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가 간다-택배노동 현장](2) 제주와 육지 잇는 택배노동자 김기홍 씨 /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제주지회 교육선전부장

코로나19 사태로 갈수록 택배물량은 폭증하고 있다. 그러나 새벽배송이니 로켓배송이니 하는 업계의 치열한 마케팅 경쟁에 택배노동자들의 ‘안전’은 늘 뒷전으로 밀려있다. 최근 배송물량 증가에 쫓긴 ‘쿠팡’ 소속 택배노동자가 새벽근무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한진택배, CJ대한통운 등 택배 회사들과 노조 간 갈등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 갇힌 택배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최근 정부도 급기야 택배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12일 국토부가 비대면 배송 등 택배종사자 보호조치 권고조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언 발에 오줌누기 수준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육지와 제주섬을 잇는 제주 택배노동자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3일간(3월31~4월2일) 생생히 동행 취재했다.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편집자 글]

가끔 이런 선물을 받을 때면 힘이 난다고 한다. 사진은 전날 배송 중 받은 간식. ⓒ제주의소리
가끔 이런 선물을 받을 때면 힘이 난다고 한다. 사진은 전날 배송 중 받은 간식. ⓒ제주의소리

동행취재 삼일 째. 오늘은 CJ대한통운 소속 택배노동자이자,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제주지회 교육선전부장을 맡고 있는 김기홍(39) 씨와 동행하기로 했다.

오전 7시. 제주문예회관 인근에서 김기홍 씨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다.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평소보다 이른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분주하게 챙기고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기자가 도착해보니 기홍 씨는 이미 배송을 시작한 상태였다. 며칠 전 전화통화로 미리 간단한 인사를 나눈 사이였으나, 첫 대면에서 제대로 인사 나눌 여유도 없이 기자도 배송업무에 바로 합류했다.

기홍 씨는 제주시 일도2동 일대를 담당하고 있다. 기홍 씨가 “배송물량이 많아 기자님과 점심을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라고 말문을 뗐다. 오전에만 배송해야 할 물건은 총 230여개. ‘헉’하는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새벽잠을 깨고 나와야 하는 이유나, 점심식사 시간을 걱정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친형의 권유로 3년전 택배 배송 일을 처음 접했다. 그동안 택배 배송 외에도 몇 가지 다른 일을 경험해오다 택배 배송을 전업으로 삼은 지 이제 딱 1년째가 됐다.

물건 하나를 전달하기 위해 택배노동자들은 수 없이 계단을 오르내린다. ⓒ제주의소리
물건 하나를 전달하기 위해 택배노동자들은 수 없이 계단을 오르내린다. ⓒ제주의소리

기홍 씨가 담당하는 구역은 대부분 가정집이다. 자주 가는 집은 말하지 않아도 고객과 서로 마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고객이 원하는 배송 위치를 다 알고 있다. 마치 약속한 듯 물건을 두고 가면 알아서 가져간다. 고객과 서로 교감하는 느낌”이라며 웃는다.

힘들게 하는 고객은 없냐는 질문에 “고객이 실수로 주소를 잘못 적었는데 늦은 시간 전화를 걸어와 따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참 곤란하다. 더군다나 택배 노동자를 무시하거나, 다른 택배회사와 비교하는 분들도 종종 있어 씁쓸할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또 가끔씩 이런 일도 있단다. “고객이 물건을 못 받았다고 할 때도 있다. 분명히 집 앞에 배송을 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다. 그러면 사고처리를 하고 택배노동자가 배상해야 한다. 여지없이 일당을 날리게 되는 날”이라면서 “그래서 사람이 없거나 맡길 곳이 없으면 차라리 다음날 다시 방문해서 안전하게 전달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궂은 날씨가 더 힘들다고 했다. 당연하다. 배송하기에 궂은 날씨는 악조건이다. 특히 공동주택이 아닌 단독주택들의 경우, 비가 오면 배송한 물건이 젖을까봐 노심초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 앞에 두면 물건이 젖어버릴 수 있어 직접 전달하거나 비를 피할 수 있는 실내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평소보다 배 이상 배송시간이 더 걸리고 결국 배송을 다 못할 때도 있다. 저보다 고객 배송품을 먼저 챙기다보니 제 몸은 비에 젖을 때가 다반사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엔 여분 옷과 수건을 꼭 챙겨 다닌다. 우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평소엔 발로, 비 오는 날엔 온몸으로 배달한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오전 8시40분. 배송을 시작한지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배송 물량의 절반 정도를 해결하고 다시 한 번 물건을 재정리하는 시간이다. 기홍 씨가 잠시 짬을 내 넋두리를 했다. “지금은 몸에 배서 괜찮은데 처음에는 힘들었다. 허리, 팔목, 무릎, 어디 한군데 안 아픈 데가 없었다. 매일같이 끙끙 앓으면서도 퇴근하자마자 씻고 그냥 쓰러져 자기 일쑤였다”고 말하고,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허리를 폈다.

