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뉴스-레트로 in 제주](1) 원도심 노포 ‘순아커피’...“이야기들 이어지는 끈 필요해”

제주시 삼도2동에 위치한 순아커피는 이제 SNS 해시태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명소가 됐습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 공간이 지닌 역사성은 ‘핫플’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순아커피는 100년이 넘은 일본식 목조가옥입니다. 조선시대 제주 통치의 중심지였던 제주목관아지가 눈앞에 보이는 이곳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도 제주의 중심가였습니다. 제주4.3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일어난 곳도 이 거리입니다. 숙림상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점방이었던 이곳은 굵직한 제주 역사의 목격자였습니다. 

100년이 넘은 순아커피 건물이 적산가옥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일본식 가옥임은 틀림없지만 '적의 재산'이란 의미의 적산가옥인지는 아쉽지만 확인되지 않습니다. 적산가옥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을 말합니다. 

현 건물주가 4.3과 한국전쟁을 겪고난 후 일본으로 건너가 경제적으로 성공한 뒤 구입한 건물이라 그 이전, 최초 건축주 등 건물의 역사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순아커피의 외관. ⓒ제주의소리
순아커피의 외관. ⓒ제주의소리

2017년 10월, 태풍 차바에 휩쓸려 숙림상회 측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건물 안은 흙탕물로 가득 찼습니다. 당시 집주인은 이 집을 허물고 재건축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태풍이 지난 후 가재도구를 밖으로 끌어내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이 앞을 지나던 권정우 건축가(탐라지예건축사사무소 소장)는 이 공간의 가치를 알아보고는 설득에 나섭니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미국 인디언 속담이 있습니다.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껍데기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안에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오는 거죠. 도시 안에서 뭔가 ‘이어지는 끈’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하드웨어 뿐 아니고 사람들이 살아왔던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장치가 필요한데 다 없어져버리는 겁니다. 이런 계기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가족들은 권 소장의 이야기를 듣고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예상보다 튼튼했습니다. 몇 달 후, 원래 골격과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안전한 공간이 카페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카페로 새로 탄생한 이곳에는 종종 과거 숙림상회에 얽힌 기억을 말하는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동네점방이 이제는 커피를 마시는 동네 사랑방이 됐습니다. 

순아커피 2층에 위치한 다다미방. ⓒ제주의소리
순아커피 2층에 위치한 다다미방. ⓒ제주의소리

“제주 곳곳을 돌아다니면 제주도 민가의 원형을 갖춘 안거리, 밖거리 집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개발 붐으로 그런 것들은 낡고 허름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어요. 이런 것에 대한 반성이라고 해야 되나요? 그런 점에서 이런 프로젝트나 사례를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순아커피가 위치한 제주시 원도심은 지난 10년 여 간 많은 관심을 받으며 도시재생 주 대상지가 됐습니다. 다양한 담론들이 오고갔고, 빈 점포 예술인 입주사업이나 이곳을 기반으로 한 각종 문화예술프로젝트와 같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안전한 정주공간에 대한 주민들의 욕구도 각종 토론회 등을 통해 구체화됐고, 원도심을 기반으로 한 자발적인 시도들도 이어졌습니다.

이 물결의 한복판에서 순아커피는 ‘이야기를 담은 공간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한 지혜가 제주 원도심의 ‘그 다음’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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