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32) 주민, 시민단체 동굴·숨골 총 136곳 발견...국토부 조사는 8곳 ‘부실’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서 제시하지 않은 새로운 동굴이 발견되었다. 사업 예정지로부터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사업 영향범위 내 조사대상 지역이었다. 동굴뿐만이 아니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누락된 숨골이 사업 예정지 안에서 무더기로 발견되었다. 이쯤 되면 제2공항 사업의 전략환경영향평가서가 어떤 수준으로 작성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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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2공항 예정지 인근서 발견된 동굴 '칠낭궤' 제2공항 활주로와의 이격 거리가 250m에 불과한 곳에 위치해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없다던 용암동굴 확인, 숨골은 무더기 발견
최근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회원들로 구성된 제주 제2공항 예정지 동굴·숨골 조사팀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지난해 1차 조사에 이어 올해 2차 조사를 진행한 결과였다. 국토부가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환경부에 제출한 후 환경영향평가 부실 논란이 일자 지역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조사에 나선 것이다.

국토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동굴조사의 경우 기존 문헌자료에서 제시한 동굴에 대해서만 조사를 진행했다. 물리탐사의 경우도 기존 분포한다고 알려진 동굴에 대해 진행하는 수준이었다. 사업 예정지 내 동굴 조사에서 신규 분포 동굴에 대한 조사 노력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문헌에 나오는 사시굴, 꿰버덕들굴 등은 입구 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입구 확인을 못했으니 당연히 동굴 위치와 제원, 영향성 등도 제시할 수 없었다. 제2공항 예정지 선정 과정에서 성산 후보지는 용암동굴의 분포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는 지적이 많았지만 정작 이를 심층 조사해야 하는 과정인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는 굉장히 소홀히 다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조사팀의 조사결과는 이러한 국토부의 동굴·숨골 조사 부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사팀이 발견한 동굴은 물리탐사를 진행해 확인한 것도 아니다. ‘칠낭궤’라는 이름을 가진 용암동굴은 제주4.3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동굴이어서 오랫동안 찾지 않아 주민들 기억에서 잠시 사라졌던 동굴이었다. 토지주가 밭을 정비하고, 밭 한가운데 덤불을 걷어내면서 그 동안 잊혀졌던 동굴 입구가 나타난 것이다. 국토부가 동굴 조사의 의지가 있다면 문헌자료 외에 주민 탐문 등을 통해서도 기존에 확인된 동굴을 추가 확인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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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병 등의 생활쓰레기가 방치돼 있는 칠낭궤 입구. 주민들에 의해 구전돼 온 곳이지만 국토부 환경영향평가서 상에는 제외돼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신규 동굴조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국토부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투수성지질구조로 알려진 지하수자원 1등급 지역인 숨골 조사결과도 제시했다. 국토부의 조사결과 숨골은 사업부지 내에서 8곳이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사업부지 내 매우 많은 숨골들이 분포한다는 주민들의 증언과는 상당히 다른 결과로 논란이 됐었다. 특히 숨골은 용암동굴의 존재 가능성과 연계되기 때문에 철저한 조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국토부의 조사결과는 과연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제2공항 동굴·숨골 조사팀은 사업 예정지를 중심으로 2019년 1차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61곳의 숨골을 발견했다. 국토부가 확인한 숨골 8곳에 비하면 굉장한 차이다. 올해 2차 조사에서는 75곳의 새로운 숨골을 추가로 발견했다. 1차 조사 결과와 합하면 사업 예정지 내에서 무려 136곳의 숨골이 분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숨골은 신규 동굴의 존재 가능성을 점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하수 보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투수성이 매우 뛰어나 빗물의 지하수 형성에 큰 역할을 하지만 역으로 숨골을 통한 오염물질의 유입으로 지하수의 오염 취약성도 높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제주특별법에 근거한 제주도 보전지역 관리조례에서는 숨골을 지하수자원 1등급으로 지정해 모든 시설의 설치를 금지한다. 조사결과대로라면 예정지는 사실상 제2공항 건설 입지로 부적합한 곳인 셈이다.

