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반대주민회 등 “표현의 자유 억압, 모순된 판결”

2011년 6월9일 제주해군기지 반대 글 게시와 관련해 해군이 홈페이지 관련 글을 삭제하고 올린 공식 입장. [사진출처-해군 홈페이지]
2011년 6월9일 제주해군기지 반대 글 게시와 관련해 해군이 홈페이지 관련 글을 삭제하고 올린 공식 입장. [사진출처-해군 홈페이지]

제주해군기지 공사에 항의하며 해군 홈페이지에 정부 비판글을 올렸다가 삭제당한 당사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배상청구 소송이 대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귀포시 강정마을 주민들과 전국 시민사회단체가 이를 규탄하고 나섰다.

강정마을해군기지반대주민회와 강정평화네트워크, 제주군사기지저지와평화의섬실현범도민대책위, 제주해군기지전국대책회의,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은 5일 논평을 내고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선별 삭제한 것이 문제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야말로 삭제돼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는 지난 4일 대법원이 박모씨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냄에 따른 입장이다.

소송인 박씨 등은 2011년 6월 9일 해군이 제주도 강정포구 등대 연산호 군락지 인근에서 해상 준설공사를 강행하자 해군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항의게시물을 올렸지만, 해군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관한 막연하고 일방적인 주장 글들을 삭제 조치한다'고 공지하며 해당 게시글을 모두 삭제 처리했다. 삭제 조치에 항의하는 게시물도 또 다시 삭제되며 해군이 삭제한 게시물은 총 117건에 이르렀다.

이에 2015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게시글이 해군의 정책에 대해 국민으로서 의견을 표현한 것으로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권력기관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며 피해자 3명에게 각각 위자료 3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판결을 다시 뒤집어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에 비춰 해군 홈페이지가 정치적 논쟁의 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해군본부의 삭제 조치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파기환송 판결을 선고했다.

이와 관련 강정마을반대주민회 등은 "대법원이 국가정책에 대한 반대의견은 삭제해도 좋은 것이라고 판결한 것으로,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고, 표현의 자유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우리는 이 대법원 판결에 반대하고, 대법원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 경악한다"고 성토했다. 

이들 단체는 "국가기관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것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또 그 반대의견을 여러 명이 쓰는 것 역시 당연히 허용돼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해군은 '자유' 게시판에서 자기 정책에 찬성하는 의견만을 남겨두고 반대하는 게시물만을 선택적으로 삭제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게시물을 그 기관의 선택에 따라 임의로 선별 삭제하는 것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견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법원은 '독재', '반민주', '표현내용에 의한 제한'이 합법적이라고 선언한 것에 불과하다"며 "해군 게시판에서 게시글을 삭제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규정은 '해군 홈페이지 운영규정'뿐인데 그 규정을 뛰어넘은 해석론을 전개한 것이다. 법을 뛰어넘는 해석론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발상이 대법원 판결에서 등장한 것은 법치주의의 후퇴"라고 규정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와 법원이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이 정당하다고 보아도 국민에게는 이를 반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또한, 정부와 법원의 판단에 반대하는 견해라고 해서 삭제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으며 이를 삭제사유로 규정하고 있지도 않다"며 "오히려 대법원이 판단한 기준에 따르면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반대의견만 선별해서 삭제한 것이 바로 정치적 중립에 반하는 것으로, 그야말로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의 각 기관은 국민의 반대 의견에 열려 있어야 한다. 반대의견을 임의로, 선별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대법원 판결이야 말로 '선별적 삭제'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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