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제주4·3특별법 개정 무산 유감 / 문성윤 제주의소리 발행인·공동대표

문성윤 제주의소리 발행인·공동대표, 변호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문성윤 제주의소리 발행인·공동대표, 변호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일찍이 부모님을 여읜 18살과 15살 된 형제가 있었다. 형제는 제주4·3 당시 서로를 의지하며 중산간의 어느 농촌마을에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군경은 18살 된 형을 동네주민들과 함께 포박해 끌고 갔다. 왜 끌려갔는지 영문도 몰랐고 그 후 형의 소식은 영영 끊겼다. 그렇게 동생은 형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수 십년 통곡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쌓여가는 한(恨)은 천근만근이 되었고, 야속한 세월은 무정히 흘러만 갔다. 

수십 년이 흘러 동생은 우연히 발급받게 된 호적등본에서 그렇게 찾아 헤매었던 형의 흔적을 발견했다. 형은 인천 소년형무소 병사(病舍)에서 1949년 4월에 사망한 것으로 신고 되어 있었다. 물론 그 사망 신고 역시 형무소 관계자가 직권으로 보고하여 신고한 것이었다. 형이 형무소에서 사망했는데도 유일한 피붙이인 동생에게 시신 인도는 물론 연락조차 해 주지 않았다니. 동생의 가슴은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무려 70년이 지나서야 동생은 자신의 형이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으로 징역 15년의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병들어 사망한 것을 알게 되었다. 분하고 원통했다. 한 가닥 희망을 갖게 한 것은 4·3 특별법 개정이다. 그러나 형의 명예회복을 위해 그렇게 기다리던 특별법 개정도 이루어지지 않자 법원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다. 그렇게 재심을 청구한 비슷한 처지의 재심청구인들만 350여명에 이른다. 

문제는 법률상 당시 형무소로 끌려가 졸지에 수형인이 된 분들의 배우자나 형제, 직계 자녀들만 재심청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재심청구를 할 수 있는 분들의 나이 역시 상당히 고령이다. 심지어 재심재판이 장기화될 경우 아예 재심판결 조차 받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또 재심청구를 하지 못한 분들과의 형평성 등을 감안하면 결국 가장 빠른 해결은 특별법 개정일 수밖에 없다. 물론 수형인 문제만이 아니라 여타의 다른 중요한 조항들도 하루 빨리 특별법 개정만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간절하고 시급한 사정이 있었기에 도민과 유족들은 지난 4·15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특별법 개정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고, 그 개정을 이루어 내겠노라는 후보자들의 외침을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원회에 4·3 특별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심의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 담당자의 발언을 보고 정말로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 18일 제20대 국회 폐회를 앞두고 4.3특별법 개정안이 논의됐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이 자리에 참석했던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은 "군사재판 무효화에 대해 법무부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라는 의견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보상금 지급은 개별입법보다 과거사 사건 전반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을 제정하는 포괄입법 방식이 바람직하다고도 설명했다. 윤 차관은 이 밖에도 4·3 희생자와 유족을 의료급여 대상에 포함시키고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시행 등에 대해서도 '신중 검토'라는 부정적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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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아예 행정안전부와 합의가 안 됐다고 밝혔다. 김경희 기획재정부 예산심의관은 "보상 방안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지 못했고 행정안전부와 합의도 안 됐다"고 밝힌 것이다. 사실상 정부가 야당 의원들에게 반대 명분을 준 셈이다. 그 동안 제주지역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정부와 소통을 전제로 야당만 반대하지 않으면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될 것처럼 큰소리 쳐왔고, 대부분의 도민들도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국회 법안 심사과정에서 나온 주무부처 담당자들의 발언은 그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도대체 여당인 민주당 제주 국회의원들의 정치력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무부처 담당자들이 언급한 배·보상에 따른 예산 문제나 다른 지역들에 대한 과거사법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와 미리 조율이 되어야 하는 것임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점조차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조차 올해 4·3추념식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재차 강조한 상황에서 지난 총선에서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그렇게 외쳐댔던 국회의원 당선자들이 과연 어떤 노력을 했다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결국 20대 국회에서의 특별법 개정안 처리는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그에 대한 별다른 해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 누구는 정부의 주무부처 담당자가 교체되어 잘 모르고 그런 발언을 했다는 해명을 하고 있지만 과연 설득력 있는 얘기인지 반문하고 싶다. 이렇게 중차대한 특별법 개정안을 놓고 주무부처 담당자가 교체되었다는 이유로 그 의견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가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지체된 정의는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 18살의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싸늘한 형무소에서 고향 하늘을 그리워하며 병들어 죽어 갔을 그 소년의 한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 그 소년의 한이 얼마나 될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유일한 혈육인 그 동생이 살아 있을 때 적절한 배상과 명예회복을 해 주는 것이 국가가 할 최소한의 도리이다. 우리가 국회에 특별법을 개정해 달라고 읍소하거나 은혜적 선물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국가의 공권력에 의해 짧은 시간 동안 대량적·집단적으로 살해된 이 전대미문의 국가폭력 사건에서 국가는 그 영혼들을 달랠 입법적 조치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문성윤 제주의소리 발행인·공동대표, 변호사 

* 문성윤 
현(現) 제주의소리 발행인·공동대표, 변호사.
전(前) 제주지방변호사회 회장. 제주일고와 연세대 법학과 졸업, 26회 사법시험 합격. 10년 넘게 4·3 관련 소송에서 무료 변론을 맡아 다수의 역사적 판결과 승소를 이끌어 냄. 4·3 희생자와 유족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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