제주 제2공항 예정지 인근서 발견된 동굴 '칠낭궤' 제2공항 활주로와의 이격 거리가 250m에 불과한 곳에 위치해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 제2공항 예정지 인근서 발견된 동굴 '칠낭궤' 제2공항 활주로와의 이격 거리가 250m에 불과한 곳에 위치해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주민·시민단체 참여하는 합동현지조사 진행해야
이번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등의 동굴·숨골 조사 결과는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의 부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국토부는 이번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바로 해명자료를 냈지만 해명은커녕 동문서답 형식의 보도자료로 망신만 산 꼴이 되었다.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권한을 갖고 있는 환경부도 이번 조사결과를 유심히 보고 있을 터이다. 협의권자라는 위치라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의 조사결과에 대한 입장을 내지는 않겠지만 제2공항 사업의 전략환경영향평가 검토과정에 이를 반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측면에서 그동안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에서 요구해 왔던 제2공항 예정지에 대한 공동의 환경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합동현지조사는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과정에서 환경부의 의지부족과 국토부의 부정적인 입장으로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아왔다. 환경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의 검토의견으로 “계획지구 및 주변에 동굴분포 개연성의 지질을 가진 지역에 대하여 신규 동굴 분포 정밀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 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에 환경부의 검토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지역주민·시민단체가 발견한 동굴과 수많은 숨골들이 이를 증명한다.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제2차 동굴·숨골 조사에서 발견된 제2공항 예정지 내 숨골위치.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비상도민회의 제2차 동굴·숨골 조사에서 발견된 제2공항 예정지 내 숨골위치.

일부에서는 국책사업 진행과정에서 합동조사를 진행한 사례가 드물다며 이러한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운 예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 과정에서도 공동생태계조사가 진행됐었다. 지금의 전략환경영향평가 격인 당시 사전환경성검토 과정에서 환경부 사전환경성검토 자문위원회 및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지역주민 등이 참여한 제주해군기지 건설 관련 정부 합동조사 회의에서 ‘공동생태계조사’를 결정한 바가 있다. 강정 앞바다가 포함된 지역이 연산호 군락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사전환경성검토서에는 연산호 군락의 분포 사실과 그 현황을 누락하면서 공동생태계조사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었었다. 이에 지역주민이 추천한 전문기관이 연산호 군락을 포함한 생태계조사에 사업자측과 공동으로 참여한 사례이다.

환경부가 운영하는 환경영향평가서 등에 관한 협의업무 처리규정에도 합동조사의 실시 근거가 있다. 처리규정에는 환경문제로 인한 집단민원이 발생되어 환경갈등이 있는 경우 또는 환경·생태적으로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에서 계획을 수립하는 경우에는 중점평가사업으로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중점평가사업인 경우 환경부는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지역주민, 민간단체, 전문가, 승인기관, 사업자, 환경영향평가업자 등과 함께 사업지역에 대한 합동현지조사를 실시할 수가 있다. 따라서 제2공항 사업은 환경부의 규정에 따른 중점평가사업 대상에 당연히 충족하는 사업으로서 합동현지조사 실시는 물론이고,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 구성을 통해 갈등해소에도 나서야 한다.

최근 정부는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마련을 위해 제주 제2공항 기본설계 용역 예산 356억 원의 90%인 320억 원을 삭감했다. 사업추진이 저조하여 연내 설계 발주가 어렵고, 불요불급한 예산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환경부는 극심한 환경갈등을 빚고 있는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무책임한 태도로 협의를 이끌어서는 절대 안된다. 이번 현지 조사결과를 충분히 검토하고 협의내용의 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현재 운영 중인 제주도의 법·규정을 조사결과에 적용하더라도 성산 후보지는 환경적으로 입지가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환경부가 국토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 본안 접수 이후 두 차례의 보완 통보 결정을 내린 사유를 보더라도 이 지역의 환경적 가치로 인한 입지 재검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가 이미 공정하고 투명한 환경조사 의지를 내다버린 국토부에 계속해서 맡기겠다는 것은 국토환경의 보전 책무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주민이 참여하는 합동현지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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