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철, 김동현 등 비평집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 발간

출처=알라딘.

재일(在日) 시인 김시종의 예술 세계를 종합적으로 탐색한 비평집이 나왔다. 고명철, 김동현 등 제주 출신 평론가를 비롯해 국내외 연구자 8명이 참여한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보고사)이다.

이 책은 각각의 연구자들이 김시종 작품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는 평론 모음집이다. 저자는 총 8명으로 한국문학 전공자(고명철·김동현·하상일), 일본문학 전공자(곽형덕·김계자·오세종·이한정·후지이시 다카요)로 구분해 보다 넓은 시야를 갖췄다.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시종은 어린 시절을 제주에서 보내며 4.3에 직접 연루됐다. 스무살 때인 1949년 살아남기 위해 제주에서 일본으로 밀항했다. 오래도록 남‧북한 어느 국적도 선택하지 않은 채 ‘조선적’ 재일조선인으로 살았다. 그는 1998년 50여 년만에 고향을 찾았고, 2003년 제주에 있는 부모님의 묘소를 찾기 위해 한국적을 취득했다. 

2015년 자신이 쓴 회상기 《조선과 일본에서 살다-제주도에서 이카이노로》(이와나미신서)는 일본 아사히신문사가 주는 제42회 오사라기지로상을 받았다. 1986년에는 에세이집 《자이니치(在日)의 틈새에서》은 마이니치출판문화상, 2011년엔 시집 《잃어버린 계절》로 다카미준상을 받는 등 일본어로 쓰여졌지만 일본문학과는 또 다른 그의 문학성은 현지에서도 인정받았다.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은 작품 해설부터 김시종 개인 역사에 대한 조명, 일본어로 조선을 이야기하는 독특한 김시종의 언어 분석,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재일’의 역사, 1953년 창간한 시 잡지 <진달래> 속 김시종의 흔적 정리, 나아가 김시종의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만나보는 인터뷰까지 알찬 구성을 갖췄다.

지난 2019년 5월31일 제14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세션 ‘4.3과 경계-재일의 선상에서’ 기조강연 중인 재일동포 김시종 시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9년 5월31일 제14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세션 ‘4.3과 경계-재일의 선상에서’ 기조강연 중인 재일동포 김시종 시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저자들은 김시종의 시선집 《경계의 시》, 첫 시집 《지평선》, 장편 시집 《니이가타》 등을 세세하게 분석했다. 

그렇다면, 김시종은 ‘재일의 시 쓰기’를 통해 식민의 내적 논리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이번 시선집 《경계의 시》를 관류하고 있는 그의 시적 인식은 재일의 사회적 존재가 겪는 온갖 문제에 대한 성찰이며, 재일조선인의 삶에 대한 심미적 이성을 통해 ‘재일의 시’만이 갖는 미적 성취를 일궈내고 있다.
- 고명철 <식민의 내적 논리를 내파하는 경계의 언어> 가운데 일부

또한 모국어와 모어 사이에서 갈등하는 재일조선인의 이중 언어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일본어가 아닌 일본어, 즉 일본어의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이단의 일본어를 사용하는 문제적인 시인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재일조선인 사회의 민족적 관념성을 넘어서 ‘재일’의 독자성과 주체성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 하상일 <김시종의 ‘재일’과 제주4.3의 시적 형성화> 가운데 일부

제주도, 이카이노, 광주, 니이가타는 김시종에게 있어 ‘많은 삶과 죽음을 낳는 현장’의 이름으로 절실한 곳들이다.
- 후지이시 다카요 <‘장편시집 니이가타’를 니이가타에서 읽다> 가운데 일부

여덞 명의 연구자를 대표해 책 머리를 채운 고명철은 “김시종의 문학은 한국문학인가? 아니면 일본문학인가? 이 물음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김시종의 문학이 래디컬하게 심문하고 있는 저간의 난제들-가령, 근대 국민국가의 문제들, 제국과 식민, 분단과 통합, 문명과 야만 등을 깊고 넓게 사유해야 할 이유”라며 “김시종의 문학을 재일조선인 문학으로 가둬놓는 게 아니라 재일조선인 문학의 문제의식으로부터 생성되고 있는 ‘새로운 세계문학’의 문제의식에 대한 쟁점과 연결된다”고 문학적 가치를 부여했다.

지난해 대마도에서 열린 ‘제3회 제주4.3사건 희생자 대마도·제주도 위령제’에서 김시종은 스스로를 “비겁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남로당 말단 당원으로 4.3에 휘말린 끝에 구사일생 밀항해 일본에 터를 잡았고, 그곳에서는 조총련의 탄압을 이겨내며 꿋꿋이 자신만의 글을 써왔다. 그럼에도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제주4.3에 대해 오랜 시간 입을 다물었다. 한국과 일본, 나아가 조선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온 경계인이 오늘 날 현대인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김동현 평론가는 “‘지금-여기’ 김시종을 읽는 일은 그가 몸으로 밀고 간 ‘지저(地底)’의 흔적을 만나는 일이다. 눈이 아니라 손으로 더듬고 몸으로 만끽하며 기꺼이 함께 더러워짐을 감수하는 일”이라고 피력한다.

김시종은 지평의 상상력으로 허공으로 비상(飛翔)하려는 추상의 욕망을 잡아채었다. 그 추락의 현장, 땅속 깊은 곳에는 복수와 재일의 언어가 새겨져 있다. 그 거친 흔적을 우리의 몸으로 느끼는 순간, 김시종의 언어는 문신처럼 우리 몸에 새겨진다.
- 김동현 <지평의 상상과 ‘재일’이라는 중력>

저자들은 모두 문학 혹은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다. 고명철은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한정은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일본어권지역학전공 교수, 하상일은 동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곽형덕은 명지대 일어일문과 교수, 김동현은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강사, 오세종은 류큐대학 인문사회학부 류큐아시아 문화학과 교수, 김계자는 한신대 대학혁신단 교수, 후지이시 다카요는 니이가타대학 인문사회과학계열 인문학부 교수다.

《김시종, 재일의 중력과 지평의 사상》은 보고사의 ‘트리콘 세계문학 총서’ 세 번째 결과물이다.

보고사, 295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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