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제주도 역량 부족해 유명무실해진 사학지도감독권 교육부 반납해야 / 김헌범

 ‘소리 시선(視線)’은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쓰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매주 수요일 외에도 시시각각 벌어지는 주요 이슈에 대해서도 비정기적으로 싣습니다. 

늦은 봄소식

“피진정인에게, 향후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에 대하여 교수협의회 소속이라는 이유로 고용상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할 것을 권고한다” (인권위 결정문)

드디어 늦게나마 전해주는 봄소식일까. 처음에는 공립으로 출발했다가 40년 전 군부 독재 시절 사학재단이 들어서면서 졸지에 영원한 동토의 왕국으로 전락한 도내 A 대학에 지난 4월 모처럼 이례적인 뉴스가 날아들었다. 적어도 학내에서는 절대적 지위에 있는 총장의 전횡에 맨손으로 맞선 B 교수의 무모한 싸움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벌어졌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가까웠던 이 소송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모처럼 교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인권위원회는 결정문에서 이 대학이 B 교수의 일부 담당 과목을 폐지하고 그의 업적평가점수를 낮춘 것에 대해 그가 총장과 재단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해 온 교수협의회 소속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음을 명확히 적시했다. 한 마디로 A대학의 보복 조치라는 것이 인권위의 결정인 것이다. 

소설 쓰기

“피진정인(총장)의 비리와 피진정인의 총장 재임용 승인 등과 관련해 외부에 피진정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계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 비추어, 피진정인(총장)이 진정인에게 교수업적평가에서 불이익을 주고, 진정인의 교과목을 폐지하도록 한 이유는 진정인이 피진정인에게 적대적인 교수협의회 소속이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인권위 결정문)

이 대학이 사실상 총장이 전권을 행사하는 일인체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그의 측근 교수들이 서류상 ‘쉴드’를 치고 있더라도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바로 총장이라고 본 것이다. 주제에 과분한 사학의 일원으로서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권위의 결정문을 보면서 느낀 소회는 다음과 같다. 우선 총장 이하 모든 보직 교수들이 인권위의 조사에 직면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이 대학만의 특유한 전법을 준비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실상 총장의 독단적 지시였으면서도 학과의 자율적인 결정이거나 관련 위원회의 자체적 판단인 것처럼 뒤늦게 각종 회의 자료와 결재서류를 꾸미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았을까. 참석도 하지 않은 교수들이 회의록에는 참석자로 버젓이 명시되고, 입도 뻥긋 안 했는데 주요 발언자로 올라가는 ‘소설’ 쓰기는 결코 웬만한 사람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바보의 험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일이었을 터. 신성한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신분으로서 믿는 구석은 ‘거짓도 믿으면 진실이 되는’ 자기최면밖에는 달리 없었을 것이다. 이 같은 그들의 눈물겨운 자기희생적 충성에도 불구하고, “세 사람이 짜면 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새빨간 거짓말도 사실처럼 통할 수 있다”는 삼인성호(三人成虎) 이야기는 결국 허무하게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고 이번 일을 계기로 그들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깨우쳤다고 보는 것은 금물일 것이다. 그렇게 해야 겨우 생존을 부지할 수 있다는 사학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양치기 소년은 제 버릇을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했던가. ‘최소희생으로 최대이익을 지향’하는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는 이제 제주 사학에서는 “남의 억울한 희생으로 자신의 최대이익을 지향”하는 처신의 철학으로 정착한 느낌이다. 이런 점에서 B 교수는 적어도 이 대학에서는 상식을 벗어난 지극히 비상식적인 교수였다. 정상인이 비정상인으로 통하는 정신병원의 모습을 그린 헐리웃 영화 ‘뻐꾸기 둥지’는 굳이 영화관에서 관람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담당강의 폐지와 업적평가점수 깎기는 찍힌 교수를 내쫓기 위한 이 학교의 전형적인 사전 작업이라는데 이 지경까지 오면서 그리 눈치도 없었을까.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도 체제전복의 음모쯤으로 간주하고 ‘격노’ 한다는 총장에게 교수협 회원이라는 신분은 ‘계륵’ 정도를 넘어 언제 터질지 모를 ‘폭약’을 안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일 터. B 교수는 쉬운 꽃길을 놔두고 애써 빤한 고생길을 찾는 바보임이 분명하다. 

ⓒ제주의소리
제주도가 교육부로부터 사학지도 감독권을 이양 받은 지 십년여가 흘렀다. 그럼에도 도내사학의 시설과 교육 수준은 이전보다 오히려 훨씬 열악해진 상태다. 이번 삼인성호에 대한 인권위의 판결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제주의소리

뻐꾸기 둥지
더욱이 몇 년 전 ‘사법농단’의 사법부 체제에서만 하더라도 이 문제가 법적으로 갔다면 패배하는 것은 너무나 확실했을 것이다. 당시 여러 차례의 해직 무효소송에서 해직 교수들은 백전백패였다. 당시에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는 이 대학의 주요한 무기였다. 그럴듯한 소설을 쓰기 위한 ‘머리 싸매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삼척동자의 눈에도 진상이 훤히 들여다보였으니 구태여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판사들까지 갈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뻐꾸기 둥지’는 사학의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과는 상식과 정반대였다. 억지 주장임을 빤히 알고도 판사들은 조금이라도 납득할 만한 논리를 내세우는 성의도 없이 사실을 뒤집었다. 갑의 마음만을 헤아리는 사법적 적폐가 법의 권위를 방패 삼아 여전히 건재한 지금도 섣부른 을의 소송은 절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 대학의 ‘삼인성호’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제주도다. 설립자의 백두혈통이 대를 잇는 제주 사학의 전근대적 체제는 공적 기관의 암묵적 승인 없이는 성립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지사직이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겠지만 얼굴에 똑똑함의 자부심을 결코 감추지 않는 원희룡 도정이 대강이라도 사학의 진상을 모르지는 않을 터, 그에게 아예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반면에 사학 담당 공무원들은 역량이 부족하거나 골치 아픈 일은 본능적으로 피하는 ‘복지부동’이 비자발적 부역자가 되는 이유는 아닐까. 선무당이 사람 잡는 줄은 누구보다 그들이 더 잘 알겠지만, 분에 넘치는 사학지도 감독권을 절대로 교육부에 다시 반납하지 않는 것은 ‘백년대계’를 위한 제사보다 ‘자리보존’을 위한 잿밥에 더 눈독을 들이는 땡중의 욕심 때문이리라.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마지막 몫
그래서 사학지도 감독권은 제주도에게 단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임이 분명하다. 제주도가 교육부로부터 감독권을 이양 받은 지 거의 십년에 육박하지만 도내사학의 시설과 교육 수준은 이전보다 오히려 훨씬 열악해진 상태다. 이번 삼인성호에 대한 인권위의 판결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약간의 책임감이라도 있는 도정이라면 사학지도 감독권이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행사돼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지만 아직도 이 대학의 교수협에는 아무런 회신이 없다는 소식이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썩기 마련이다. 하지만 도내사학은 더 이상 내부적으로 정화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원희룡 도정은 그것이 조그만 조직의 일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냐고 대충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제주의 백년대계가 걸린 문제가 아닌가. 골치가 아프면 지도감독권을 교육부에 다시 반납하면 그만이다. ‘가짜 호랑이’ 이야기의 마지막 결말은 이제 제주도의 몫이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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