짧게나마 허리를 펴고 난후 그는 최근 배송 중에 겪은 미담을 소개했다. “이 일이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제일 힘이 나는 것은 고객들의 격려와 칭찬이다. 고되고 힘도 들지만 긍정적으로 임하고 있다. 가끔씩 고생한다고 먹거리 등 간식을 챙겨주시는 분들도 있고, 최근엔 코로나19에 건강 챙기라며 마스크를 주시는 분도 있었다. 힘든 것들을 잊게 하는 감동의 순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다시 배송에 나섰다. 오전 10시 15분께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고객들의 격려와 칭찬 사례를 얘기 나눈 지 불과 한 시간여 만에 실제로 어느 고객이 집 출입문 옆에 ‘택배 기사님께’라는 메모지와 함께 마스크 선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입구 옆 ‘대한통운 택배 기사님께’라고 써 테이프로 붙여둔 선물.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했다. ⓒ제주의소리
출입구 옆 ‘대한통운 택배 기사님께’라고 써 테이프로 붙여둔 선물.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했다. ⓒ제주의소리
종이봉투 안에 있던 선물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였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따뜻한 마음이 배로 다가왔다. ⓒ제주의소리
종이봉투 안에 있던 선물은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마스크였다.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따뜻한 마음이 배로 다가왔다. ⓒ제주의소리

요즘 금(金)만큼 귀하다는 KF94 마스크였다. KF94 마스크가 여러 장 들어있는 선물 포장지를 뜯어보며 그는 “다니다 보면 이렇게 감사한 고객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를 새삼 느끼고 이 맛에 일한다”고 말하고는 “기자님도 하나 쓰시라. 좋은 마음은 함께 나눠야 좋은 것 아니겠나”라며 감동의 선물을 하나 건넸다.

오전 11시30분, 오전 배송을 마치고 점심을 위해 인근 식당을 찾았다. 평소에는 혼자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간편식을 먹는 일이 다반사란다. “바쁠 때가 많아 편의점에서 라면 같은 간편식을 사 터미널 휴게실에서 먹는다. 2+1 같은 행사 상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이동 중에 차에서도 먹을 수 있어 바쁠 때는 편의점 음식을 주로 먹는다”고 말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택배 노동에는 변수가 많다며 대략의 사례를 들었다. 물건 배송도 늘 바쁘지만 다른 이유로 바빠질 때가 있다는 것. 반품 요청이 생겨 반품을 받아야 하는데 고객이 미리 준비하지 않거나 연락이 안 될 때,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고객과 마찰이 생기거나 통화가 길어질 때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변수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내 뜨거운 뚝배기에 먹음직한 순두부가 나왔다. 모처럼 식당에서 먹는 순두부의 첫술을 뜨며 “(택배) 일을 시작하곤 먹는 양도 늘었다.”라면서 밥 한공기를 추가 주문했다. 이어 “든든하게 먹어야 힘을 낼 수 있다. 기자님도 많이 드시라. (택배 일은)처음일 텐데 계속 차에 오르락내리락 따라다니느라 수고 많으시다”라며 추가 주문한 공기밥의 절반을 기자에게 덜어주었다.

바쁠 때 끼니를 해결해주는 컵라면. 즉석밥과 함께 먹으면 그럭저럭 괜찮단다. 사진은 전날 점심이었던 컵라면. ⓒ제주의소리
바쁠 때 끼니를 해결해주는 컵라면. 즉석밥과 함께 먹으면 그럭저럭 괜찮단다. 사진은 전날 점심이었던 컵라면. ⓒ제주의소리

오후 12시40분, 식사를 마치고 터미널로 돌아가 잠깐 휴식을 갖나 싶더니 그럴 여유도 없이 피켓시위를 이어갔다.

