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31) 송악산은 일제강점기, 4.3, 군사기지를 견뎌낸 곳이다

제주섬 남쪽 끝자락에 있는 송악산. 누구라도 와 보면 소유하고 싶은 제주의 절경 중 절경이다. ⓒ제주의소리
제주섬 남쪽 끝자락에 있는 송악산. 누구라도 와 보면 소유하고 싶은 제주의 절경 중 절경이다. ⓒ제주의소리

제주섬 남쪽 끝자락에 섬 전체를 떠받들 듯 우뚝 솟은 오름 하나가 있다. 송악산이다. 마주한 큰 바다의 파도가 오름에 부딪히는 모습에서 절울이라고도 불렀다. 오름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그야말로 감탄을 자아내는 경관이 펼쳐진다. 북쪽으로 한라산과 산방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사계리 앞바다에 떠 있는 형제섬은 손에 잡힐 듯하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가파도와 마라도가 한가로이 마주보고 있다.

누구라도 한 번 와서 보면 소유하고 싶은 제주의 절경 중에 절경이다. 그래서일까. 송악산은 한 치도 평온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송악산 일대가 유원지로 지정되면서 대규모 자본은 송악산과 그 일대의 절경을 소유하기 위한 시도를 감행했다. 20년 전 송악산 일대는 물론 오름 분화구 안에까지 호텔과 위락시설을 짓고, 오름 정상에는 곤돌라를 운영하는 초대형 개발계획이 최종 사업승인까지 받았다. 착공식까지 이뤄지면서 송악산이 파괴될 위기였지만 다행히 공사가 지연되면서 사업승인은 취소되었다. 

이번에는 중국 자본인 유한회사 신해원이 송악산과 그 일대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개발에 뛰어들었다. 지난 2013년부터 추진된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은 송악산 일대에 호텔과 상업시설 건설을 계획하여 인·허가 절차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오름 파괴 및 제주4·3과 일제강점기 당시 유적지 훼손, 경관 사유화 논란으로 개발사업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제주도 경관위원회의 심의는 4차례,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의 심의는 5차례에 걸쳐 진통 끝에 통과되었다. 

그리고 개발사업 승인을 앞둔 마지막 절차인 제주도의회의 환경영향평가 동의안 심의가 있었다. 송악산의 보전을 요구하는 대정읍 지역주민들, 제주도민들이 숨죽여 도의회의 심의를 지켜봤다. 결과는 ‘부동의’ 결정이었다. 기쁨보다는 다행이라는 안도감에 긴 한숨이 나왔다.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꼭 신해원이 아니더라도 송악산의 절경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자본들은 많기 때문이다. 

강조하건데 송악산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는 송악산의 뛰어난 경관만이 아니다. 주민들에게는 지난 모진 역사의 현장에서 송악산과 함께 버티고 왔던 기억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가 그랬고, 참혹했던 제주4·3 당시가 그랬다. 그리고 지난 1988년 송악산 일대에 군사기지와 비행장을 건설하는 계획에 맞섰던 기억이 있다. 우리 주민의 삶을 지키고, 송악산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자 했던 당시의 열정을 주민들은 기억한다. 

제주도민들이 한라산의 존재를 마음에 새기듯 송악산은 지역주민들에게는 또 하나의 지켜야할 소중한 가치이다. 아무리 대자본이라도 주민들이 바라보는 송악산의 가치를 살 수는 없다. 그동안 제주도는 개발정책을 시행해 오면서 이러한 주민의 정서를 간과해 왔다. 대규모 자본투자를 유치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시장논리에만 치우쳐왔다. 그러는 사이 정작 지켜야할 제주의 가치들은 훼손되고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제주도의회의 결정은 대단히 환영한다. 그동안 브레이크 없는 제주도 개발정책에 편승했다는 비판을 받던 제주도의회가 모처럼 제 역할을 해 준 것 같아 반갑다. 이제 제주도도 바뀌어야 한다. 주민의 삶과 괴리된 개발정책은 절대로 환영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송악산 개발사업 추진과정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제주도의회가 송악산 개발에 제동을 건 만큼 제주도는 이에 부응하는 후속 조치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 우선 개발입지로 부적합한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의 인·허가 과정을 백지화해야 한다. 그리고 송악산 훼손의 빌미를 주고 있는 이 지역의 유원지 지정을 해제하고 송악산 일대의 보전을 위한 보전계획 수립이 요구된다. 일부에서 제안하는 송악산의 문화재 지정과 송악산 일대의 평화공원 조성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거 역사의 질곡 앞에서도 항상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제 자리를 지켜온 제주사람들을 빼닮은 송악산이다. 송악산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다음 세대에게도 온전히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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