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46) 시인의 피(The Blood Of A Poet), 장 콕토, 1930

장이지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그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시 <박치기>는 이즈츠 카즈유키의 영화이고, 시 <메종 드 히미코>는 이누도 잇신의 영화이고, 시 <너구리 저택의 눈 내리는 밤>은 시집 링크에서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 <오페레타 너구리 궁전>을 보고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밝혔다. 영화를 소재로 한 시뿐만 아니라 시 한 편이 영화의 한 장면 같을 작품들이 종종 눈에 띈다.

“노래와 같은 길,/ 구름도 굽이굽이 잘도 간다.// 한 마리는 가다가다/ 늙어서 죽고/ 한 마리는 병들어 주저앉고/ 또 한 마리는 눈이 멀어서 섰다.// 길은 끝나고/ 세계는 삼매(三昧)에라도 든 것처럼 꿈쩍하지 않는다./ 다만 창가의 풍경 소리,/ 찡하다.”

영화 ‘시인의 피’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시인의 피’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장이지 시인의 시 <모모타로(桃太郎)>를 보면 일본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어떤 영화가 떠오른다. 그냥 연상되는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지만, 그 영화와 들어맞는 건 아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소나티네>도 생각난다. 정적은 격정 뒤에 오는 것이기도 하고.

그의 시에서 초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시 <명왕성에서 온 이메일>은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어줍게 시를 쓰는 나 역시 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졸시 <자막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모습이 마치 승천하는 모습 같다는 생각으로 쓴 시이다. <델리카트슨>, <엑시스텐츠>, <파이란> 등 영화시를 염두에 두고 쓴 시들도 몇 편 있다. 내 시에서 왕가위의 영화 <중경삼림>은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 내가 좋아하는 박정대 시인 역시 영화 이미지를 많이 쓴다.

장이지 시인은 영화 마니아가 분명한데 내색하지 않는다. 내가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했을 때 그는 내게 영화를 보라고 권유했다. 마치 주치의처럼 내 생활을 진단했다. 그의 처방전대로 그날 저녁에 영화를 봤더니 효과가 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아주 잠깐이라도 ‘삼매(三昧)’에 든 것 같을 때가 있다. 그 순간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이 시인의 시간인 걸까.

 장이지 시인의 동생은 영화배우이지만 아직 이름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다. 장이지 시인의 시 <페르소나>에는 동생에 대한 마음이 잘 담겨있다.

“학교에서 맞고 들어온/ 이십여 년 전의 너처럼/ 너는 얼굴에/ 무슨 불룩한 자루 같은 것을 달고 있는데.// 슬픔이/ 인간의 얼굴을/ 얼마나 무섭게 바꾸는지/ 너는 네 가면의 무서움을 알고 있느냐, 아우야.”

/ 현택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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