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오등봉공원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의 문제점 3

1999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시작된 도시공원 일몰제로 원래 목적대로 개발되지 않는 도시공원이 도시계획시설에서 일제히 해제된다. 즉, 전국의 수많은 도시공원이 개발사업의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제주도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제주 시내에 있는 오등봉공원은 자연생태계와 경관이 매우 좋은 곳이며 신화와 전설이 풍부한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으로 2000세대 가까운 아파트단지가 추진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최근에 오등봉공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다. 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3회에 걸쳐 오등봉공원 개발계획(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의 문제점을 싣는다. 이번이 마지막 글이다.

오등봉공원 안 한천의 인문적 가치

지난 2회 기고에서 오등봉공원의 핵심인 ‘한천’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언급하면서 설문대할망이 쓴 족두리라는 이야기가 담긴‘족감석’까지 이야기하였다. 이처럼 오등봉공원 안의 한천에는 제주 건국 신화 이야기가 깃든 족감석뿐 아니라 옛날 선조들의 삶과 애환이 서린 여러 전설이 전해져온다. 

제주도 하천의 주요한 특징은 물이 흐르지 않지만, 하천 전 구간에 크고 작은 소(沼)가 무수히 형성된다는 것이다. 오등봉공원 안 한천도 마찬가지이다. 소마다 전설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또한 한천의 큰 소들은 천연기념물인 원앙이 집단으로 날아오게 하는 중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처럼 소에 담긴 전설을 통해 옛 제주 선조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고 예전의 생태계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 달 밝은 밤에,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린다는 ‘항소’

KBS 제주총국 위의 고지교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특이한 소를 만나게 된다. 폭은 좁지만 깊은 형태의 소이다. 마치 1인용 목욕탕을 연상하게 된다. 항소는 항아리처럼 생겨서 물이 깊게 고여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졌다. 항소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어느 욕심 많은 흥정바치(장사하는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가 마음에 든 소(牛)를 발견하고 그 소를 따라 한라산 마을 목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사이에 흥정바치의 고운 아내는 항소에서 혼자 빨래를 하다 빨랫방망이를 놓친다. 이를 건지려고 항소에 들어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 이후, 달 밝은 밤이 되면 흥정바치의 고운 아내가 항소에서 빨래하는 방망이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실제로 항소는 폭은 좁지만 깊고 바위에 잡을 곳이 마땅히 없어 빠지면 익사할 수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깊은 웅덩이라서 물이 이곳으로 쏟아지면 소리가 울리는 구조이다. 실제로 주민들이 이 소리를 듣고 빨랫방망이 소리로 들렸을 수도 있겠다. 

항소. 달 밝은 밤마다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린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제공=제주환경운동연합
항소. 달 밝은 밤마다 빨랫방망이 소리가 들린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제공=제주환경운동연합

* 애개의 슬픈 전설이 담긴 ‘애개소’

애개소도 항소처럼 슬픈 전설이 담긴 소이다. 옛날 제주목에 애개라는 기생과 신관 목사가 사랑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정의 부름을 받은 목사가 조만간 애개를 곁에 부르겠노라고 철석같이 약조하고 한양으로 떠났으나 목사는 변심하였는지 애개를 잊어버렸다. 홀로 남은 애개는 기약 없는 기다림과 그리움에 지쳐 둘만의 추억이 서린 이곳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런 연유라 애개소라 부르다가 애기소로 불리고 있다. 이곳에서 100여 미터쯤 올라가면 목사와 애개가 사랑을 나누었던 숨어있는 기암절벽들이 있는데 이곳을 곱은내라고 부른다. 

애개의 슬픈 전설이 담긴 애개소. 제공=제주환경운동연합

* 판관이 시 한 수 읊었다는 ‘판관소’

이곳은 옛날 무더운 여름에 한천 숲길을 따라 방선문으로 향하던 판관 일행이 목을 축이고 판관 바위 아래서 시 한 수를 읊었다고 전해진다. 판관소는 크고 넓어서 가뭄이 들어도 1년 내내 물이 줄지 않는다고 한다. 물이 깊어 사람도 많이 죽었다고 한다. 멀리 떨어진 연미마을 사람들도 이곳에 물을 길으러 왔다고 한다.

