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희의 예술문화이야기] 44. 제주 이주 김백기의 6년을 돌아보며

2014년 제주에 이주한 퍼포먼스 예술가 김백기가 문을 연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보통 ‘서빳‘이라고 불리곤 했다)가 지난 2월 말 문을 닫았다. 앞으로 다른 공연 단체가 새로운 모습으로 그 터를 이어가겠지만, 대중음악부터 창의적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서귀포의 밤을 밝혔고, 2013년부터 ‘제주국제실험예술제’를 운영하며 제주에 다소 낮선 ‘실험’의 세계를 보여준 ‘서빳’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들어갔다. 그래서 약 6년에 걸쳐 보여준 ‘서빳’과 김백기의 활동과 의미를 살펴본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2019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마지막 행사는 전설적인 무용가 홍신자와 함께하는 송년의 밤이었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먼저 2009년 이후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그 과정에 태어난 ‘서빳’은 이주민 문화의 대표적인 장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17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 이주민 인구, 그리고 제주의 삶을 마감하고 떠나는 인구가 늘면서 ‘서빳’이 마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서빳’의 관객 대부분(90%)가 이주민들이였던 점을 고려하며 제주 이주민의 문화와 ‘서빳’은 한 시대를 상징한다. 필자가 오래전 이주민 문화를 두고 ‘신 보헤미안 문화’라고 불렀던 현상이 마감하고 다른 시대로 이동하는 듯하다. 

‘서빳’이 문을 닫은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서의 문화 활동이 예술가 개인의 열정에 의존하는 현실 때문이다. 김백기는 지난 30여 년간 한국 퍼포먼스 예술을 지키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이다. Kopas를 운영하며 홍대 앞에서 2002년부터 <한국실험예술제>를 진행했고, 2007년부터 몇 년간 노원구가 주최한 <서울국제퍼포먼스페스티발>을 진행했으며, 2013년에는 서귀포로 이주해 <한국실험예술제>를 <제주국제실험예술제>로 확장했다. 그가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주로 선보이는 행사를 제주도 남쪽 도시 서귀포로 가지고 오고 더불어 ‘서빳’을 개관한 것은 이미 제주에 둥지를 튼 지인 김해곤 작가와 건물주인 서귀포의 한 유지의 도움 덕분이었다. 

창작자 자신의 몸을 매체로 사용하는 퍼포먼스 예술은 금기와 진부함과 싸우려는 예술가의 의지와 열정을 먹고 자랐다. 1916년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의미없는 단어를 나열하던 휴고 발부터 자신의 팔에 총을 쏜 크리스 버든부터 미술관에서 736시간 동안 조용히 앉아 관객을 응시하던 마리아 아브라모비치까지 퍼포먼스 작가들이 보여준 담대함, 파격, 그리고 낯섦은 현대미술의 어느 장르보다도 부르주아적 가치에 저항하는 강도를 높여왔다. 

그러나 소비사회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매카니즘이 확산되는 가운데, 예술은 그 하위 분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고, 퍼포먼스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그 산업의 수혜자들은 대형 스튜디오를 두고 스펙터클한 공연을 선보이며 기하학적인 수입을 올리는 반면에, 진입하지 못한 외곽의 예술가들은 공연에 대한 최소의 대가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20대 이후 지금까지 자아가 강한 예술가들과 난해한 퍼포먼스에 어리둥절한 대중과 소통하며 국내외에서 기획자이자 퍼포머로 살아온 김백기의 예술도 그런 환경 속에서 화려한 성공과 처절한 몸부림 사이를 오가곤 했다. 예술가의 생존과 한국의 퍼포먼스 예술의 지속성이 늘 위협받는 환경에서 이 모험적인 장르에 참여하는 작가는 늘 소수였고 그래서 작가들 사이의 연대는 끈끈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필자는 그가 제주를 떠나기 직전 그동안 겪은 일들과 진행했던 행사들에 대해 인터뷰를 가졌는데, 퍼포먼스가 지속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았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2014 제주국제실험예술제 퍼레이드 장면. 사진=김백기, 양은희. ⓒ제주의소리

서울에서 서귀포로 시장, 감귤 밭에서부터 문화공간까지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관객을 만나보았고, 독일, 태국 등 외국의 문화현장을 경험한 그의 답은 의외로 분명했다.

“어디를 가던 예술가의 삶은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좌절하지 말고 힘을 내어 타 장르와 융합하고 협업하며 확장성을 모색해야 합니다.”

서귀포에 온 후 운영했던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는 그런 그의 철학을 반영했다. 대중적인 음악부터 클래식 음악, 재즈, 퍼포먼스까지 여러 장르의 색깔이 어우러져 관객을 만났으며 이런 공연들은 서귀포라는 최남단의 도시를 달구었다. 제주에서 보기 드문 공연들을 찾은 관객들은 대부분 제주에 이주한 이주민들이었다. 이주민과 토박이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기 위한 ‘미친 데이’ 파티를 열었고, 더 많은 지역의 관객을 만나고자 ‘감귤밭 콘서트’를 연속으로 선보였으며, ‘도청습격 프로젝트’로 관성에 젖은 감각을 일깨우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나 퍼포먼스 예술의 순수한 창작성과 관객의 상식이 충돌하는 순간, 지속가능성이 흔들린다. 그는 창작의 순수성은 존중받아야 하나 삶과 만났을 때 그 순수함이 오해를 받지 않도록 자제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한다. <제주국제실험예술제> 첫 회에 참가한 외국인 퍼포머가 시장에서 갈치를 휘두르며 상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사건을 언급하며, 그 날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다는 그는 예술가의 자유는 허용된 공간과 장소에서 가장 빛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상인에게 갈치는 아이를 교육시킬 자본과 같은 것인데 예술의 이름으로 그 상인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술로 경제적 자립이 힘든 현실을 고려하면 그와의 인터뷰에서 얻은 결론은 새삼스럽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동인은 결국 창작을 위한 예술가의 열정이라는 것이다. 그가 오래전 대학로에서 본 한 40대 퍼포먼스 작가의 공연이 이 길로 접어든 동기가 되었듯이 예술에 대한 열정은 장소와 시간을 가로질러 전파된다. 그의 열정이 퍼포먼스의 불모지에 가까운 제주에서 신세대를 키워냈듯이 말이다. 첼리스트 문지윤과 춤꾼 김한결은 서귀포에서 김백기의 축제를 보면서 새로운 모험의 길에 오른 시작한 예술가들이다.

김백기는 2020년 2월 말 서귀포를 떠나 자신의 고향 전남 곡성으로 터전을 옮겨 새로운 축제를 구상하고 있다.     

# 이 글은 <월간미술> (2020년 3월호)에 실렸던 필자의 글 '퍼포먼스 예술의 지속가능성'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필자 양은희는... 

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 스페이스 D 디렉터 겸 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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