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역사적 변혁기...진정한 자기반성 통해 책임 다하는 국회 돼야 / 김헌범

출처=오마이뉴스.
제21대 총선 결과에 따른 정당별 국회의원 의석수. 출처=오마이뉴스.

색의 부조화

드디어 21대 총선이 막을 내렸다.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뜨거운 투표율에 대한 여야 간 해석이 서로 엇갈리는 가운데, 봉인된 투표함의 뚜껑이 열리자 이번에도 유니폼과 안색(顔色)의 역전극이 펼쳐졌다. 개표가 진행될수록 여당이 경합지역을 하나둘씩 승리지역으로 접수할 때마다 환해지는 여당 인사들의 핑크빛 홍안(紅顔)은 개표 상황실을 가득 메운 파란색 유니폼의 물결 속으로 더욱 세차게 번져나갔다. 반면에 국회에서 뛰쳐나와 광화문 거리의 콘크리트 바닥에서 태극기부대와 동고동락하며 지난 4년을 주로 장외투쟁에 투자한 보수 야당은 그와 상극이었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는 동서고금의 진리인지라,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으니 그에 따르는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법. 당의 영원한 이념이며 철학인 ‘반공(反共)’에 결코 어울리지 않게 핑크색 유니폼을 입은 그들의 얼굴은 개표 시작 전부터 과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붉게 상기돼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기필코”라는 결연함마저 섞여 있었으니 그 붉음의 강도는 그들의 유니폼을 능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기대가 컸으니 실망도 컸던 것인가. 결국 핑크색 유니폼의 어색함은 전황이 알려질 때마다 터져 나온 한숨과 함께 ‘새파래진‘ 표정에 의해 짙게 드리워지는 어둠에 압도되며 사라졌다. 

고무신 선거

야당도 선거직전에 다다라서는 불길한 결과를 예감해서였을까. 총선의 판세는 대부분의 후보들이 길바닥에 넙죽 엎드리며 지나가는 차량들을 향해 하염없이 초점 없는 큰절을 올리는 데서 일찍이 직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MB의 비리와 박근혜 정부의 탄핵으로 유구무언의 처지에 몰렸다가 작년 여름 이른바 '조국사태'에서 모처럼 잡은 기세를 올해 총선까지 몰고 가더니 급기야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수십 년 전 ‘고무신’ 선거 시절의 케케묵은 구호로 비약시키며 기세등등해 하던 보수야당이 아니던가.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길가에 무릎을 꿇은 중진 여성 후보를 지켜보던 한 유권자는 “선거 땐 수수한 서민, 당선 후엔 귀부인”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는 왜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무릎을 꿇고 큰 절을 올리는지 알지 못한다. 우선 진정성이 의문이다. 과연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나 있을까. 한 표를 호소할 때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납작 엎드리며 굽실거리다가도 막상 의원이 된 후엔 입장이 돌변하며 오히려 민원인들을 책망하고 훈계하던 태도는 다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의 영역이라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공적인 석상에서 광주항쟁을 조작 폄훼하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막말’의 장본인들과 그것을 방관하거나 비호하던 의원들은 공적인 반성까지 바라지는 않더라도 그것을 기억이라도 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매년 행사처럼 반복되는 막말 사태가 잘 말해줄 것이다.

빠루의 전설

더욱이 지난 국회는 ‘식물국회’를 넘어 ‘동물국회’의 신기원을 세웠다. 국회를 맹수들이 힘을 겨루는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어 국민들에게 헐리웃 영화보다도 더 흥미진진한 ‘리얼 쇼’가 펼쳐지는 쏠쏠한 재미를 선사하기 위함이었던가. 준법정신은 힘없는 국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인지, 자신들이 앞장서서 만든 ‘국회 선진화’ 법을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일명 ‘패스트 트랙 시위’에서 여성 의원이 요즘엔 기억마저 희미한 ‘빠루’를 들고 회의장을 막아서고, 동료의원들이 팔짱을 끼고 회의장 앞에 ‘대자’(大字)로 드러누워 서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왜 빠루를 들어야하고 드러누워야 하는지를 국민들에게 전혀 납득시키지 못했다. 아무리 의원들의 눈엔 국민이 미천하게 보이더라도 설마 빠루와 대자 드러눕기가 민심이었을까.