판관이 시 한 수 읊었다는 판관소. 제공=제주환경운동연합

* 한천의 옛 생태계를 추정할 수 있는 ‘깅이소’

깅이소는 옛날 한천의 생태를 추정할 수 있게 하는 곳이다.‘깅이’는 게의 제주어이다. 즉, 깅이소는 게가 많이 서식하여 이름 붙여진 소이다. 예로부터 한천에는 털이 수북하고 집게발을 가진 몸집이 큰 게들이 서식하여왔다고 한다. 이 이야기로만 추정해보면 민물게가 서식했다는 것인데 털이 수북했다는 것으로 볼 때 동남참게를 말하는게 아닌가 싶다. 이 소에서 마을 주민들이 이곳에서 게를 잡아 식용으로 사용하였지만, 현재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민물게라 하여도 바다와 담수를 오가야 생존이 가능한데 이곳은 바다와 3km 이상 떨어져 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

민물게가 살았다고 전해지는 깅이소. 제공=제주환경운동연합

*‘창문’이 있는 바위가 있는 ‘창꼼소’

창꼼소는 바위가 깎인 모습이 매우 아름다운 소이다. 바위에 마치 어두운 방에 빛이 들어오도록 창문을 뚫어놓은 것 같은 구멍이 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예전에는 마을 주민들이 어린 시절에 이 바위 구멍을 드나들며 물놀이를 즐기던 장소라고 한다. 이처럼 제주의 하천은 어린이들의 훌륭한 놀이 공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바위가 깎인 모습이 조각품 같은 창꼼소. 제공=제주환경운동연합

오등봉공원 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은 전형적인 토건 사업일 뿐이다

지난 3회에 걸쳐 제주환경운동연합이 조사한 오등봉공원의 자연적, 역사문화적 가치에 관해 이야기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오등봉공원 조사팀은 매우 짧은 조사 기간이었음에도 오등봉공원이 다른 도시공원에 비해 매우 훌륭한 생태적․지질적 가치와 역사문화적 가치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특히 오등봉공원의 핵심인 한천은 한라산국립공원 내의 상류 계곡에 버금가는 경관적․생태적 가치를 갖고 있었다. 한천변에는 울창한 상록활엽수림이 형성되어 있고 하천 안에는 풍부한 소들로 인해 양서파충류와 새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특히, 천연기념물인 원앙이 집단으로 오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이들을 먹이로 삼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인 매가 서식하고 있었다. 만약, 이곳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면 천연기념물인 원앙 떼와 동물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훼손뿐 아니라 제주시민들이 오등봉공원에서 누렸던 공익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등봉공원에는 생태적 가치뿐만 아니라 역사유적지와 옛 주민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장소들이 흩어져있어 인문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이러한 곳에 2,000세대 가까운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면 도시공원 자체가 사유화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시민들의 공원이 아닌 아파트단지의 공원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대규모의 아파트단지를 짓는 것보다는 뭇 생명의 서식처로 그리고 시민들이 도시에 찌든 때를 벗으려고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휴식과 힐링의 공간으로 남겨둬야 한다. 뭇 생명과 인간을 위한 공공의 장소로 남겨둬야 한다. 

1999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촉발된 도시공원일몰제에 관한 정부의 대책은 민간공원특례제도였다. 민간 건설회사가 주축이 되어 토지를 강제 수용하는 방식으로 부지의 30%를 아파트로 개발하고, 나머지 70%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기부 채납하는 방식이다. 쉽게 얘기하면 건설회사에 ‘숲세권 아파트’(숲이 삶의 질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상품화한 숲 인근 아파트) 개발로 높은 수익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부동산 개발중심의 친기업적 사고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난 구시대적 발상에서 나온 제도일 뿐이다.

오등봉공원은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가장 상징적인 곳이라 할만하다. 이 정도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면 전국적으로도 가장 나쁜 선례를 남길 수밖에 없다. 청정과 공존을 제주 미래비전으로 설정하고 세계환경수도를 추진하고 있는 제주도 당국도 시험대에 올랐다. 오등봉공원에 대한 개발 여부의 판단은 그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도 당국은 지금이라도 오등봉공원에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계획을 철회하고 사유지를 모두 매입하여 도시공원의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공원이 필요하다 : 환경 도시의 핵심, 도시공원을 지켜야

우리나라에 16,000개 이상이 공원이 있다고 하지만 국민 1인당 공원 조성면적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서도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시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권 도시림은 1인당 6.56㎡로 런던(27㎡) 뉴욕(23㎡) 파리(13㎡) 등에 비해 크게 부족하고, WHO(국제보건기구)의 권고기준(9㎡)에도 미달한다. 