기홍 씨는 전국택배연대노조 제주지회의 교육선전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택배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함께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기홍 씨는 앞서 기자가 이틀간 동행 취재했던 택배노동자 지환 씨의 친동생이다.

기홍 씨는 익상편 수술을 앞둔 형을 걱정했다. “수술하는 기간엔 일을 못할 테고 그러면 형은 마땅한 수입이 없어질 텐데 걱정이다. 조카들도 있는데...”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택배회사들이 회사 소속 택배노동자들을 ‘소속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대우(?)하는 모순 탓에,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유급병가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가 힘든 노동 중에도 피켓시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이유다.

오후 1시30분, 육지에서 내려온 물건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구역별로 빠르게 흩어졌다. 이날 도착한 화물차는 어제 입도하지 못한 2대가 추가돼 총 6대란다. “(물건 상차 작업이) 오후4시쯤 끝날 것 같다. 많을 것 같아도 한 번에 다 실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분주하게 작업을 시작했다.

오후 4시7분, 작업이 끝났다. 옆에 있던 동료와 잠깐 대화를 마치자마자 그는 크게 외쳤다. “기자님, 가게 마씨~” 다시 고객의 집 대문을 향해 골목길을 분주히 오가고, 공동주택의 가파른 계단을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엘리베이터가 사용 중이면 어김없이 계단을 이용했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오후 분류작업을 마친 물건들. 많아 보이는 물량이지만 기홍씨는 많은 편이 아니라고 했다. ⓒ제주의소리
오후 분류작업을 마친 물건들. 많아 보이는 물량이지만 기홍씨는 많은 편이 아니라고 했다. ⓒ제주의소리

오후 6시, 배송을 마치고 퇴근길에 올랐다. 오늘 배송한 물건은 총 316개.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에 찍힌 걸음 수는 1만9800여 걸음이었다. 거리로 약 15km, 대략 2만보를 걸은 셈이다. 기홍 씨가 제법 덩치가 있는 기자를 보며 농을 건넸다. “기자님은 일주일만 이 일을 해도 살 많이 빠지겠다. 오늘 고생 많으셨다”며 활짝 웃었다.

평소 문 앞에 배송된 택배를 보며 설레기만 했지 이런 고초가 있을 줄 몰랐다. 이따금 배송이 예정보다 늦어지면 짜증부터 났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 택배 노동을 경험해보니 그런 감정들이 뒤늦게 부끄러워졌다. 마스크를 선물 받을 때나, 간식을 받을 때의 감동이 물밀 듯 밀려왔다. 동행 취재 3일째. 나는 벌써 택배노동자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집으로 퇴근하다 이웃집 문 앞에 도착한 택배가 눈에 띄었다. 평범한 택배였으나 예사롭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게 분명한데 ‘우리 동네 담당 택배기사님은 지금쯤 퇴근 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다음에 택배 받을 일이 있다면, ‘배송 완료’ 문자에 꼭 답장하리라. ‘기사님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힘내시길 바라며 꼭 응원하겠습니다’라고.

3일간 동행 취재로 확인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꿈꾸는 세상은 평범했다. ‘열심히 일한 만큼, 저녁에 일찍 퇴근해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몸이 재산인 만큼 아프면 곪을 때까지 두지 않고 제때 정당한 휴가로 치료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일할 수 있는 나이까지 건강하게 일하고, 일한만큼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바람이 사치는 아닐 것. 택배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는데 소비자인 시민들의 관심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번 동행취재에서 건진 가장 큰 결실이자 과제다.

김찬우 수습기자 ⓒ제주의소리
김찬우 수습기자 ⓒ제주의소리

김찬우 수습기자는?

2020년 1월 벽두 입사한 새내기. 제주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언론홍보학을 복수전공 했다. 태어난 곳은 제주가 아니지만 제주에서 공부했고 제주사람으로 뿌리내리고 싶은 청년이다. ‘같이의 가치’를 좌우명으로 삼고, ‘시대의 소리, 진실의 소리’를 내기 위해 독립언론 <제주의소리>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배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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