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67. 4월달 부지깽이 땅에 꽂아도 순 난다

* 소월덜 : 4월달
* 부지땡이 : 부지깽이

표현 기교에 과장법이 있다. 사물을 사실보다 크거나 많게 부풀려서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를테면 ‘눈물이 홍수’라거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백발 삼천장’ 하는 식이다.

‘부지땡이’는 아궁이에 불을 땔 때, 불이 잘 붙도록 불더미를 들쑤셔 공기가 잘 통하게 하는 막대를 말한다. 나무 날가지를 잘라다 쓰더라도 불 속에서 쑤시는 구실을 하다 보니 끝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게 마련이다. 흙에 꽂아 물을 잘 준다 해도 새 순이 돋아날 수가 없는 일이다.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한라산에 올랐다 내려오며 동백나무 가지를 꺾어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와 화단에 꽂아 두었더니 싹이 돋더라는 말은 들었지만, 부지깽이를 꽂았더니 싹이 났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어림없는 얘기다. 과장도 이만저만한 과장이 아니다. 사실보다 크게 나타내는 것을 ‘향대(向大)’ 과장이라 하는데, 이 말은 그중에도 극치에 해당한다.

출처=오마이뉴스.
부지깽이를 꽂았더니 싹이 났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어림없는 얘기다. 과장도 이만저만한 과장이 아니다. 출처=오마이뉴스.

사실은 4월이 호시절로 만물이 회생하는 절기임을 강조하려 한 데서 과장한 의도가 충분히 엿보인다.

4월은 생명의 계절이다. 시들던 풀도 한두 차례 내리는 푸른 비, 녹웅(綠雨)에 파릇파릇 생기를 되찾는다. 그러니 4월에 내리는 비야말로 단비 곧 감우(甘雨)다.

그러니 슬며시 ‘부지땡이도 꽂아 주면 순이 난다’ 과장하고 넘어가자 한 심산이 아닌가.
 
실제로 4월달은 심은 나무가 뿌리를 내려 잘 자라는 시기인 게 틀림없다. 4월 5일을 ‘식목일’로 정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무튼 4월은 식목의 최적기임에 틀림없다.

비단 제주의 선인에 국한하지 않고, 고려가요 같은 옛 시가에 이런 과장법이 쓰인 예가 있어 자못 흥미롭다. 고려가요에 〈鄭石歌〉(정석가) 가 그 경우다.

〈정석가〉는 임과의 영원한 사랑을 소망하는 화자의 애틋한 정서를 과장·역설·반어법(反語法)으로 표현한 당시 서민의 노래다.

사각사각 가는 모내 벼랑에
구운 밤 닷 되를 심습니다.
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나야만
유덕하신 님 여의고 싶습니다.

옥으로 연꽃을 새기옵니다.
바위 위에 접을 붙이옵니다.
그 꽃이 세 묶음을 피어야만
유덕하신 님 여의고 싶습니다.

‘구운 밤이 움 돋고 싹 나는 것, 그리고 옥으로 연꽃을 바위에 접 붙여 꽃 피어아만’ 사랑하는 님과 이별하겠다고 했다. 님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이토록 절절할 수 있으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할 때까지는 여읠 수 없다 함이다.

님을 향한 절박한 애정을 나타낸 것은 아니나, 불가능한 것을 빤히 알면서 가능한 것처럼 표현만 묘미에서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싶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