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인권위 ‘교수협 차별 금지’ 권고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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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제주한라대가 닮은 꼴이라면 뭔 말인가 할 것이다. 적어도 두 곳이 각각 노조와 교수협의회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닮은 구석이 있다. 한라대는 교수협 소속 교수에게 고용상의 불이익을 줬다가 최근 국가인권위로부터 재발방지 권고를 받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무(無)노조’ 하면 국내 최대 재벌 삼성이 떠오른다. 거꾸로가 더 맞을 것 같다. 삼성 하면 '무노조 경영'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초일류 기업이라는 이미지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그만큼 삼성에게 노조는 절대 허용해선 안될 존재였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요즘으로 치면, 노조는 일종의 바이러스 취급을 받았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사시(社是)와 다름없는 삼성의 무노조 방침은 ‘선친의 유훈’이란 이름 아래 오랜기간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구축했다. 

노조 설립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 튀어오르는 게 세상의 이치다. 삼성 노조 탄압 피해자의 대명사 격인 김용희씨(강남역 인근서 300여일째 철탑 농성) 사례를 보면, 적어도 1991년부터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었다. 사측에선 그 때마다 백화점식 파괴 전략으로 응수했다. 

무엇이 이토록 삼성으로 하여금 노조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게 했는지 궁금하던 차였다.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는 상황이 작년말에 벌어졌다. 

12월13일이었다. 이른바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공작 사건’ 선고 공판에서 재판장이 의미있는 언급을 했다. 삼성의 전·현직 고위 임원들이 대거 유죄 판결을 받은 이 재판에서 담당 판사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 <어려운 시절>을 인용해 우회적으로 피의자들의 낡은 사고방식을 꾸짖었다.

1854년 상상 속의 공업도시 코크타운을 배경으로 쓴 <어려운 시절>에는 은행가이자 공장주인 바운더비가 노동자를 경멸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도시에서 일하는 일손들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어린아이든 할 것 없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을 한가지 갖고 있습니다. 바로 황금수저로 자라수프와 사슴고기를 먹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들은 절대 황금수저로 자라수프와 사슴고기를 먹을 수 없습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결코 먹을 수 없단 말입니다” 

노동자들은 그저 주는 것에 만족해야지, 너무 많은 것을 원하면 안된다는 조롱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19세기였다. 그 후로 160여년이 흘렀다. 삼성 담당 판사는 “21세기에 사는 피고인들이 19세기 소설 속 인물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판사는 헌법에 명시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주지하기도 했다. 선고 닷새 뒤인 12월18일 삼성은 무노조 경영 폐기를 발표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니어도, 노조나 구성원들의 헌법상 권리를 백안시하는 곳은 제주에도 있다. 제주한라대가 대표적이다.

제주한라대는 교수협의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줬다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재발 방지 권고를 받았다. 해당 교수의 교과목을 폐지하기까지 회의록 조작 등 미심쩍은 정황이 여럿 있지만, 압권은 대학 측의 해명이었다. 독(毒) 사고 위험성 때문에 ‘복어요리’ 강좌를 없앴다면, 복어요리 교과는 대학에서든 학원에서든 절대 개설해선 안된다. 인권위는 오히려 복어조리기능사 자격증 취득에 용이하다며 교과목을 폐지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권위 말마따나, ‘교수협의회가 총장의 비리 등과 관련해 외부에 부정적인 의견을 계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 교과목 폐지로 이어졌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한 두 번이면 말을 안하겠다. 제주한라대 총장은 노조원에 대한 부당노동행위로 지난해 대법원에서 벌금 500만원이 확정됐다. 2014년에도 노조 설립 방해로 벌금 200만원을 물어야 했다. 

제주한라대는 전형적인 족벌사학에 해당한다. 이사장, 총장은 물론 일부 이사들이 한 가족이다. 한라대는 그동안 감사원 감사와 제주도 감사위원회 감사를 통해서도 여러 가지 비리가 불거졌다. 이와 맞물려 교수협의회가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으니, 재단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교수협의회의 요구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었을 게다. 대학 측이 이를 ‘황금수저’로 받아들였다면 정말 대책이 없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사립대학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이 도지사에게 이양됐다. 전국에서 유일한 사례다. 하지만, 사학 재단을 둘러싸고 비리와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 권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건지 근본적인 회의감이 든다. 

혹자는 전문성, 시스템의 부재를 탓하기도 하지만, 각종 연고로 얽히고 설킨 지역의 특성상 온정주의가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번에 인권위는 대학 뿐만 아니라 제주도에도 유사한 차별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지도감독을 주문했다. 여전히 공허하게 들린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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