的権力と資本の属性が左右する芸術市場システムがある。そのシステムは巨大な競争倍率をくぐって成功したごく少数の芸術家のみが参入できる。平和芸術の範疇に入れることができるほとんどの芸術行為は、民衆の生活または公共的価値のために捧げたものなので、市場参入が不可能な場合が多い。そういうわけで、平和芸術は資本主義経済の原理には収斂されない。

世の中のすべての人間は基本的に労働を通じて財を得る。労働行為であれ、労働の結果である商品を通じてであれ。しかし、この時点で平和芸術と市場は不和である。平和芸術家たちが生産した作品は、その使い道が資本主義のアート・マーケットで要求されるようなものではないからだ。世界有数の美術品や、いわゆる売れっ子芸術家の作品は、ビエンナーレ、アート・フェアなどのシステム内の芸術をリードする。これらの市場では、いわゆる芸術の多様性に基づき、新しい好奇心を誘発する奇抜な作品が注目される。彼らを後援して育成する芸術資本と結合することにより、市場の力と共生しつつ、主流の芸術家たちは持続的に再生産を保障される。

しかし、この市場には、同時代の平和芸術活動とその成果である作品は含まれない。血の涙の歴史の記憶を掘り起こしたり、現場で闘争する人々の話を織り込み、それを共にする行動主義芸術家たちの作品は、コレクターの好感を得にくいからだ。特に、済州、沖縄、台湾などの過去の歴史的事件を扱ったり、現在進行形の戦争の危機を批判的に表現する芸術家にアート・マーケットの空席はない。アート・マーケットに直接・間接的に関わるキュレーターや評論家たち、ジャーナリストも彼らの同盟にいるので、平和芸術の作家へ視界を広げないのだ。

かといって、公共領域で彼らに対する支援や育成が望めるだろうか。それはまた別の事情を考慮しなければならない。国家主義的序列の辺境に位置する島々のアナーキー的性向は、国家主義に合致しない。したがって、これらの国家と各地域の平和芸術家たちは、やはりしばしば緊張関係に陥り、対立が生じたりする。最近の日本のあいちトリエンナーレでの「表現の不自由展」の事態や、韓国光州ビエンナーレでの「鶏の頭事件」が示すように、平和芸術はしばしば国家主義または国家権力と拮抗関係を形成する。このような芸術家や作品が優遇される時とは、運よく美術史的意義を認められ、博物館美術館の収蔵庫に収まる時くらいだ。もちろんその頃には、その芸術家たちにとって市場はすでに意味を失っている。

にもかかわらず、平和芸術の伝統は世界美術史においてそれなりの存在意義と価値が評価され、それは今も続いている。では、その価値とは何だろうか。労働組合が資本主義社会において必要不可欠な要素であるように、平和芸術は平和の時代を持続可能にする必要不可欠なものである。それはまるで「炭鉱のカナリア」のように、平和の危機を感知し、これにシグナルを送る一種の平和セーフティ・ネットでもある。戦争と暴力による反人間的で反文明的な挑戦に対抗して応戦するもう一つの文明の危機予報システムでもある。それは予防的に、徴候的に、今後到来する危機を診断し知らせることもあるが、二度と繰り返されてはならない歴史を持続的に喚起し、教訓とする作業も含む。したがって、平和芸術は公共財である。水と空気がそうであるように、平和の時代を維持し、平和の時代を歩む上でなくてはならない社会の公共財である。

20世紀、人類史においてかつてない戦争と暴力の時代を経て、それに対する芸術の応戦力も拡張されてきたが、その経済的疎外状況は改善されなかった。公共財としての平和芸術の価値に同意するなら、社会は平和芸術の持続可能性と発展方法を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は単に財政的な側面だけを語ることではない。社会的、政治的、軍事的敵対行為に抵抗する平和芸術が資本主義のアート・マーケットには不向きだとしても、この芸術的価値を評価する批評の役割は拡大されるべきである。より多くの批評家たちが平和芸術の価値評価に参加しなければならない。また、パブリック・アートにおいて平和芸術が活動する機会をより多く確保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れにより、経済的保障を含む平和芸術の拡張を模索することができる。平和芸術の生態系を造成することは「平和炭鉱のカナリア」を生かすことだ。COVID-19が世界の風景を変える。その変わる風景の中に、経済外の平和芸術に関する公共的な議論が含まれることを願う。


Peace Art as the public assets

BAK Gyeonghun

The COVID-19 situation is hitting the whole world. Already, the global economy is also facing an unprecedented condition, with the repercussions affecting the economy beyond health. While the COVID-19 outbreak caused by the virus appears to be simply a war against disease, it heralds a shift in civilization that reverses the order of the 21st century. Capitalist powers, especially in the economic sector, are taking bold and swift action, including measures that have never been taken before, including socialist ideas. The economic crisis has come to be called the virus panic. The COVID-19 crisis is more than an immediate epidemic fight. Today, the world is en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era and faces a leap in civilization beyond ordinal  economic discourse.

