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47) 쥴 앤 짐(Jules And Jim), 프랑소와 트뤼포, 1961

영화 ‘쥴 앤 짐’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쥴 앤 짐’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문창과에 들어가 처음 쓴 소설 제목이 ‘화신비디오의 여름’이었다. 수업 시간에 소설 쓰는 교수가 처음 쓰는 소설은 자전적인 경우가 많다며 웃었다. 나는 무언가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영화를 좋아해서 비디오 가게에 취직한 현은 프랑소와 트뤼포의 영화 ‘쥴 앤 짐’을 계속 빌려 보는 권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 아무리 좋아하는 영화라 해도 두 번 정도 빌리는 일은 있어도 권은 다섯 번이나 됐다. “혹시 영화 전공하세요?” 현이 권에게 비디오테이프를 건네며 물었더니 “왜 그런 걸 물어보세요?”라고 권은 차갑게 대했다.

그 후 권은 여름이 되어서야 다시 나타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는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었다. 우연히 보게 된 단편영화 프로필에 그의 이름이 있었다. 그 단편영화의 제목은 ‘그리운 날들이 다시 돌아온다 해도’인데 서정적이고 쓸쓸한 영화였다.

휴일에 바닷가에 간 현은 몇 사람과 영화를 찍고 있는 권을 발견했다. 그 모습이 너무 따뜻해 보였다. 햇빛이 강해 배우가 눈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행복해 보였다. 단편 몇 편 찍다가 결국 장편 데뷔를 못할 수도 있겠지만, 권과 함께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 웃으며 해국처럼 그곳에 피어있었다.

비디오 가게 문을 막 닫으려고 하는데 권이 황급히 뛰어왔다. “쥴 앤 짐 대여할게요.” 권이 무슨 상비약을 찾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비디오는 현이 집에 갖고 가서 가게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 빌려 갔는데요.” 현이 권에게 말했다. “그 영화 빌릴 사람이 이 동네엔 없을 텐데…….” 권이 낙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은 권의 그 말이 못마땅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현은 다소 공격적인 말투로 권에게 쏘아붙였다.

휴일에 다시 바닷가에 간 현은 영화를 찍었던 그 자리에 가서 서보았다. 모래 위에 있는 돌을 발로 찼다. 그들의 발자국도 몇 개 보였다. 현은 그들이 웃었던 표정을 따라 해 보았다. 혼자 그곳을 맴돌았다. 멀리 파도가 밀려왔다 부서지고 있었다.

문창과에 다닐 때 같은 과목을 들으면서 알게 된 다른 학과 한 학생이 한 학기가 끝날 무렵에 나에게 시를 보여줬다. 그는 쑥스러워하며 얌전한 학생처럼 가만히 앉아 나의 표정을 살폈다. 나는 그해 선망하던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 현택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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