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 현장] 코로나19가 덮친 제주교사들, “오늘도 오롯이 학교현장 지키겠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어요. 일주일이면, 아니 늦어도 한달이면 끝나겠지 했는데 벌써 석달째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있네요."

평소라면 동료들 사이에서도 실 없는 소리로 치부됐을지도 모를 상투적 표현. 학교 교실에서 당연히 머물러야 할 아이들이 사라진(?) 오늘, 잔인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교사들에게 역설적이게도 아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줬다.

단순한 짝사랑은 아니었나보다. 사춘기가 앞당겨진 요즘 같은 시기에 평소라면 도통 표현할 줄 몰랐을 아이들도 모니터 너머로 "선생님, 보고싶어요"라는 낯 간지러운 표현을 마다치 않았다. 한바탕 피어난 웃음꽃은 랜선이 끊기자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한 주면 끝나겠지', '한 달이면 끝나겠지' 되뇌이던 감염병과의 지긋지긋한 싸움은 어느덧 두 달을 훌쩍 넘어섰다. '스승의 날'이라고 더 특별할 것이 없지만, 교사들에게 아이들 없는 스승의 날을 맞이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제39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지난 14일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코로나19가 불러 온, 애틋하지만 서글픈 교육현장을 찾았다.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초등학교 한상훈 교사.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초등학교 한승훈 교사가 텅 빈 교실 뒷편의 게시물을 바라보고 있다. 교단에 선지 15년차다. ⓒ제주의소리

◇ 꼭두새벽부터 수업 준비..."아이들과 눈 마주쳤으면"

14일 오전 찾은 서귀포시 남원읍 소재 하례초등학교. 텅 빈 6학년 교실에서 선생님의 목소리만 우렁차게 울렸다. 교편을 잡은지 15년차인 교사 한승훈씨에게도 올해 스승의 날은 유독 서럽다. 눈빛 한 번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아이들을 모니터 너머로만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만난 것은 학교 내 비치된 스마트기기를 나눠줄 때 뿐이었다. 단 10분 정도 기기와 어플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곧바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것도 마스크를 낀 채로 용건만 나눠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간단한 안부도 묻지 못한, 아이들 고사리 손도 맞잡지 못한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있다.

전교생 56명, 6학년 한 반에 10명인 하례초. 이 학교에서 3년째 근무 중인 한승훈 교사는 학교 연구부장을 맡다 올해 담임을 맡아 아이들과 가족같은 교실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성향과 성장환경을 파악하고 교감하기에도 바쁜 학기 초가 허망하게 날아갔다.

각 교사에게 재량껏 준비하도록 한 온라인 수업. 영상으로 아이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실시간 플랫폼을 통해 아이들의 주장을 직접 써보도록 했다. 교실 뒷편 게시판에는 이번 학기 학습 대주제인 '자주와 자존'에 대한 아이들의 의견이 빼곡하게 쓰여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써내려갔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모든 글씨는 선생님이 직접 작성했다.

"아이들이 힘들고, 학부모가 정말 힘들어요. 엄마·아빠가 집에서 계속 지켜줄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어요. 온라인 개학조차 안됐을 때는 정말 돌봄이 필요한 몇 아이들이라도 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요. 그런 아이들은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불러서 힘들었던 과목 한번씩만 잡아주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지침 상으로 불가능했으니 더 안타까웠죠."

스승의 날을 앞두고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초등학교 한상훈 교사. ⓒ제주의소리
스승의 날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초등학교 한승훈 교사. ⓒ제주의소리

온라인 수업이 시작되자 그는 굳이 번거로운 쌍방향 화상수업을 고집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그는 저녁엔 아이들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보니 그날그날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오전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좋은 아빠,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시간을 쪼개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바람은 크지 않다. 아이들의 눈을 마주하고,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때가 하루 빨리 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 오고 싶다는 말, 사실 6학년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기 어려운 말이거든요. 친구관계도 더 좋아진 것 같고요. 보고싶다는 표현을 서로 하게 되는게,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라는 곳이 이렇게 소중한 곳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 것 같아요. 포스트 코로나 이후 모든게 달라질 거라고들 하잖아요. 학교 분위기가 어떨지 걱정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마음적으로 더 건강해져서 학교에 나오면 더 좋겠어요."

◇ "뛰놀기도 모자란 때에..." 발 묶인 아이들 안타까움만

월랑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교사 이혜경씨. 올해로 유아교육 33년차 베테랑 교사인 그녀에게도 올해는 겪어보지 못한 큰 어려움의 연속이다. 스승의 날이라는 것을 느껴 볼 겨를조차 없는 바쁜 하루다.

언론에는 초·중·고등학교 온라인 개학 소식만 전해지고, 유치원은 개학을 하지 않는다는 단편적인 정보만 전달되다보니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 주변에서도 '코로나 때문에 오히려 편한 것 아니냐'는 달갑지 않은 진농반농을 던지기도 한다.

