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66. 세 번째 딸은 보지 말고 데려오라

* 싀번체 : 세 번째
* 똘랑 : 딸이랑, 딸은
* 보지 말앙 : 보지 말고,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 도라오라 : 데려오라 

사람은 자신의 삶을 통해 사물의 안팎을 살피고, 세상사는 경우와 일이 돌아가는 이치를 터득하면서 살아간다. 경험의 축적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이고 다져진 경험은 알게 모르게 삶의 방향을 가리켜 줄 뿐 아니라, 올바른 판단이나 곧은 자세가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준다. 

남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삶 속에서 깨달은 것 만한 산지식은 없다. 이를테면 경험칙(經驗則)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직접 손으로 해 본 것이야말로 틀림없는 삶의 지침(指針)이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예전에는 한 부모 밑에 보통 대여섯 남매를 낳아 길렀다. 삼대가 한 집에 살면 대가족을 형성하게 마련이었다.

딸 가운데 세 번째 딸은 위로 언니 둘, 아래로 동생 두셋을 두게 된다.

가족 속의 이 구조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세 번째 딸은 언니와 동생들 틈에 끼어 자란다. 그러는 동안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또 일을 할 때는 어떤 방법으로 해야 어른에게 욕먹지 않고 칭찬을 받게 되는지, 혹여 무슨 일이 어긋났을 때는 어떻게 물어나가야 할지, 효과적인 대처와 처신의 요령을 익힌다. 
  
교육하고 학습하기 이전에 자연발생적으로 배우고 연습하며 깨닫는다. 가족과 어우러진 가운데 삶의 현장에서 겪고 치르며 몸에 밴 값진 경험이다. 이만한 지혜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자는 어른이 되면 혼사를 치르게 된다. 매사에 치르고 치다꺼리함에 수완이 좋고 동기간에 위아래를 좋게 추스르는 건 더 말할 것 없이 세 번째 딸이다. 착한 심성을 타고태어났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며느리 감으로는 단연 셋째 딸이라는 것이다. 셋째라면 더 물어볼 것도, 더 알아 볼 것도, 따져 볼 것도 없다 함이다.

강인숙 씨가 2014년 발표한 에세이 '셋째 딸 이야기'. 출처=알라딘. 

“싀번체 똘랑 보지 말앙 도라오라.”

셋째 딸은 며느리감의 최상위로 쳤다는 것인데, 씁쓸한 옛날 얘기가 돼 버렸지 않은가. 저출산으로 아이 둘은커녕 하나도 낳기를 꺼리거나 아예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돼 있어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98’이라는 통계가 있다. 남녀가 결혼해 최소 자녀 둘을 두어야 함에도 한 아이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수치다.

며느리를 고르며 셋째 딸은 묻지 말고 데려오라던 엣 시절에 생을 누렸던 우리 선인들이 오늘의 젊은이들을 눈앞에 대한다면 무어라 할까. 

“에끼, 요 나쁜 것들허고는. 아이 서넛은 나앙 살암직이 세상을 살아야 허주 이거 무신 짓덜고?”

일언지하에 욕하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 안전에 용납하지 않을 것이렷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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