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25. 제주의료원, 태아의 질병이 산업재해로 인정

지난 2013년 6월,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준)가 제주의료원 정문에서 집단유산의 철저한 역할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2013년 6월,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준)가 제주의료원 정문에서 집단유산의 철저한 역할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 
2010년 A씨는 출산을 했다. 출산직후 의사로부터 아이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출산하기 전에는 발견할 수 없는 질환이었다. 제주에서는 치료할 곳이 없어 아이를 살리기 위해 금방 태어난 아이를 비행기에 태우고 서울로 가야했다. 비슷한 시기 같은 직장에서 출산한 동료 3명의 아이가 우리 아이처럼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다. 

#2. 
2009년 B씨는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지나쳤다. 죄책감과 괴로움도 몰려왔다. 그런데 주변에 동료들이 같은 고통을 겪는 일이 많았다.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의 장시간근무와 교대근무, 유해한 약품에 노출된 것이 유산에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2009년에서 2010년 사이에 제주의료원에서는 임신한 간호사들의 유산 및 이상 징후가 급격이 증가했다. 2009년에 임신한 간호사 15명 중 6명만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지고 태어났고 5명은 유산되었다.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율이 일반 인구에 비해서 14.6배가 높았다. 문제를 감지한 노동자들은 2010년 제주도청 앞 천막농성 등을 통해 노사합의를 이끌어 제3의 기관(서울대학교)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제주의료원의 집단유산 등이 업무상 연관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임신초기에 업무상 유해한 요소에 노출되어 유산하거나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하였다는 결과였다.

일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유해요소

2009년에서 2010년 사이 제주의료원에서는 신규약품이 도입되어 사용되었고 몇몇 유해약품의 사용량이 늘어났다. 중증질환자가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경우 간호사가 막자에 알약을 빻아서 복용하도록 도왔다. 이 과정에서 임신한 간호사들이 그대로 생식독성 의약품에 노출되었다. 

생식독성이란 인체의 생식기능 및 생식능력에 대한 유해영향을 일으키거나 태아의 발생·발육에 유해한 영향을 주는 성질을 의미한다. 당시 노출된 독성물질의 위험성은 매우 높은 것이었지만 이를 위한 예방활동은 없었다. 사전에 관련 성분과 취급에 대한 안전교육도 없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임산부에 영향을 미치는 의약품을 5개의 등급으로 분류하는데 그 중 가장 독성이 심한 등급을 X등급으로 분류한다. X등급의 약품은 인체와 동물 모두에게서 태아의 기형이 증명된 약물이다. 당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분쇄하던 약품 중에는 X등급이 17종, 그 바로 전단계인 D등급이 37종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1년 간호사들의 약품분쇄작업을 폐지한 이후, 유산이나 선천성 심장질환아를 출산한 사례가 급격이 감소한 사실은 유해약품이 태아에 끼친 영향을 반증한다.

약품분쇄작업 이외에 인력부족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 및 교대근무, 의료원 경영난으로 인한 체불임금 및 고용불안의 특별한 직무스트레스도 원인으로 꼽혔다. 2012년, 당사자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신청을 했다. 2014년 12월, 근로복지공단은 유산에 대해서 산업재해를 승인한다. 그러나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태아에게 요구된 ‘노동자 인지 여부’

근로복지공단은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에 대하여 ‘업무상 재해는 근로자 자신의 부상, 질병, 장해, 사망 등을 의미하며 자녀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산재보험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며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하여 1심재판부는 태아의 질병도 산업재해에 해당된다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2심재판부는 반대의 판단을 했다.

2심 재판부는 출산하는 순간 태아와 모체가 완벽히 분리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은 출산아의 질병일 뿐 근로자 본인의 질병이 아니므로 업무상 재해라 할 수 없고, 출산아의 질병인데 별도의 인격체(제주의료원 산재신청 노동자, 출산아의 어머니)를 산재수급권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갓 태어난 출산아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이라도 했어야 한다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판단이었다.  

더군다나 현행 산재보험제도는 요양급여 대상자가 반드시 근로자여야 할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지도 않다. 잠복기가 20년~40년에 달하는 석면으로 인한 피해가 퇴직 후에 발현되었다고 하더라도 산재로 인정된다. 퇴직자의 산업재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산재로 인하여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라도 산재법상 노동자가 아닌 유족에 대하여 유족 급여 등을 지급하는 것이 현행 산재보험제도가 운용되는 방식이다.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이 모체(母體)의 업무상 유해요인에 기인하여 발생한 것이라면 당연히 산재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 법의 취지이고 사회적 상식이다. 

너무 늦었지만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

제주의료원 4명의 노동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제주의료원 판결은 4명 노동자에 대한 판결이기도 하지만 모든 노동자에 해당하는 판결이기도 했다.

2012년 최초 산재신청, 2014년 1심판결(산재인정), 2016년 2심판결(산재불인정)을 지나왔다. 사건이 발생한지 10년만이고, 2016년 2심판결 후 4년이나 지난 2020년 4월 29일 대법원의 판결이 진행되었다.

대법원은 산재보험제도의 취지와 성격, 그리고 여성노동자 및 모성보호를 명시한 헌법의 취지를 종합하여 여성노동자와 태아는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업무상 유해 요소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보았다. 산모와 태아는 ‘본성상 단일체’이므로 태아의 질병은 산업재해에 해당되며 이는 출산을 통해 산모와 태아가 분리되었더라도 이미 성립한 요양보험 수급관계가 소멸된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쉽게 말해 임신한 상태에서 태아에게 산재가 발생했는데 출산해서 분리되었다는 이유로 산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번 제주의료원 판결은 태아의 건강손상 또는 출산아의 선천성 질환이 노동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한 최초의 판례이자 10년간의 지난한 투쟁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10여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태아의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것에 대하여 사회적인 다양한 논의와 입법화 시도가 있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제주의료원 사건에 대하여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노동부에서도 태아의 산재를 인정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적극 추진되지 않고 있다. 태아의 산재를 인정하는 산재보험법개정안이 발의되었지만 여전히 국회보류 중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그동안 미뤄왔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등 관련 법·제도가 빠르게 정비되길 바란다. 또한 노동자 스스로는 이번 사례를 통해 사업장 주변의 유해요인에 대한 민감함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도 노동자는 알려지지 않은 유해요인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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