사실 유치원인 경우 코로나 초기부터 긴급 돌봄이 이뤄지다보니 상황별 대처가 급박했다. 첫 1~2주는 20명 내외의 아이들이 내원했지만, 현재는 전체 인원의 70% 이상이 긴급 돌봄에 참여하고 있다. 부모의 자영업과 맞벌이 비율이 많은 지역적 특성도 있지만, 대부분의 유치원은 이미 가동되고 있다.

제주시 월랑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이혜경 교사. ⓒ제주의소리
유아교육 33년 경력의 제주시 월랑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이혜경 교사. ⓒ제주의소리

'돌봄'이라는 프로그램의 한계도 있다. 정상적으로 개학이 이뤄져서 진행돼야 할 교육활동의 제약이 뚜렷하다. 교육격차를 우려해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기도 어렵다보니 생활습관이나 예절 등 인성교육에만 치중해야 하는 형편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아야 할 시기에 외부활동은 모두 차단됐다. 특성화 강사 등이 참여하는 전문교육도 일절 중단됐다. 다양한 경험을 시키기 위한 현장학습 역시 언감생심이다.

"많이 힘들죠. 정상적으로 개학을 해서 뛰놀기도 모자란 때에 제약이 있으니까요. 사실 유치원 때가 친구와 놀면서 싸우기도 하고, 화해도 하며 사회성이 발달해야 하잖아요. 어울려 노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은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하다보니까 어려운 면이 있어요. 하루 종일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다보니 선생님도 아이들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고요."

현장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교육보다 방역이 돼야하는, 앞뒤가 뒤바뀌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은 교육청에서 나오는 지침대로 안내할 수 밖에 없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아이들도 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학부모들에게 '아이를 맡겨달라'고 할 수도 없다.

어려운 시기지만 사제의 정을 끊어내진 못했다. 이 교사의 손에는 꼬깃꼬깃 접힌 종이가 들려있었다. 그 안에는 '수순의 날', '이혜경 선생님 돌바주셔서 고마숩니다'(스승의 날, 이혜경 선생님이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삐뚤빼뚤 쓰여진 손편지였다. 유치원생 답게 맞춤법은 엉성했지만, 여전히 밝은 아이의 마음을 닮은 노랑 색연필로 쓴 손편지는 아이들의 사랑을 물씬 느끼기에 충분했다.

이 교사는 "제가 50대 중반인데 '예뻐요, 아름다워요'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라며 미소를 지었다. 글자를 겨우 알아가는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때, 가슴 벅찬 감정이 느껴지곤 한다.

"아이들도 힘들고 부모도 힘들고 교사도 힘들어요. 누구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든 일이에요. 부모님들이 교사들을, 자기 아이를 맡은 교사에 대해 신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시국에서 편하게 지내려는 교사 없어요. 아이를 잘 가르칠 거라는 믿음을 가져주시면 그 기대에 부응할 거라고 생각해요."

월랑초 병설유치원 이혜경 교사가 원아에게서 받은 편지. 노란 색연필로  '수순의 날', '이혜경 선생님 우리를 돌바주셔서 고마숩니다'(스승의 날, 이혜경 선생님 우리를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제주의소리

◇ 불필요한 오해에 상처받는 교사들 "적어도 교사라면" 

대다수의 교육 현장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지역에 따라, 학생수에 따라, 학년에 따라, 교육여건에 따라 저마다의 고충을 안고 있다.

제주시내권 한 초등학교 교사는 "8년만에 담임을 맡았는데 아직 아이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날 스승의 날 다 지나고 있는데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며 무력감을 표했다. 또 다른 교사는 "저학년은 더 힘이 든다. 돌봄까지 직접 해야하고, 아이들에게 학습꾸러미를 만들어 보내는데 관리가 안되다보니 학습 진척도 확인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교사들이 편하게 지내는 것 아니냐'는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도 아픈 대목이다. 제주시내 모 고등학교 교사는 "요즘 놀고 먹는 것 아니냐는 주변인의 농담에 의연한 척 하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다.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고 개인적으로 아이들의 상황을 돌봐왔던 나름의 노력이 모두 무시당한 것 같았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극단적인 사례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엄청 열심히 하는 교사가 있는 반면, 게으른 교사도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하루, 이틀, 일주일 안에 끝날 문제면 그렇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렇게 방치되다가는 언젠가 맞닥뜨릴 아이들 간 교육격차가 생긴다든지 하는 문제를 교사라면 누구나 절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적어도 교사라면"

공통된 교육현장의 목소리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신만 편하자는 마음을 가진 교사는 감히 없을 것이라는 호소다. 개학이 미뤄지고,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학생들도 어려웠지만 교사들 역시 큰 고충을 겪는 당사자다.

전 지구촌이, 대한민국이, 제주도가 코로나19라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는 오늘날. 유독 서글픈 스승의 날을 맞았지만 선생님들은 오늘도 각자의 교육현장을 오롯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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