무엇보다도 총선에서 민심을 얻는 데 실패한 것에는 야당이 ‘미래’라는 새 당명과 핑크색의 당 색깔에 걸맞은 ‘핑크빛’ 미래를 보여주지 못한 탓도 컸을 것이다. 민족의 영원한 숙원인 남북교류를 무턱대고 반대하고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어렵게 탄생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수처)’를 폐지하겠다는 정당에게 미래가 아닌 과거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인한 유휴노동력의 폭증 등과 같은 여러 중대하고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이 눈앞에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복지정책을 아직도 예산 퍼주기 식 “포퓰리즘”으로 공격하는 정당이 ‘미래’가 지니는 사전적 의미를 생각이라도 하고 당명으로 썼는지 의문이다.

 ⓒ제주의소리 / 그래픽 이미지 김찬우 수습기자
무엇보다도 총선에서 민심을 얻는 데 실패한 것에는 야당이 ‘미래’라는 새 당명과 핑크색의 당 색깔에 걸맞은 ‘핑크빛’ 미래를 보여주지 못한 탓도 컸을 것이다. ⓒ제주의소리 

낙하산 갑질

그러나 여당이 핑크빛 미래를 보여줘서 총선에서 이겼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들의 승리는 최악(最惡) 대신 차악(次惡)을 선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상 최악의 야당과의 비교에서 나온 소산일 뿐이다. 그들은 그동안 내심(內心)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총선에서 보여준 행태를 보면 이제 기득권층으로의 편입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느낌이다. 나름대로 민주시민들의 뜻으로 탄생했다고 주장하는 신생 정당에 대해 적자, 서자 타령으로 시비를 건 여당의 행태는 자신들이 그렇게도 척결해야 한다고 떠들었던 ‘갑질’의 전형이었다. ‘민주’라는 단어가 자신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도 그렇거니와 선의의 정책경쟁을 벌이지 않고 상대방에 대해 ‘헐뜯기’ 비방에만 골몰하는 모습은 그들 역시 ‘미래’가 없는 정당임을 입증한 꼴이었다.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또한 제주지역에도 전략공천이라며 공천을 ‘낙하산’으로 꽂아놓은 것은 지역민심을 ‘을’로 여기는 또 다른 ‘갑질’의 오만한 모습이었다. 주민의 대표를 주민이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한줌도 안 되는 당의 주요 인사가 만든다는 시대 퇴행적 사고는 전혀 변하지 않은 것이다. 수십 년 전 독재정권에서나 봄직한 모습이었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절치부심하며 어렵게 닦아온 터전을 중앙의 끈을 잡은 ‘낙하산’에게 공정한 절차도 없이 송두리째 빼앗겨야 하는 경선 후보들의 심정을 헤아려보기나 했는지. ‘민주’라는 당명에도 불구하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본질은 어디로 갔는가.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모든 과오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자기반성이 없는 기득권이 적폐세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쨌든 사연 많은 20대 국회가 드디어 끝나고 우여곡절 끝에 21대 국회가 새로 시작된다. 국민들의 희망과 기대에 부합하기 위해서 여당은 보다 낮은 자세로 야당은 보다 진지한 태도로 새 국회에 임해야 한다. 자만에 빠지기 쉬운 거대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정당한 반대여야 한다. 더욱이 새 국회는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더라도 이로 인해 향후 모든 분야에서 역사적인 변혁기의 한 복판에 서 있게 될 것이다. 부디 겸손하고 진지하며 헌신의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정치를 보여주길 바란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 ‘소리 시선(視線)’은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쓰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매주 수요일 외에도 시시각각 벌어지는 주요 이슈에 대해선 비정기적으로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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