공원의 도시 숲은 대기를 정화하고 소음을 줄이고 차단하며, 도심 내 기후를 조절하고, 방풍․방재 기능을 한다. 또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정서함양에도 기여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병원 욜란다 마스 박사는 논문에서 녹지 가까이에 사는 사람은 녹지가 적은 장소에 거주하는 사람보다 불안, 우울, 신체 건강의 유병률이 낮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도시공원의 기능과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도시공원을 도시의 장식품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 있다 보니 도시공원 민간특례제도 같은 토건성 사업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시민들의 공공의 영역인 공원조차도 토건 사업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언제까지 산업화시대의 토건 중심 정책에 매몰되어 있을것인가? 세계환경수도를 추진하고 있는 제주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원희룡 지사는 취임 초기에 선보전, 후개발을 내세우고 그동안의 개발 기조를 바꾸겠다고 공언했지만, 공염불이 되어가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의 유수한 도시들은 쇠퇴한 도시에 강을 중심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의 스페인 빌바오나 프랑스, 독일의 주요 도시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공업 도시의 배경이었던 하천과 항만 등을 중심으로 한 친수공간 프로젝트가 주를 이루고 있다. 

미래 도시계획의 핵심은 그 지역이 가진 자연, 역사, 문화적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도입해 지역경제와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제주도는 오등봉공원처럼 아직도 도심 내에 천혜의 자연환경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 많다. 친환경생태도시로서의 위상을 세울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또한, 도시공원을 보전하면서도 새로운 운영방식을 도입하면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초고령화 사회에 노인계층의 자아실현과 자원봉사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 수 있다. 

오등봉공원을 생태 도시의 출발점으로 

19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인해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던 영국은 오늘날 대표적인 '공원의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에서 탄생한 도시공원은 비슷한 산업화의 과정을 밟은 미국, 독일, 프랑스로 퍼져나갔고 도시공원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의 센트럴파크도 이러한 배경 가운데 생겨났다.

영국 런던 시는 최근 대기오염・기후변화 등 다양한 환경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런던을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도시(National Park City)로 만들기로 하고, 구체적 환경전략을 수립했다. 칸 런던시장은 2050년까지 런던의 50%를 녹지로 덮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 도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왜 우리는 이런 과감한 비전을 가질 수 없는가?
영국의 길포드 주 정부도 공원 유지와 관리에 배정된 예산이 전체 주 예산의 1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즉, 길포드 주 정부는 공원 조성을 단순히 비용 측면에서만 보지 않고 녹지 공간을 없앴을 때 발생하는 의료비 상승, 산사태 등 자연재해, 난개발로 인한 기후변화 등을 고려하면 녹지 조성만큼 효율적인 투자가 없다고 보고 있다.

도심 확장이 계속될수록 오등봉공원의 존재가치, 도심 내 녹지 축으로서의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제공=제주환경운동연합

도시공원은 환경 도시, 생태 도시를 만드는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등봉공원은 생태적 가치가 높은 한천과 오등봉이 있고 제주시민이 이용하는 도서관(한라도서관)과 예술 공간(제주아트센터)이 존재하는 문화공간으로서 공공적 활용 가치가 매우 큰 장소다. 오등봉공원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도서관․예술 공간 기능을 더욱 확장한다면 제주시민의 공공문화 복합공간으로 더욱 주목받을 것이고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창출하게 될 것이다.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지금의 추세상, 제주시의 도심은 계속 확장될 수밖에 없다. 남쪽 방향(한라산 방면)으로 제주시 도심은 확장되면서 녹지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기에 도심 확장이 계속될수록 오등봉공원의 존재가치, 녹지 축으로서의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오등봉공원은 시민의 공공자산으로 남겨둬야 한다. 

도심 확장이 계속될수록 오등봉공원의 존재가치, 도심 내 녹지 축으로서의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 양수남 제주환경운동연합 대안사회국장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