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65. 아일사 와일드, 제레미 바 (지은이), 벤 허칭스 (그림), 강승희 (옮긴이), '미생물 전쟁', 반니, 2019.

아일사 와일드, 제레미 바 (지은이), 벤 허칭스 (그림), 강승희 (옮긴이), '미생물 전쟁', 반니, 2019. 제공=알라딘.
아일사 와일드, 제레미 바 (지은이), 벤 허칭스 (그림), 강승희 (옮긴이), '미생물 전쟁', 반니, 2019. 제공=알라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상이, 우리 일상이 달라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보잘것없이 작은 것들이 ‘만물의 영장’이라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로 높여 부르는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우리 인간이 세상의 왕이고 지배자라는 생각은 그만 둬야할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것들, 알지 못하던 작은 것들이 인간을 비웃듯 세상을 휘젓고 다니고 있으니까. 어쩌면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그들 쪽이 아닌가 되돌아 봐야할 지도 모르겠다. 

<미생물 전쟁>은 ‘작지만 큰 세계’를 다루는 만화책이다. 개념 예술가 브라이오니 바와 미생물 생태학자 그레고리 크로세티가 기획하고, 미생물학자 제레미 바와 작가 아일사 와일드가 글을 쓰고, 만화가 벤 허칭스가 그림을 맡았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팀으로 노력한 결과인지, 이 교육적인 만화는 호주에서 출간되어 다양한 상을 받고 호주의 모든 중고교에 의무 비치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미생물학이라는 과학 분야에 낯설고 어려움을 느낄 만하다. 하지만, 이 책은 ‘과알못’, 그러니까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만화책’인데다 두껍지도 않으니 부담스럽지 않게 책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미생물 전쟁>은 복잡하지 않은 짧은 이야기를 다룬다. 절반쯤이 만화 이야기(그래픽 노블)이고, 나머지 절반쯤이 주석(미주)을 담은 부록이다. 만화 이야기를 통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에 쉽게 접근하고, 부록을 통해서 더 자세하게 학습할 수 있는 구성이다. 

만화 이야기는 말 그대로 전쟁을 다룬다. 영어 원제가 ‘The Invisible War’(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이야기 속에는 두 개의 전쟁이 포개어져 있다. 먼저 하나는 1차 세계대전. 1916년 8월 23일, 프랑스의 서부전선을 배경으로 사상자 구호소가 등장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출신의 간호사 애니 바나비가 주인공이다. 역사 교양만화처럼 전쟁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더불어 그녀의 헌신적인 의료가 이야기의 첫머리를 끌고 나간다. 

페니실린과 같은 항생제는 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개발되었다. 그러니까 1차 세계대전은 항생제가 없이 치러졌다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가벼운 부상과 상처에도 많은 병사들은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이질 역시 포탄만큼이나 두려운 존재였다. 의료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설명이다.  

ⓒ제주의소리
'미생물 전쟁' 64쪽 사진. 제공=노대원. ⓒ제주의소리

<미생물 전쟁>에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 숨어 있다. 바로 간호사 애니의 몸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이다. 이질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인 ‘시겔라’(Shigella)가 시가 갱단이란 이름으로 부상병에게서 애니에게로 침투해온다. 침략군이 있다면 방어군도 있는 법. 인체 내에는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유익한 바이러스 종류가 있다. ‘박테리아 포식자’라는 뜻의 박테리오파아지(또는 파아지)라 부르는 녀석들이다. 서부전선에서 두 군대가 맞서듯, 박테리아와 파아지 군대는 애니의 장 속에서 맞선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질병과 투병의 과정을 전쟁에 빗대길 좋아한다. 이번 코로나19에 대한 방역 의지를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겠다고 표현하지 않았던가. 질병의 전쟁 은유가 이 만화의 발상에 힘이 되었을 터. 실제로 이 책은 “적의 적은 친구다”라는 고대 산스크리트 속담을 첫 페이지에서 인용한다. 적과 적이 만나는 전쟁터. 우리 인체는 온갖 미생물들이 투쟁하는 전쟁터에 빗대진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 은유는 쉽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미생물의 생태에 대한 설명으로 가닿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질병의 은유화에 대해 경고했다. (“질병의 무거운 은유를 벗겨내다”, [BOOK世通, 제주 읽기-135]) 그러나 손택이 환자들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낙인 효과를 걱정했던 것과 다른 이유로도 은유를 활용할 때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은유나 이야기는 대상을 쉽고 강력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수사적 힘이 있다. 하지만 대상을 다르게 오해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장내 미생물의 세계 또한 다르지 않다.

실제로 이질을 일으키는 시겔라 같은 일부 박테리아는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기생세균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대부분의 장내 미생물은 유익균이다. 이들은 유용한 비타민, 영양소, 호르몬을 만든다. 그리고 미생물은 침략군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장내 미생물들은 대부분 서로 협력한다. 마치 퇴비더미 속에서처럼 모든 것을 재활용한다. 한 종류의 박테리아가 생산한 폐기물이 다른 종류의 박테리아에게 식량이 되는 식이다. 서로 맞교환하거나 나눠 가질 수 있는 성분을 한없이 만들어낸다.” (102쪽)

인체 내부와 외부에는 10~100조 마리의 박테리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람 대변 1g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 숫자보다 많은 박테리아가 들어있다고 하니, 놀라울 정도이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다. 우리 인간의 내장에는 수백만의 곰팡이류와 원생생물, 수십억의 고세균류, 수조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살아가고 있다. 박테리아는 수백만 년에 걸쳐 인간 숙주와 더불어 진화해왔다. 인간은 홀로 우뚝 선 존재로 살아온 것이 아닌 것이다. 인간 역시 지구의 모든 생명체처럼 공진화와 공생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공생symbiosis
두 종류 이상의 서로 다른 유기체가 
이익을 주고받으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아가는 것” (4쪽)

바이러스하면 인플루엔자, HIV, 수두, 간염, 감기 바이러스가 대표적이고, 광견병, 에볼라, 사스, 소아마비 같은 감염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박테리오파아지처럼 유익한 바이러스도 인간을 포함한 숙주에게 이로운 생명체로 보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호흡과 물질대사를 하지 않아서, 과학자들에 따라 바이러스를 ‘생명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로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인간 숙주에게 흑사병에 대한 저항성을 부여한다.

이 책은 전쟁을 배경으로 미생물들의 전쟁을 그렸다. 하지만 결국 생명의 세계란, 그리고 생명의 이야기란 전쟁만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경쟁과 협력이 얽히고설켜 공진화와 공생의 거대한 드라마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팬데믹의 시대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벌였던 시대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과의 공존, 공생에 대해 사유했던, 대전환의 시대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 노대원 교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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