In the midst of this, the controversial topic of basic income has been introduced partially. Although it comes under the guise of a "disaster" or "aid money", the economic measures are being implemented anyway with the concept of basic income. It's a policy to support the livelihood of the people due to the downfall of the self-employed and unemployment. Which job group takes the most direct hit in this COVID-19? It is artists group who make a living by performing and exhibiting their work from time to time. Although the essence of the arts is to gather people, the economically subordinate artists are the biggest victims of the COVID-19 Depression because of the social distancing that made it impossible for them to gather audience. This time of Peace Art column unravels the story of the arts and the economy.

Art as a profession is still a subject of distrust. Because to live as an artist means to live a life of economic uncertainty indeed. One person described the economic state of the artist as a state of constant unemployment. It's an apt description. Recently, art fairs have been revitalized and the market has been diversified, so if you have the ability, you can make it. Is this true? Not at all, in my opinion. There are still so many artists, and the only guarantee of a livelihood to sustain their creative work is to pass through a narrow gate. Among them, the peace art is also representative of the so-called "art of self-denial," which is not particularly lucrative. Why the peace art cannot make money?

Let's restrict ourselves to the field of visual art and reflec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arket and the Peace Art. Why can't peace art continue to be a sustainable development process? The art of longing for peace is certainly an imposing trend in world art history. Nonetheless, peace art has failed to create a sustainable art ecosystem within the capitalist art market system. Behind this phenomenon is an art market system that is governed by the attributes of social power and capital. Only a small number of artists who succeed through the huge competition multiplier can enter that system. Most artistic acts that can be put under the category of peace art  are often impossible to enter the market because they are dedicated to the life of the people or to public value. As such, the peace art does not converge on the principles of a capitalist economy.

Every human being in the world basically earns goods through labor. Whether through the act of labor or through the commodity that is the result of labor. At this point, however, the peace art and the market are in discord. This is because the work produced by the peace artists is not the kind of work whose use is demanded by the capitalist art market. The works of some of the world's greatest art and so-called best-selling artists lead the art within the system, including biennials and art fairs. In these markets, eccentric works of art, based on the so-called diversity of the arts, that induce new curiosities are the focus. Combined with the artistic capital that sponsors and nurtures them, mainstream artists are guaranteed a sustained reproduction while living in symbiosis with market forces.

However, this market does not include works that are the result of contemporaneous peace art activities and their achievements. This is because the works of activist artists who dig up memories of bloody history and weave together stories of people struggling in the field are unlikely to be well-liked by collectors. In particular, there is no vacancy in the art market for artists who deal with past historical events such as Jeju, Okinawa, and Taiwan, or who make critical representations of the ongoing war crisis. The curators, critics and journalists who are directly and indirectly involved in the art market are also in their own league, so they do not extend to the eyes of the artists in Peace Art.

Can we hope to support and nurture them in the public sphere? That's another set of circumstances to consider. The anarchic propensity of the islands locates on the periphery of the nationalist hierarchy  is not consistent with nationalism. Therefore, peace artists in these states and regions are often tense and confrontational. Peace Art often forms an antagonistic relationship in opposition to nationalism or state power,  as the recent example of "non-freedom of expression" exhibition at the Aichi Triennale in Japan and the "chicken head incident" at the Gwangju Biennale in South Korea have shown. The only time such artists and works are given preferential treatment is when they are fortunate enough to be recognized for their art historical significance and placed in the museum's collection. Of course, by this time, the market has already lost its meaning for the artists.

Nevertheless, the tradition of peaceful art has been evaluated for its existence and still persists in world art history. So, what is the value? Just as trade unions are an indispensable element of a capitalist society, so the peace art is a necessary part of making an era of peace sustainable. It is also a kind of peace safety net that, like the "canary in the coal mine," senses a crisis of peace and signals it. It is also another civilization's crisis forecasting system that responds to the anti-human and anti-civilizational challenges of war and violence. It may be prophylactic and symptomatic, diagnosing and informing the coming crisis, but it also involves the task of evoking and teaching a sustained history that must never be repeated. Therefore, peace art is an indispensable public asset. Just as water and air are, they are the public assets of society that must be sustained and grinding an era of peace.

In the 20th century, through a period of war and violence unprecedented in human history, the arts' ability to respond to it has been expanded, but its economic marginalization has not improved. If we agree on the value of the peace art as public assets, society must think about the sustainability of the peace art and how to develop it. This is not just to talk about the financial aspect. Even if peace art that resists social, political, and military hostilities is unsuitable for the capitalist art market, the role of critique in assessing this artistic value should be expanded. More critics must be involved in the estimation of the value of the Peace Art. We must also ensure that there are more opportunities for peace arts to be active in public art. This will allow us to explore the expansion of the peace art, including economic guarantees. To create an ecosystem of peace art is to keep the "canary of the peace coal mine" alive. COVID-19 will change the world's landscape. Hopefully, that changing landscape will include a public discussion of the peace art outside the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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